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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10_화요일_05:00pm
2009-2010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2098번지 제2전시장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한영애; 기억을 위한 풍경 ●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경험이 있다. 남과 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언어가 그다지 정교할 필요는 없다. 어느 한적한 오후 텅 빈 집에서 느꼈던 그 서늘함은 혼자 짊어질 삶의 무게이지 굳이 남과 소통할 필요는 없었다. ● 깨끗이 정돈된 집에 늦은 오후 햇빛 한 조각이 거실 바닥에 머물고 있다. 환등기를 켠 듯 희뿌연 광선속에 나른한 먼지들이 떠다닌다. 집안이 정돈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오후 햇볕이 부드러우면 부드러울수록 텅빈 집의 적막함이 더 서늘하게 느껴지던 기억이 있다. 성장기의 어느 한적한 오후, 성년을 앞두고 마주쳐야 했던 삶에 대한 공포인지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엄마가 집에 없던 어느 날 선잠에서 깨어 대면하여야 하였던 어린 날의 공포인지 모른다. 집안이 정돈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방안이 어둑할수록 커져가는 서늘한 감정은 세월이 한참 지나고도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한적한 오후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할 일이 산적한 수많은 날들 피할 수 있었던 그 경험의 무게가 그날 그 한적한 오후, 빛 조각이 머무는 거실 한 모퉁이에서는 꼼짝없이 마주쳐야 했던 것이다.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경험이 있다. 언어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경험들은 분주한 일상이 돌아가면 기억 저편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던 그 경험들은 삶의 모퉁이를 돌 때 마다 되돌아온다. 한영애는 기억을 작업한다. 의식 저편으로 밀어 두었던 그 기억과 경험들이 솜털처럼 스물 스물 피어나는 나무덩이 사이로 아니면 동물들이 떠다니는 구름 공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 이 작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때문에 이 작가의 그림에는 풍경이 많다. 산이 나타나고 나무가 보이고 구름이 떠다닌다. 산과 나무는 여행에서 마주쳤던 그 산과 나무일 수 있다. 그러나 마주쳤던 나무와 풀이 그때 느꼈던 감정과 기억의 단초가 되지 못하면 작품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았던 그 구름을 그리는 이유는 구름에 묻어있던 그 서늘한 감정, 혼자 올라탄 기차에서 대면하였던 그 황망함을 전달하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경험이 있다. 언어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경험과 감정들은 이야기 되지 못한 채 기억 저편으로 가로 앉는다. 그러나 빛이 좋은 조용한 오후면 되돌아오는 이 감정들은 어느 한나절 불쑥 나타났다 기표를 찾지 못하고 가라앉는다. 이 작가는 의식 저편의 감정과 기억을 이미지의 낚시 줄에 엮어 건져 올리고자 한다. 그래서 그 풍경이 언어를 잃었던 감정과 기억의 기표가 되고자 한다. 다락방 뿌연 먼지 속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그 사진첩을 들추듯 부유하는 나무와 구름은 기표를 찾지 못하고 가라앉았던 그 감정과 기억을 반추한다. ● 작가의 작품은 긴 시간을 요구한다. 바닥에 놓인 캔버스에 층을 쌓아 올리듯 아크릴과 파스텔로 이미지가 그려지고 시간이 지나면 곧 날아가 버리는 이 파스텔을 굳히기 위해 유액이 발린다. 유액이 마르면서 이미지들은 안료의 투명한 층 저편으로 한 걸음 뒷걸음친다. 그러나 유액은 한번만 칠해지는 것이 아니다. 열대여섯 번까지 겹겹이 쌓아올려지는 유액은 그 쌓아 올리는 횟수만큼이 시간의 결을 요구한다. 실제로 한번 칠해진 유액이 마르고 다시 작업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사나흘이 소요된다. 겹쳐지면 겹쳐진 만큼, 시간이 소요되면 소요된 만큼, 이미지는 더 멀리 물러간다. 나무와 구름 동물들이 떠다니는 풍경은 이렇게 화석이 굳듯 유액의 층에 갇히게 된다. 그 옛날 한때 존재하였던 동물의 자취가 끈끈이 흘러내리는 용암 속에 굳어지듯 사라졌을 감정과 경험이 유액의 용암 속에 굳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풍경에서 보게 되는 것은 감정과 경험의 화석이다.
이 작가는 굳이 파스텔과 연필을 쓴다. 가루가 날아가 버리는 매체를 고집하는 것은 시간에 저항하지 못하는 이 매체들의 일회성 때문이다.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았던 경험과 감정이 그의 풍경들에 간신히 걸려있듯 아니었으면 가루가 되어 흩어질 이미지들이 유액에 갇혀있다. 굳이 파스텔과 연필을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광택과 부피감이 없는 이 매체가 지층으로 스며드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부유하는 이미지들은 시간을 두고 그 스며드는 효과 때문에 층층이 쌓아올린 유액의 창 너머로 한층 더 시간의 결을 더하고 있다. ●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 경험이 있다. 언어의 그물망에 걸리지 못한 경험과 감정은 그러나 상처가 되어 표류한다. 소통이 되는 한 경험과 감정은 공통의 것이고 무게도 나누어 짊어질 수 있다. 유액이 겹겹이 칠해진 한영애의 작업은 그래서 우리에게 은밀한 소통을 요구한다. 감추진 기억, 혼자 있을 때 대면하여야 했던 그 감정과 경험들의 무게를 이 작품에서 나누는 것이다. 말을 잃어버린 감정의 기표를 산과 나무, 동물들이 떠다니는 마음의 풍경 속에서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 신지영
Vol.20091108c | 한영애展 / HANYOUNGAE / 韓榮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