남효욱展 / NAMHYOWOOK / 南孝旭 / sculpture   2009_1111 ▶ 2009_1120 / 일,공휴일 휴관

남효욱_ps-090100_대리석_90×30×3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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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10: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구올담 갤러리 KOOALLDAM GALLERY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185-1번지 Tel. +82.32.528.6030 www.kooalldam.com

자기애적 선물의 현시틈새로부터 구멍으로 남효욱의 조각에는 구멍에 대한 성찰이 곳곳에 묻어난다. 헨리 무어의 '구멍이 뻥 뚫린'투과체의 조각이 환경과 조우하는 '장소 특정적(site specific)'미술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남효욱에게서 그것은 다분히 인체(특히 여성 신체)의 유사성에 대한 재현 욕구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구멍이 각인된'추상의 조각체는 '유사(類似) 인간'혹은 '의사(擬似) 인간'에 다름 아닌 셈이다. ● 그런데 '구멍이 각인되었다'는 표현은 무슨 말인가? 그의 작업에는 시각적으로 판별 가능한 투과체의 양상이 '구멍'이기보다는 전반적으로 '틈새'의 양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틈새'란 언젠가는 벌어짐과 열려짐을 가능하게 하는 '잠재태의 구멍'으로서의 존재이다. 현재는 구멍의 정체성을 판별받기 모호한 상태이지만 언제든지 확실한 구멍으로 변환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그의 작품이 품고 있는 실재는 구멍이고 나타나는 이미지는 틈새라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그의 조각 미학은 구멍에 집중되어 있으되 외형적으로는 틈새로 표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은 구멍에 대한 성찰이 근간을 이루고 있음에도 언제나 그 출발은 틈새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틈새로부터 구멍으로'라는 전환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그의 작업을 읽어내는 주요한 지점이 된다. ● 그의 작업은 결국 시각상으로는 틈새가 주도하고 있는 조각체이지만 그 본질은 '구멍'이며 그 구멍의 실체는 우리에게 '각인된 구멍'혹은 '잠재적 구멍'의 의미를 지닌 '그 무엇'으로 상징되고 있다는 지점이다. '그 무엇'이란 다름 아닌 남성이 대상화시킨 여성의 상징이다. 즉, 틈새, 혹은 잠재적 구멍으로 표상되는 여성이란 결국 자궁이라는 구멍의 실체를 지닌 생물학적 여성이며, 틈새란 자궁이라는 실체적 구멍으로 인도하는 여성의 성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남효욱_ps-090200_대리석_30×28×15cm_2009
남효욱_ps-090101_대리석_30×15×5cm_2009

교환되는 선물의 현시 ● 조각가 남효욱은 자궁(구멍의 실체)으로 인도하는 여성 성기(틈새)를 조형의 언어로 다듬는다. 두 개의 검은색 대리석판을 병치시켜 쌍으로 연결해 만든 한 작품은 작가의 주제의식에 대한 고민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을 만큼 흥미롭다. 하나의 판에는 세로로 홈이 파여져 있고 또 하나의 판에는 세로로 구멍이 뚫려 있다. 그것 모두는 가시적으로 여성 성기(들)를 표현해낸 것임을 쉬이 간파할 수 있다. 대리석 판 중앙에 파여진 '홈'이나 '구멍'은 각기 강렬한 시각적 흡입력을 통해 관객의 즉각적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즉 그것이 '여성 성기와 다른 것'이라고 도무지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 이 작품에 나타난 '구멍'은 자궁이 아닌 여성 성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 '구멍'이란 '틈새'이자 그 '틈새가 벌려놓은 구멍'이 된다. 즉 '틈새/구멍'의 위상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틈새/구멍'(여성 성기)이란 '틈새'(여성 성기)로부터 '자궁'(구멍의 실체)에 이르는 변환 과정의 중간 단계에 놓인 실체이다. 가시적으로 그것은 '틈새의 벌어짐을 유추케 하는 구멍'일 따름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벌어진 무엇'이라는 표현처럼 여성 성기가 직면한 에로틱 상황을 쉽게 유추해낼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선물'이다. 그런데 다른 작품들 역시 같은 제목을 달고 있다. 선물(膳物)이란 그 한자어에서 알 수 있듯이 "남에게 선사(膳賜)로 주는 물품(物品)"이다. 그러니까 남효욱의 작품에서 여성 성기(로 표상된 조각)는 여성 주체가 남성(혹은 여성)으로 대변되는 또 다른 주체에게 주는 선물이 된다. 이것은 일상 은어에서 여성신체에 사용되는 '준다'라는 표현과 일맥상통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여성 성기로 대표되는 여성 신체란 한 여성 주체가 또 다른 주체에게 주는 선물처럼 인식된다. 그것을 일상어로 풀어보면 '선물 증정'이며 미학적인 언어로는 '선물(present)의 현시(present)'가 될 것이다. ● 조각가 남효욱은 특정(혹은 불특정) 여성에게서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받고자 하는 '여성의 성기'(작가에게 이것은 여성신체, 여성성, 에로스적 사랑으로 변주가 가능한 대표적 용어일 따름이다.)를 조형화하면서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근원적 욕망을 진솔하게 탐구해나간다. 그의 이러한 진솔한 욕망 탐구는 적어도 페미니스트들에게서 여성의 성을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족해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관계 자체가 '선물의 주고 받음'과 같은 교환적 가치가 팽배한 현대 사회를 기본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가운데 남녀의 관계를 탐구한다는 지점에서 가식이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은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보답 차원의 선물이 뒤이어 지속된다면 그것은 이미 교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효욱은 여성 주체의 신체(성기)가 '대가 없는 증여'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선물의 현시'란 결국 불가능하다는 데리다적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그에게서 '선물'이란 받음과 보답을 전제로 한 '교환'의 체계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가 살피는 성(sex)이란 결국 '교환될 수 없는 선물'의 현시가 아닌 '교환되는 선물'의 현시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주제 탐구는 '주기'만을 거듭하는 '이타적 선물'이기보다는 대다수 현대인들이 인식하는 교환과 받음을 전제로 하는 '자기애적 선물'이 된다. ● 남효욱의 최근 작업은 피상적으로는 여성 성기를 내세워 풀어보는 '섹스 욕망에 대한 순진한 고백'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선물의 유형학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현대인의 섹슈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던지는 작가만의 뼈있는 농담과 통렬한 비판적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남효욱_ps-0903_대리석_25×15×15cm_2009
남효욱_ps-090102_대리석_15×15×15cm_2009

펼쳐지는 돌 ● 작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돌판 위에 직접 스케치를 하면서 작품에 대한 구상을 펼치고 이내 이것을 다듬어나가면서 실제 작업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타진해나간다. 그런 차원에서 그의 스케치가 펼쳐진 돌판들은 필시 나중에 구현할 작품의 '에스키스'가 되면서도 그것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독특한 지점의 창작 태도를 견지한다. 앞서 언급한 두 개의 검은 대리석 작업뿐 아니라 이번 전시의 모든 출품작들이 대부분 이러한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은 주제의식의 정수가 선명하고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는 작업들이 대다수이다. ● 또 다른 작품을 보자. 검은 대리석 위에 세로로 길게 늘어진 원추형의 이미지(여성 성기)가 정으로 쪼아져 있다. 검은 색 표면의 살점들을 떨어뜨려낸 대리석 표면으로부터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성기 이미지는 이내 검은 배경 속에서 우주의 은하계 같은 이미지를 오버랩시켜낸다. 하얀 대리석판의 중앙을 긴 반원형 홈통으로 파내려간 작품은 인체의 내장기관과 같은 이미지를 연상케 하지만 이 또한 여성 성기의 이미지이다. 얇은 판의 두께를 허리까지 파내려간 탓에 더욱 얇아진 대리석판은 뒷면으로부터 작가가 장치한 조명 빛을 희미하게 투과시켜낸다. 그럼으로써 내시경으로 찍어낸 인체 내부의 기관들의 모습 혹은 우주 공간 같은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창출해낸다. 여성 성기가 내포하는 '생명의 근원성'이 우주의 '존재의 근원성'과 조우하면서 형성한 이미지가 된 셈이다. ● 하얀 대리석판에 깎기의 방식으로 시도했던 네거티브의 전략이 좀 더 두꺼운 흰 대리석으로 옮겨간 결과는 또한 예사롭지 않다. 울퉁불퉁한 터널의 표면이 여성의 신체 내부표면을 자연스럽게 연상케 하면서 이미지의 오버랩이 딱딱한 돌의 표면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틈새/구멍'이라는 오목의 공간이 빛과 만나 감칠 나게 변모하는 지점이다. ● 그의 견고체의 돌조각이 부드럽게 중화될 수 있는 까닭은 이미지의 중첩과 빛의 효과를 의도하는 실험들 외에도 펼쳐내기(develop)와 감추기(envelop)의 조형언어를 적절히 구사해나가는 작가적 역량에 기인하는 바 크다. 보따리로 싸 있는 선물 포장처럼 내용물을 꽃잎 같은 형상이 둘러싼 돌조각은 틈새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감추기가 전면에 나서면서 발현된 펼쳐내기의 공간이다. ● 이번 전시의 중심작이라 할 만한 세 개의 구멍이 뚫린 환조 작품은 세 개의 구멍이 상기시키는 인체 형상에 대한 비유의 전략도 전략이지만, 좌대 아래로 작품을 연결하는 펼쳐내기의 조형 언어로부터 의미성이 창출된다. 단순하고 명료한 형상 뒤로 주제의식의 디테일한 메시지를 감추고 관객에게 풍성한 독해를 요청하는 작가의 메시지 전달 방식 또한 의미 있는 행보이다. 이처럼 관객의 심상적 이미지와 교류하는 그의 '펼쳐지는 돌'조각이, 노동력이 소진된다는 이유로 젊은 작가들이 석조(石彫)를 기피하는 최근의 조각 현장에서, 신선한 바람이 되길 기대해본다. ■ 김성호

Vol.20091112i | 남효욱展 / NAMHYOWOOK / 南孝旭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