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HOUETTE PUZZLE

곽남신展 / KWAKNAMSIN / 郭南信 / mixed media   2009_1105 ▶ 2009_1205 / 일요일 휴관

곽남신_Silhouette Puzzle_알미늄에 스프레이_122×242cm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이마주_GALLERY IMAZOO 서울 강남구 역삼동 735-33번지 AAn tower Tel. +82.2.557.1950 www.imazoo.com

그것이 무엇이건, 곽남신의 세계에 들어온 것들은 곽남신적인 것이 된다. 그만의 고유한 정서가 사람과 사물들을 재규정한다. 이 세계는 조절가능한 부조리와 넘치지 않을 만큼의 유머로 조율되어 있다. 심각하지 않은 농담, 과하지 않은 유머, 은근한 고백, 가벼운 외설의 뉘앙스… 흑백의 모노크롬은 이 세계로 지나친 부재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약간의 엄숙주의와 중량감을 공급한다. 단색조의 대비는 덧없는 일상의 모티브들을 최소한의 숙연함과 관련되도록 한다. 선명한 명암의 단차만큼 긴장감이 조성되는데, 하지만 뭐랄까, 이것은 성격이 분명치 않은 긴장감이다. 다른 요인들도 이 선명할수록 증가하는 모호함과 무관하지 않다. (2차원으로서)회화와 탈회화, 평면과 주름, 사실묘사와 단순구성 같은 상충하는 요인들의 대립으로 인해 이 세계는 정의나 규정보단 해석을 선호하는 것으로 기운다. 일테면 다소 냉소적인 조크, 느슨한 애환, 부조리한 회화, 중성적인 묘사 같은.

곽남신_소녀2_캔버스에 스프레이, 색연필_162×130cm_2009

이러한 정서가 캔버스를 회화적 지지대로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회화는 지긋지긋한 평면성이라는 근대적 이데올로기를 슬쩍 위반한다. 모서리로부터 확산되는 예민하고 다소 신경질적으로도 보이는 겹 주름을 만들면서 회화적 파국이 초래된다. 캔버스는 평면성의 이념을 스스로 배신한 채 탈회화의 노선, 곧 이야기의 흐름 한 가운데로 개입한다. 이제 다만 개념이거나 매체로서의 회화는 부정된다. 매체와 메시지, 지지대(support)와 내용(contents)이 뒤섞인다. 회화 자체의 존재론적 속성이 고스란히 메시지의 일환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곽남신_스케이드보드_캔버스에 디지털출력, 색연필_115×170cm_2009

이렇듯, 곽남신의 회화는 자기참조(auto-reference)적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외부에 개방한다. 세잔적인 모던회화의 집착에서 라우젠버그적인 포스트모던 탈회화를 거쳐 다시 게르하르트 리히터 식의 회화복원으로 이어지는 회화담론의 다소 소아병적인 갑론을박식 연대기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 회화론은 독창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2차원과 그 부정의 변증을 통해 평면성에 대한 근대적 성찰을 따르면서도, 그 성찰 자체를 탈회화의 출구로 삼는 양가적이고 통섭적인 회화를 의미한다. 회화와 탈회화, 2차원과 3차원, 회화의 성찰과 성찰적 탈회화가 장벽을 넘나들면서 서로를 통섭해내는 것이다. 이 회화론은 모던의 규범을 문제삼는 동시에, 포스트모던적 강령들에도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회화는 이야기로서의 회화, 이야기에 가담하는 회화라는 자기배반적인 노선으로 나아가면서도, 실루엣이라는 엄격한 2차원의 규범을 준수한다. 회화의 경계는 범해짐으로써 다시 제기되고, 부조리한 것이 됨으로써 다시 문제의 전면에 나선다.

곽남신_우울했던 날 2_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마커_120×184cm_2009

사람과 사물들을 자주 실루엣으로만 존재시킴으로써, 곽남신의 이야기는 간결하면서 가벼운 것이 된다. 전후문맥과 세부묘사, 역사와 상황은 생략된다. 표정과 눈빛은 어둠의 이면으로 물러서 있다. 누락과 생략, 부재가 이 플롯을 이끄는 주된 용법이지만, 달과 공의 일치와 같은 역설화법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 브래지어 같은 강조어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곽남신_Wow!_캔버스에 스프레이, 색연필, 아크릴물감_160×205cm_2009

실루엣은 기표와 기의의 일치를 허용하는 놀라운 언어형식이다. 그것에 있어서는 윤곽이 곧 내용이고, 내용은 오로지 윤곽으로만 한정된다. 내용과 형식의 일치인 셈이다. 형식을 넘어서거나 못 미치는 내용은 없으며, 따라서 형식을 떠나서는 내용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야기는 언어 자체로 환원되고, 언어는 이야기의 거의 전부가 된다. ● 실루엣은 또한 부재를 묘사하는 언어다. 정체의 부재, 차이의 부재, 그리고 질량의 부재… 이로 인해 사람과 사물이 동등한 반열에 서게 되고, 어떤 충돌도 없이 회화적 2차원에 동반된다. 이 실루엣은 그 안에서 사물과 사람, 자아와 타아,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되고, 하나는 모든 것들의 암시가 되는 하나의 용광로, 시각적 응집이 된다. 그것에 의해 모든 사물의 가족성과 모든 인간의 형제애가 우회적으로 고백되고 있다.

곽남신_도약-추락_캔버스에 스프레이_182×273cm_2009

곽남신의 실루엣 회화는 사물의 차이를 무효화하고, 기표와 기의의 단절을 치유한다. 그것은 물질로서 캔버스와 개념으로서의 평면, 시각적 형식과 내용을 관통하는 하나의 길을 내는 회화요 회화론이다. 작가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다지 무거운 내용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회화의 언급도 바로 이러한 기조 위에서다. 그에게 회화는 그 자신의 삶과 동떨어지거나 단절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관계 안에 있는 훨씬 더 정합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마틴 부버(Martin Buber)를 따르면, 태초부터 있었던 것은 단절이 아니라 관계였다. ■ 심상용

Vol.20091105i | 곽남신展 / KWAKNAMSIN / 郭南信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