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나무그늘 갤러리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11:00pm
나무그늘 Gallery & Book cafe NaMuGeuNeul Gallery & Book cafe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4가 441-10번지 경방타임스퀘어 단지 1층 Tel. +82.2.2638.2002
행복을 기르는 정원사 ● 1. 나무로 가득차다. 작가 이혜임은 나무로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다. 그녀의 화면은 자연이 속삭이는 숨소리와 자연이 스치고 지나가는 미묘한 미소들로 가득차다. 향나무, 야자수, 매화나무 등 갖가지 꽃나무들이 자라나고 피어나고 있는데, 작가에게 나무는 자연을 향한 사랑과 동경에 관한 대표적인 등가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 맺으며 끊임없이 재생하는 나무는 인류에겐 신성한 힘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는 밤과 낮을 만들며 삶의 생명력과 죽음의 영속성을 드러내는 반복적인 우주의 질서를 나무가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는 우주목으로 신성의 중심체로써 여겨졌던 것인데, 자연의 수많은 창조물들 가운데 작가가 나무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러한 나무의 놀라운 힘(energy)에 있을 것이다. 작가 이혜임은 푸른 에너지로 가득한 신성한 생명체인 나무(자연)를 그리는데 있어 장황한 언어로 표현해 내고 있지 않다라는 것이다.
2. 기호(sign)로 변환된 生의'환희' ● 작가의 주된 감성은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나 유년기의 시각적 경험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지난 시간을 재생시키는 조형어법은 어린이의 조형언어를 불러오는 것으로. 이를 함축하고 생략하고 강조하여 작가만의 독특한 생명언어로 기호화 시켜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릴 적 벽지에 빼곡하게 채워 넣었던 작품은 바로 머리와 몸으로 된 나무나 양팔이 첨가된 마치 기호같은 사람이었다. 기호(sign)는 소쉬르의 이론처럼 대상(signifiant, 기표)과 의미(signifié, 기의)로 구성되어 있다 라면 이혜임의 기호들은 생명현상을 대표하여 무성한 줄기를 구성하는 생명의 아버지인 태양의 등가물인 동그라미(○)와 인간 또는 하늘 세계의 메신저라고 볼 수 있는 수직선(l)으로 조합되었다 하겠다. 동그라미와 수직선이 만난 나무는 매우 단순하다. 또한 이혜임의 화면에는 구체화된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형태를 오려낸 작은 아이들의 실루엣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나 어릴 적에」라는 제목을 달고 작가의 유년기를 직접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꼬마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나무 아래에서 강강술래 춤을 통한 놀이를 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인간은 고유한 몸짓언어(gesture)로 말을 보충해, 말하는 것을 강조하거나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몸의 움직임이 고도로 아름답게 체계화된 춤은 의사소통에 있어 어떠한 도상(icon)과 언어보다 더 강력하며 정교한 상징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하겠다. 즉, 강강술래의 손을 맞잡은 행위는 행복한 어린날의 단상의 강력한 증표이면서, 어른이 된 작가의 시선이 관조하는 삶의'환희'와 세상에 관한 너와 나의 화해와 조화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기도로서의 의미, 염원으로서의 신화적이며 제의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몸짓으로도 간주할 수 있겠다. 즉 그녀의 꼬마들이 말하는 함축성은 바로 삶의'기쁨'과 자연과의 조화, 인간과 인간의 화해임을 알 수 있다.
3. 나는 행복을 기르는 정원사 ● 이혜임 작가의 조형세계에서 관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아마도 콜라쥬(collage)로 부쳐 나간 나무 기둥과 부풀어 오른 꽃다발일 것이다. 섬세하게 부쳐나간 올이 성긴 종이는나무의 오래된 시간성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며 식물성 섬유의 모습을 거친 마티에르로 남친채 원래(original)의 기둥으로 완성되고 있다. 삶은 행복이어야 하며 행복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자리하고 있는 것은 (식물)가꾸기라는 작가의 말처럼, 자르고 붙이는 조형 행위는 마치 정원사의 정교한 가지치기와 같이 실제의 가꾸기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녀의 화면은 정면에서 나무를 직접적으로 응시하고 있는데, 작가의 화면을 대하고 있노라면 나르시스적인 자기애(삶의 애착)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즉 함축적인 기호로 만들어진 푸른 세상이 펼쳐지지만 이는 자신의 삶을 투영시킨 그녀 자신의 상징적인 삶을 시적인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유년기의 추억과 현재의 기쁨을 하나로 조합시킨 화면은 크기의 대소와 음영을 제거시키고 대신 자연의 풍부한 미소 그 가운데서도 행복한 미소만을 건져 올려내어'환희'라는 감성 하나로 녹여내고 있다는 것이다. ● 사실 이혜임의 화면에는 낮과 밤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낮은 생명의 모든 과정을 가시적인 현상으로 제시하고 있다라는 것과 밤은 소멸과 탄생의 비가시적인 신비한 힘을 담고 있다 라고 볼 때, 우주의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나무의 속성을 미묘한 시간성으로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행복한 말」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까만 바탕에서의 나무는 발광하며 스스로 찬란하게 빛나오르고 있다라는 것이다. 즉, 작가는 나무(자연)의 내재하는 강한 생명력에 깊은 감동을 받고 있으며, 개개의 존재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 피어나다, 노래하다, 빛나다, 우뚝 서다는 작가의 화면을 서술해 낼 수 있는 언어들로, 꽃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미묘하게 토해내는 향기와 나무의 자라나는 소리에 각각의 기호체계를 주며 작가는 온 몸을 다해 느끼고 사랑하며, 온 힘을 다해 대자연이 주는 기쁨을'환희'로 변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행복한 시간들(작가의 삶)을 이입시키고 조형으로 완성하는 행복을 길러내는 정원사처럼 말이다. ■ 박옥생
Vol.20091108i | 이혜임展 / LEEHEEIM / 李蕙任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