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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06_금요일_04:00pm
오픈스튜디오 동양화, 서양화, 판화_미술학부 각 전공 실기실, 옥외공간
공공미술 프로젝트_골목에서 '주름'잡기 18개의 개인 및 팀 프로젝트, 6개의 동문작가 프로젝트 북아현동 골목, 추정아트홀, 주름오피스
골목마실_2009_1106_금요일_04:30pm~06:00pm_북아현동 골목길 투어 마을잔치_2009_1106_금요일_06:00pm~09:00pm_교내 잔디마당(이웃과 함께하는 작은 잔치) 토론회_2009_1117_화요일_02:00pm~06:00pm_콘서트홀_프로젝트 결산 토크콘서트
토론패널 김용익(작가/경원대 회화과 교수) 박 경(2010APAP총감독/UCLA시각미술과 교수) 임정희(미학미술평론/ 연세대 겸임교수) 프로젝트 참여 동문작가_재학생
문의_미술학부 02-393-2601~3 www.골목골목.com cafe.naver.com/jjugle35 www.chugye.ac.kr
추계예술대학교 CHUGYE UNIVERSITY FOR THE ART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190-1번지 www.chugye.ac.kr
골목에서 '주름'잡기 ● 골목_이웃 북아현동을 말할 땐 '골목'부터 얘기해야한다. 담 옆으로 이어진 길 양편에 자동차들이 죽 주차돼 있는 것이 어느 이면도로에서나 볼 수 있는 보통의 풍경인 반면, 북아현동 골목에는 그 자리에 화분이 놓여 있고 빨래가 널려 있다. 자투리땅은 텃밭으로 일궈져 갖가지 먹거리들과 소박한 화초들이 자라고 있다. 수없이 뜯어내고 덧댄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집들은 그 집과 함께한 수많은 날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뿜어내고 있다. 그곳은 좁고 비탈져서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사람 전용의 공간이다. 살림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쓰여지고 재배치되는 주거 공간의 자연 생태적 속성이 지속되고 있는 곳이다. ● 골목길 쪽으로 나있는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고 방인 구조는 북아현동에서 흔하다. 이곳에서 골목은 앞집의 마당이면서 우리 집의 마당이기도 한 공동의 살림공간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임터다. 팔만 뻗어도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앞뒤 집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밀집구조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공유의 개념을 가르쳤을 것이다. 공간의 공유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리는 삶의 공유로 이어진다. 골목에 수많은 이야기들과, 그것들이 잡아끄는 힘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긴밀한 공동체적 소통이 그곳엔 있다. ● 이처럼 북아현동의 골목은 공간구조의 특징에 머물지 않고 효율성 위주의 우리네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생태적,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품고 있다. 골목에서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개념은 '이웃'이다. 내가 사는 집에 인접해 있는 집으로서의 이웃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골목이라는 공간의 공유에 바탕 한 인간이해의 한 유형으로서의 '이웃'은 쉽게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골목은 '이웃'을 통해 세계를 배우고 새로운 공동체적 관계를 깨달아가는 훌륭한 '과정'의 학습장이지만, 대학과 지역사회는 아쉽게도 소원한 이웃이다.
주름_과정 북아현동은 거대한 주름덩어리다. 고생대지역에 자리 잡아 국토 대부분이 주름져있는 우리나라에선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특징일수도 있지만 자연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토목공사의 태도로 국토를 재단해버리는 풍토에선 주름진 능선이 그대로 살아있는 주거지역은 '보호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 산과 강이 많을 수밖에 없는 주름진 땅에서 주름진 자연지형과 더불어 살며 가꿔온 우리네 문화는 돌고 돌아가는 '과정'을 지루해 하지 않는다. 화양구곡, 벽계구곡, 구곡폭포 등의 지명에서 드러나듯 여러 번 접힌다는 것은 그 사이에 더 많은 볼거리를 함축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 환경은 안타깝게도 자꾸만 '과정'을 생략해 버리는 쪽으로 달려간다. 산위에 등고선을 그리듯 능선을 훑으며 구불구불 나 있던 지방도로들 마저 높낮이와 좌우굴곡 없는 도로로 뻥뻥 뚫고 있다. 도로망뿐 아니라 교육제도, 사회정서, 국가정책 등 거의 모든 분야가 '과정'은 '결과'를 이루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건너 뛰어야할 성가신 무엇으로 여기는 듯하다. 무한 경쟁의 속도전이 펼쳐지는 지금 이곳에서 꾸깃꾸깃하고 쭈글쭈글한 주름 틈새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리석을 행동일 뿐일까. ● 세계를 무한히 접힌 '주름'으로 본 라이프니츠의 관점에 따르면 언뜻 보이는 표면이 '현실'이라면 '실재'는 접혀진 주름사이에 숨어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궁극적 실재(결과)란 따로 존재하기에 도달해야할 무엇이 아니라 현실의 연장(과정)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인데, 라이프니츠의 세계관이 아니더라도 '결과'에 신속히 도달하기 위해 '과정'을 뛰어넘는 태도는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 현상을 소중히 여기되 접혀져 있는 주름 틈 사이사이에 무한히 숨겨져 있는 잠재적 특이성과 개별성을 제대로 읽어내고 살려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골목에서 '주름'잡기_세상을 응시하기 ● 골목이 북아현동의 지형구조의 특성을 수평적 망으로 본 것이라면 주름은 수직적 망으로, 골목이 '이웃'의 개념이 살아있는 삶의 공동체적, 생태적 성격에 주목한 것이라면 주름은 시간적, 공간적, 물리적, 사회문화적인 중층성을 함축하고 있다. 골목과 주름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북아현동의 틈새 곳곳엔 일상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개별적 삶의 소중한 가치가 무수히 잠재해 있다. ● 하이데거는 '창작이란 퍼올림, 던짐, 작동, 변용, 일어남, 즉 과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불완정성의 틈을 통해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며, 이러한 각성으로부터 오히려 미래를 향해 자신을 능동적으로 던지게(기투,Entwurf)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퍼올리고 던지고 열어가는 과정을 프로젝트로서의 예술행위라 할 수 있다. 예술로서의 프로젝트는 현재에 대한 불안과 불편함의 감각(관찰)들로부터 삶의 결단(인식)을 거쳐 예술적인 상상력으로 계획하고 행(수행성)하는 것이다. ● 프로젝트로서의 예술은 모든 자명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그 의미를 다시 물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낯선 환경,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하나의 의미가 누구를 만나는가, 무엇을 만나는가에 따라 수시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낯섦이 동반하는 불편함 때문에 스스로를 낯선 마주침에 노출시키는 일 자체를 꺼린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매끄러운 시선을 가로막으며 귀환하는 응시로 언캐니(기괴함)'이다. 우리는 내가 바라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는 '시선'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 감응하는 '응시'엔 점점 둔해져 가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응시하는 것은 '이웃'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과정'을 밟아 결과를 만들어 가는, 불편하지만 매우 유용한 도구라 할 수 있다. 과연 삶의 현장으로서, 학습의 장으로서 북아현동에 던져진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이 응시와 주름 속에 은폐된 낯설음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 정원철
* 주름잡다: 가쾌(家儈)-집주름으로부터 유래. 집주름이란 한동네에 오래 머물러 살면서 가가호호의 내밀한 사정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을 칭함
Vol.20091106e | 오픈스튜디오/공공미술 프로젝트_골목에서 '주름'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