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잔디展 / KIMJANDI / painting.installation   2009_1113 ▶ 2009_1123

김잔디_Uncanny house_사진 복사물에 오일리터치_각 20×30cm_2007

초대일시_2009_1113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국민아트갤러리 KOOKMIN ART GALLERY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국민대학교 예술관 2층 Tel. +82.2.910.4465 art.kookmin.ac.kr

각자의 얼과 추억이 담겨 있는 공간들이 편리함이나 경제개발논리에 따라 생소한 것들로 변해가고 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공간은 변하기 마련이라지만, 도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낯선 공간들을 쉽게 허용한다. 공간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기억을 재생시키고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각자의 존재감까지 찾게 만드는데 말이다. ● 김잔디의 작업들은 과거의 특정 환경과 장소가 맞물려 각인된 경험에 작가의 상상을 더한 것이다. 그 경험들은 최초의 기억들로 인지되어진 고정된 관념일지도 모르겠다. 공간에 의한 경험들이라기보다는 과거 사회의 분위기, 즉 정치와 경제, 이념 등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과거 개인의 기억들이 공간을 매개로해서 작가만의 특정한 정서로 다가 오는 것들이다.

김잔디_검은입 다리_캔버스에 유채_36×46cm_2008

작가의 작업물들은 대체적으로 기괴하거나 황량하고 외롭다. 교각이나 건물의 외벽, 학교옥상, 그리고 내부로 들어 서기 직전의 어두운 입구는 접근을 거부 하고 있는 듯 음침한 느낌마저 감돌지만 그 안쪽은 하나의 해방구와 같다. 구조물을 감싸고 있는 식물들은 그런 해방구를 잊게 만드는 매혹적인 안락함의 상징이다. 그림 속에서 사람은 상대적으로 작게 등장하여 거대한 콘크리트의 덩어리에 잠식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무력감마저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덩어리들은 작가 유년의 기억이 묻어있는 특정한 취향의 익숙함이 되어 버렸다. ● 1980년대 산업화로 만들어진 도시의 환경에서 성장한 작가는 특정 시멘트 덩어리에서 자신의 역사를 느끼고 향수를 찾는다. 작가가 애착을 갖는 특정 장소와 그 근원에 대한 탐구는 이후 런던 유학길에 오르면서 귀환할 수 없는 공간, 즉 자궁 속에 놓여 있는 태아와 같은 무의식 세계로 연결되는데 정확히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는, 낯설지 않는 기억의 모태의 공간과 시간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인지하지 못하는 이전의 공간과 시간, 회기 불가능한 태초를 더욱 갈망한다. ■ 이은호

김잔디_PS-8_캔버스에 유채_36×26cm_2008

2000년대 중반, 설치위주로 시작한 나의 작업은 런던유학을 기점으로 현재 페인팅 중심으로 매체를 전환했지만 장소에 관한 경험과 상상의 총체라는 점에서 주제는 변함이 없다. 작업의 동기 역시 강렬한 장소감(a sense of place, 이푸 투안 Yi-Fu Tuan의 저서,『공간과 장소』space and place; the perspective of experience 1977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 에서 비롯되는데 장소감은 사전에 존재하지 않으나 어디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포함해 나와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장소 사이에서 발생되는 모든 감정을 이야기한다. 주로 새로 생긴 건물보다는 오래되거나 그 지역과 일체감을 이루는 즉 진정성(Authenticity)이 있는 곳, 그 장소만의 장소정체성을 전달하는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정서이다.

김잔디_Play_캔버스에 유채_36×46cm_2008

초기 작업인 한남역 아래 시설물에 대한 프로젝트, 한남역 방문기(2005,아트스페이스 휴)는 이러한 장소취향이 처음으로 작업과 연계된 것인데 우연히 만난 장소에서 받은 영감과 상상을 토대로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공간이 작업의 주제였다. 실재하는 장소의 사진과 방문기록, 건축물의 모형, 수집물 등의 사실적 근거와 허구적 스토리가 결합된 일련의 발굴기록 전시였다. 이후 아현, 동작 등을 비롯해 그동안 혹은 이후 내가 찾아다녔던 곳의 공통적 장소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장소감을 강하게 느끼는 곳들은 어린 시절 각인된 1980년대의 서울 변두리 풍경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거대한 다리기둥이나 공장 건물 등산업화시대의 시멘트 구조물이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러한 특정 장소감을 형성한 근원에 대한 탐구가 면목동에 대한 기록(2006, 중앙미술대전, 1983 면목-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라이트박스 설치)이다. 이 전시이후 런던에 유학하면서 특정장소에 대한 관심은 장소의 근원적 성격에 대한 탐구로 바뀌었다. 그리고 근원적 장소는 집으로 귀결된다.

김잔디_테이트브리튼_캔버스에 유채_36×92cm_2008
김잔디_학교_리넨에 유채_20×40cm_2009

집에 대한 탐구는 결국 노스탤지어와 결부된다. 최초의 집, 자궁의 메타포, 귀환에의 욕망과 그 원천적 불가능성은 런던작업에서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리고 담쟁이나 이끼로 뒤덮인 단순한 형태의 런던의 오랜 건물들은 그 안온함과 오랜 시간감, 혹은 폐허에 기인한 기묘함(uncanny)이 공존하여 집이 가진 원형적 아이러니의 모델로 적합했다. 이런 집들의 사진들을 모아 그 위에 리터칭을 통해 기괴성을 높이거나 출입문을 지워버린 것이 2007년의 「Uncanny house」 시리즈(작품사진첨부)였다. 단순한 원형의 집들은 세이렌(Sairen)처럼 매혹을 불러일으키나 궁극에의 출입이 거절됨(출입이 불가능하거나 일종의 두려움-출입을 막는 식물들- 때문에 꺼려지는)은 돌아갈 수 없는 최초의 고향-자궁-과 맥을 같이 한다. 내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소들이 황량함, 기괴함, 외로움 등의 부정적 정서를 내포하는 것도 이 매혹의 오브제가 주는 좌절에 따른다. 이 시리즈 이후 현재까지는 집을 벗어나 다양한 장소들에 대한 페인팅에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출입을 방해했던 식물들 자체가 장소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데 견고한 수도원 담장 밖으로 솟은 나무(수도원,2008)나 건물을 삼켜먹을 듯 번식한 잡목(어느 오후, 2008)이 그렇다. 또한 텅 빈 학교옥상(운동회, 2009)처럼 반공이데올로기나 단체행동을 강요당해온 씁쓸한 유년의 기억이 장소화 되기도 한다.

김잔디_운동회연습_MDF에 유채_25×61cm_2009

시작부터 지금까지 내가 해오고 있는 작업들은 아주 단순하다. 화면안의 장소들은 근본적으로 귀환이 불가능한 노스탤지어-궁극적으로는 자궁-의 표식이다. 그 표식을 전제로 현대성의 폐허에 대한 매혹, 무관심속에서 번식하는 식물(욕망)들, 그리고 동시에 꿈이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이 펼쳐진다. 그리고 작가인 나는 작업을 통해 장소를 기억하려는 자이며 이것은 통속적인 귀결이나 역시 자신을 기억하려는 의지와 상통하겠다. ■ 김잔디

Vol.20091110i | 김잔디展 / KIMJANDI / pa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