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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11_수요일_04:00pm
주최_재단법인 월전미술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 갤러리 WOLJEON MUSEUM OF ART HANBYE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팔판동 35-1번지 Tel. +82.2.732.3777 www.iwoljeon.org
취의翠衣, 산빛이 옷에 물들다-권기윤의 실경산수 ● 권기윤의 산수에서 보이는 청량감은 화면의 공간에 흐르는 맑고 투명한 공기가 더욱 청신하게 정신을 유지하게 하고 거울에 비추듯 명징하게 대상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성글게 그리고 침착하고 경쾌하게 묘사된 붓의 운용은 섬세한 묘사력에서 뿐만 아니라 화면을 이루는 화가의 의중이 마음결에 녹아 있어서 붓의 놀림과 필치 하나에 감정과 운율의 고저장단을 실어 붓놀림의 맛을 내는 경지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장 사생을 고수하는 지난한 세월의 이면에는 산수와 마주한 화가의 심경을 화면에 담고 그 다양한 감정의 빛깔과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다. ● 진경산수의 맥을 이으면서도 현대적 실경이 보여주는 미감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화법의 표현을 방작하고 있는 권기윤의 화면은 충실한 사생과 체험이 바탕이 된 화면의 깊이감을 담고 있다. 고래로 산수의 진경은 반복된 필력의 단련과 산수체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정신의 깊이이기 때문이다. 권기윤의 화면이 고아하고 담백정갈한 것은 반복된 현장 사생의 결과이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익힌 구도와 의중, 감각의 결과이다. 고즈넉하고 적막이 감도는 화면공간에는 투명한 대기를 뚫고 나오는 청량한 감각이 온 몸을 감싸는 듯한 기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푸른빛의 담채와 군청과 옥색의 물과 수목의 색감은 그대로 화가의 옷을 물들일 듯하고 이내 온 몸이 물들고 젖는 듯한 느낌을 전달받게 된다. 산수 속에 들어가 적막한 시공을 감각적으로 체험한 화가의 육체적 경험이 그의 화면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왕유(王維)의 시 「산중(山中)」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荊溪白石出 형계 계곡엔 시냇물 줄어들어 바닥 흰 돌 드러나고 / 天寒紅葉稀 날씨 추워지니 붉은 단풍잎이 드물다. / 山路元無雨 한적한 산길에는 비 내린 적 없건만 / 空翠濕人衣 하늘의 푸른빛에 옷깃 젖는 듯하다. 늦가을의 푸른 하늘은 붉은 낙엽에 더욱 높고 싸늘하다. "하늘의 푸른 빛[空翠]에 옷깃 젖는 듯하다"고 표현한 왕유의 경지는 그대로 회화이면서 감각화된 풍경으로 다가온다. 자연과 하나 된 흥취[天趣]가 흘러넘치는 경계, 적막감이 감도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동화된 상태에서 시인은 시공의 인생경계를 감각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권기윤이 보여주는 화면의 감각 또한「山中」에서 묘사한 높고 투명하고 푸른빛이 감도는 시공의 감각이다. 숲과 바위, 무성한 풀숲 등 산중의 경색을 그리면서도 풍광을 가리고 비치는 사이에 탁 트이고 먼 것을 겸하여 숲 사이의 그늘과 그림자를 만들어가고 산 밖의 빛을 화면으로 이끌고 와 공간의 미묘한 차이와 층을 만들어 간다. 이러한 공간 표현은 고요한 물의 움직임과 산의 두터운 깊이를 더욱 생기 있게 만들어 주고 산과 물의 형상이 느껴질 수 있게 만든다.「수경대」는 바위 위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인물 주변으로 몇 그루의 소나무와 소략한 공간을 만들고 투명한 빛을 끌어들여 공간을 밝게 하고 있다. 먹색과 옅은 갈색의 바위 표현과 함께 청색과 담채가 조화된 물결과 모래톱이 대비를 이루고 물거울에 비추듯 전체적으로 맑은 형상이 표현되고 있다. 이 맑은 형상이 공취(空翠)이며 공경(空景)이다. 실경(實景)이 맑으면 공경(空景)이 나타난다. 이 맑음 속에 허와 실이 서로를 북돋우면 그려지지 않은 곳도 모두 묘경(妙境)이 되고 천진(天眞)이 된다.「도락폭포」에서는 사선의 물결이 담담하게 가로지르는 가운데 굳건하고 세밀한 바위표현, 근경의 소나무와 관목의 집중과 생략이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묘사되고 있다.「선암계」에서는 바위의 붓 터치가 아주 자연스럽게 묘사되었는데 음영과 색조의 강약이 아쉬운 부분이다.
「하선암」은 여러 번 묘사가 된 작품으로 구도를 달리하여 좌측면의 바위에 무게감을 주었고 너럭바위와 물결 표현이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돌과 계단으로 이어진 숲길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연속시킨다. 전체적인 표현에 있어서 폭포와 물의 동적인 움직임과 바위의 둔중한 무게감, 숲의 연속이 공간의 구도를 집약시킨다. 숲과 함께 있으며 숲속으로 들어가 마주한 풍경이 일체화된 화면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근경의 시선과는 거리를 둔 채 중경과 원경을 적절히 조화시킨 작품이「내주왕」이다. 좌측전면에 배치한 바위의 위용과 묘사가 천진하게 묘사되었으며 중경의 바위와 숲을 아스라이 처리한 솜씨도 좋다. 평담하고 고요한 시간 속에 소슬한 기운이 화면을 상쾌하게 한다. ● 유려한 필선과 여유, 문사적 운치가 넘치는 권기윤의 작품은 빼어난 산수의 묘사가 빼어난 인격의 묘사이며 정신의 표상이 외적으로 나타난 형상이 된다.「삼구정 취송」은 청청한 기운이 감도는 낙락장송의 늘어진 가지가 시원시원하게 표현되었다. 인격이 높은 거인을 보는 듯한 쇄탈한 느낌이 대상을 압도한다.「석송령」은 소나무의 꿈틀거리는 위용과 기운이 웅자하다. 압도적 위용과 힘, 초연하고 대범한 모습이 표현되었다. 이런 고고하고 초일한 인격은「초간정」에 이르러 개결한 선비의 수려하고 빼어난 자태를 연상케 하는 정자를 측면 바위에 배치시키고 그 옆에 제멋대로 자라서 구불거리는 나무와 대조적으로 묘사해 놓음으로써 전아한 기상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높지도 크지도 않은 바위와 정자가 산뜻하고 빼어난 기운을 더한다. 이러한 인격적 유비는 산수에서 발견한 세계, 의미의 깊이, 내용을 시각화하면서 산수화의 형식미를 강화시키는데 산수에서 발견한 세계가 곧 일상에서 발견한 세계이다. 내부에 쌓여있는 어떤 것이 계기를 만나서 쏟아져 나오는 것, 이것이 산수라는 대상을 만나서 정화된 상태가 의미의 깊이요 내용이다. 그러므로 산수를 만나면서 내면세계의 순수함을 일깨워 나가는 것이 화도(畵道)인 것이다.
부드럽고 유희적인 수목 표현과 졸박한 심성이 어루어진 권기윤의 화면은 유려한 필선과 여유를 느끼게 하면서도 시각적 여유와 깊이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먹의 강약과 농담의 조절을 통해 가능하면 담채의 고아한 빛깔을 유지하면서 소밀하면서도 조방한 산세 표현과 공간의 빈 곳을 통해 시선의 여유를 확보하고 있다. 붓놀림이 가장 여유로운 곳, 가장 맑고 담담한 기운이 감도는 곳, 구도가 가장 트여있는 곳이 빈 곳이다. 이러한 빈 곳이 투명한 공기이고 빛깔과 소리인 것이다.「선암계 만추」에서 키 큰 나무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은 화가의 또 다른 표상일 것이다. 가을 물빛을 닮아서 맑고 적막한 기운이 감돈다. 영락과 성쇄 속에 푸르게 남은 몇 가닥 잎과 공활한 산에서 내려오는 빛줄기, 옥빛 같은 물빛이 처연하다. 「무릉 신춘」은 물빛에 비친 버드나무가 한적한 봄날의 정경을 느끼기에 충분하게 묘사되었고 대담한 생략과 분방한 필선의 묘사가 청신한 맛을 느끼게 한다. 간결한 바위 표현과 속도감 있는 나무 표현이 봄날의 운치와 잘 어울리는 수작(秀作)이다. ● 산수 속에 있으면서 적막하고 무심한 체험의 시간을 담고 있는 권기윤의 화면은 속기가 묻지 않은 고적의 시간을 묘사하면서 청명한 기운으로 맑고 투명한 화면을 연출함으로써 대기의 생명감과 다양한 감정의 빛깔과 소리를 물들이고 있다. 감춰진 미묘한 뜻이 화가가 그리는 새로운 소리와 빛깔로, 추상적 운율과 형상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 형상은 푸른빛이 넘치는 빈 곳이면서 화가의 감각을 넘어선 묘경(妙境)이 된다. ■ 류철하
Vol.20091111i | 권기윤展 / KWONKIYOON / 權奇允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