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11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목인갤러리_MOKIN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82번지 Tel. +82.2.722.5066 www.mokinmuseum.com
마음 속으로 난 길과 분수 몽상적인 풍경그림과 옛 그림이 담겼던 전통적인 프레임을 연상시키는 아트북작업, 그리고 동판화로 매만진 인물그림이 작은 작업실을 채우고 있다. 한결같이 종이의 피부와 육체를 자신의 감수성의 손길 아래 고이게 해서 어루만진 흔적들이다. 회화와 판화, 그리고 수공으로 제작한 책 작업은 종이만이 지닌 물성과 그 특성을 조심스레 매만진 자취들이며 그 위에 얹혀진 이미지는 모두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가 그려낸, 상상한 풍경은 산과 바다, 나무와 풀, 물과 인공의 건축물들이 문맥없이 조우한 결과로 등장하고 그로인해 다분히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실제 풍경에서 따온 것이면서도 어딘지 이상하고 기이한 느낌이 스물거린다. 비현실감이 감도는 낯선 장소에 인적은 부재하고, 홀연 시간은 정지되고 그래서 다만 감당하기 어려운 침묵만이 내려앉은 그런 황량함이 드리워져있다. 풍경 안에 또 다른 풍경이 몸을 열고 풍경 속의 길이 다른 길들을 내고 있다. 인공의 구조물이 벽과 길을 내고 다시 그 길을 가로 막는가 하면 벽이 길을 내어주는 그런 미로같은 공간이 흩어져있다. 작가가 그려놓은 이 풍경은 일종의 지도와도 같다. 그것은 작가가 상상한 이상적인 풍경, 혹은 삶의 여정이 그려진 길의 풍경이자 일상 속에서 만나고 체험한 모든 길에 대한 기억들이다.
작가는 산책길에서 경험한 공간에 대한 여러 인상과 느낌, 기억과 감각을 이미지화했다고 한다. 공원을 둘러보고 또는 숲 속으로 난 길을 걸어도 보고 아니면 도심 속에 인공으로 꾸며놓은 휴식의 공간을 소요하면서 이런 저런 상념을 부풀려본 듯 하다. 그렇게 경험한 장면을 이미지화했다. 나무와 풀과 꽃들이 모여있는 공원에는 우리 눈에 축복처럼 솟아오르는 분수가 있다. 화단 가운데에 아니면 공원의 중심, 심장부분에서 중력을 지우고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는 환희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순간 절개하고 퍼트린다. 쏴아하는 물소리와 시각적 볼거리를 안기며 흩어지는 물의 육체는 세속의 소리를 지우고 오로지 물소리로 청자의 귀를 채운다. 사실 산에 가서 만나는 계곡의 물이나 폭포, 혹은 강이나 바다가 들려주는 물소리는 근원적인 소리들이다. 번잡하고 초라한 인위의 목소리나 소음을 죄다 걷워내고 고막안으로 영원히 그치지않고 밀려드는 그 소리는 육체에 찌든 모든 혼탁하고 불필요한 소음을 지운다. 씻겨낸다. 그래서 우리들은 저마다 물 앞에서 정화의식을 치른다. 물은 그렇게 씻고 지우고 치유하는 기능을 은유한다. 동양의 현자들은 물소리를 듣기 위해 산으로, 계곡으로 들어갔다. 가장 맑고 시원한 물소리를 듣기 위해 급속으로 흐르는 계류를 마주하거나 그것과 독대하기 위해 그 지점에 정자를 세우곤 했다. 혹은 바위에 엎드려 하염없이 물소리에 귀를 채우기도 했다. 더러 직립해서 관폭하기도 했다. 관폭자의 정신세계 내의 의미 있는 부분과 의미 없는 부분을 정돈함으로써,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며 부당한 정신의 찌꺼기를 사상捨象시킨 채 진정한 의미처로 그의 정신을 곧추세우고자 하는 의지였던 것이다. 이처럼 물소리는 세속의 모든 시비소리를 지워낸다는 의미가 있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보면 자기 내면의 소리와 마주한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영원으로 이끌기도 한다. 또한 옛 선비들은 물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겼다. 물이 좀더 낮은 데로 쉼없이 영민하게 흐르는 동의 특징을 지녔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문사들이 흐르는 물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혹은 당장이 앞일도 예상하기 힘든 변화막측의 세상 속에서 지혜를 찾는 것이다. 아울러 정직하게 흐르는 물처럼 자신의 처신에는 분명 순리적인 선택이 있으리라 믿었다. 임수연의 풍경에 물과 분수가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산수화의 전통과 연결되는 맥락이 있다. 계류나 폭포 대신에 인공의 분수지만 정원이나 공원, 인공의 도시 가운데에 만나고 접하는 그 분수 앞에서 사람들의 소리, 인공의 소음을 지우고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는 작가의 자화상이 어른거리는 그림이다.
그런가하면 지상에는 무수한 길들이 퍼져있다. 길은 나보다 앞서 그 누군가가 지나간 자취로 다져진 부위다. 한 개인의 실존의 무게가 밀고 나간 어떤 지향점들이 길로 이어졌다. 길을 간다는 것은 그 길과 함께 욕망하는 생의 어느 지점을 보는 일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길을 가고 또한 길을 만든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어지러이 흩어놓은 길들은 그들만의 소통의 욕구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하려면, 그와 소통하려면 그가 간 길을 따라가 주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그림은 여러 길과 벽을 보여준다. 미로처럼 만들어진, 그려진 풍경은 자연계와 인공의 도시가 기이하게 얽힌 상상 속의 장소다. 작가가 만들어낸 이 풍경은 몽환적인 산수풍경, 도시풍경에 가깝다. 저 멀리 산들이 보이고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에 인공의 구조물들이, 그 기하학적인 형태들이 도열해있다. 그 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일 수도 있고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의 혼돈속에서 낭만적 도피를 꿈꾸고자 하는 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게 그림은 현실계를 지우거나 그로부터 낭만적인 도피를 꾀하게 해주는, 그래서 자신만의 이상적인 공간을 가설하려는 의지같다. 해서 과도한 볼거리와 소음으로 지쳐있고 멍든 도시와 무수한 사람들의 소리를 지운 평화롭고 고요한 장면을 선사하고자 한다. 자기 마음에 안기고자 한다. 풍경의 중심부에 커다란 분수가 솟구치면서 세속의 소리를 죄다 지운다거나 삭막한 풍경위로 날개를 단 (여자)마네킹이 비상하기도 하고 짙은 검정색을 배경으로 부드럽고 미묘한 회색톤으로 번져나오는 여자의 얼굴은 더없이 명상적이고 관조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이미지다. 그 이미지는 그리거나 표현하기 보다는 지워나가면서 만들어진 이미지다. 그런 측면이 메조틴트 기법의 묘미일 것이다. 깊은 어둠과 무한한 공간, 아득한 시간 속에서 번져나오는 누군가의 얼굴이다. 이상적인 얼굴, 작가 내면의 얼굴일 것이다. ● 한지에 채색화 작업, 판화 뿐만 아니라 '북아트' 역시 이 작가의 주된 작업이다. 공들여 만들어나가는 수공의 책작업은 화첩이나 병풍구조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보는 그림이자 읽는 그림이며 책그림이다. 따라서 좌대에 놓여 관자들의 개입 속에 몸을 연다. 이는 전통적인 프레임 방식에서 차용한 것이다. 사실 동양의 프레임은 화첩, 병풍, 두루마리, 족자 등의 형식으로 그림을 보는 이의 개인적인 관람을 허용하는 프레임이자 일시적으로 가설되었다가 사라지는 프레임이기도 하다. 그것은 시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면서 한정된 평면의 한계를 넘어서고 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을 이동시킨다. 그 같은 그림은 해가 떠서(동) 해가 지는 방향(서)으로 본다. 읽는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에 조응한 것이다. 그림은 결국 책이었다. 두루마리는 그리기와 보기 두 측면에서 시간과 장소가 변하는 움직이는 그림이다. 그것은 사적인 매체의 극단적인 형식인데 단 한 사람의 관람자 만이 그림이 움직임을 조작하고, 읽는 장면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두루마리는 오른쪽에서 왼쪽방향으로, 한번에 팔 길이만큼 펴놓고 읽는/본다. 그것은 끝없는 다양함을 연상시켜준다. 작가는 그 같은 전통적인 프레임을 응용하기도 하는 한편 바느질과 조각적 행위, 그리고 그림과 판화 등을 종합적으로 맞물려내고 있다.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작가의 책작업(아트북)이 동양화의 전통을 해석하는 여러 시선의 한 유효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 그런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전시 공간을 풍요롭게 보여주는데 그로인해 그 공간과 작품들은 서로 융합해서 사람들이 편하게 쉬고 마음의 고요와 명상, 속세의 소리를 잠시 휴지하는 그런 체험을 불러일으키는 연출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작가의 마음과 조우하게 하는 것이다. ■ 박영택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며 우연히 보게 된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다름아닌 전장에서 책을 읽는 한 병사의 모습이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포와 불안한 현실의 현장에서 그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마도 그건 그가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낭만적 도피의 시간일 것이다. 그가 읽는 책이 어떠한 것이 던, 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우리는 책을 대하는 순간 책을 쓴 작가의 시간을 같이 여행하며, 또한 그가 만들어 놓은 공간을 함께 느끼게 되는 것이다. 너무 많고, 너무 복잡하고, 너무 빠르기만 한 사회, 나 또한 무엇인가 기댈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종교적대상이던, 휴식, 취미, 또는 사랑이든… 그러한 바람들이 나를 치유하며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는 낭만과 유토피아의 세상을 유영(游泳)하며, 평안함과 안정을 찾고 고요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 'Romantic Escape'展에서는 여러 풍경 작업들을 볼 수 있다. 긴 여행, 말하는 분수, 속삭이는 숲 등, 우리의 일상에서의 생각의 행선지만 바꾸면 되는 어디에서나 있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들이 특별해지는… 마치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동화책을 펴보듯 초현실적이고 따듯한 전시를 꿈꾼다. ■ 임수연
Vol.20091106c | 임수연展 / LIMSOOYEON / 林洙延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