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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05_목요일_05:00pm~07:00pm
입장료_무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요일_11:00am~05: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아트포럼 뉴게이트 ARTFORUM NEWGATE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3-20번지 프라임빌딩 1층 Tel. +82.2.517.9013 www.forumnewgate.co.kr
시간의 힘을 보여줘! ● 캔버스 화면은 대개 청과 백의 두 가지 색을 손으로 직접 칠한 흔적으로 채워진다. 이 단순한 손의 흔적이 화면을 요동치게 만들어 놓는다. 물감에 가해진 힘과 방향 그리고 반복되는 흐름과 율동이 한 캔버스를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이렇게 김춘수의 작품은 가장 단순한 회화원리에 대한 무궁한 사유의 결과로서 출현한다. 회화의 표면은 그래서 기본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대한 문제의 답변이 된다. 회화에 사용된 원리들은 김춘수의 지극히 격렬한 사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물질을 활성화하는 도구로서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회화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주술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작가는 빈 캔버스 위에서 힘 혹은 운동으로 형성된 시간과 회화의 표면이라는 정지 상태를 결합시키는 사유의 연금술사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김춘수의 울트라마린 청색은 우선 의미론적 정체성을 구축한 후에 회화의 표현형식으로 이전된다. 그러니까 울트라마린은 Ultra와 Marine이란 두 단어가 결합된 단어이고, 이것의 의미를 해석의 차원으로 올려놓으면, 바다를 초월하는 혹은 바다의 색인 마린을 초극하는 어떤 높은 차원을 의미한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그림들은 바다와 닮았거나 그것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요동치는 물감의 흔적들은 바람에 이는 물결이나 광폭한 파도가 된다. 캔버스의 고요했던 죽음의 표면은 그의 행위로 인하여 심하게 요철하고 끊임없이 출렁이는 자연의 유기체적인 생명이 된다. 푸른색 손질로 화면을 가득채운 김춘수의 회화는 이전 유사한 색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사용했던 이브 클라인을 연상하게 만든다. 클라인의 청색은 단지 덮어 씌워진 표면이 되거나 표면을 지향하는 물체의 속성을 중립적으로 윤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반하여 김춘수의 것은 표면의 장력으로부터 확장되어 나온 일종의 힘으로서 나타난다. 물론 이 힘은 백색과의 역학적인 대립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 대립 항이 물질의 부피나 무게가 아니라 순수한 운동이라는 인상을 주면서 회화의 표면을 중심에 두고 분할되는 내, 외부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는다.
최근의 작품은 이러한 유사성이 변주될 지평을 넓혀놓은 느낌을 준다. 백색이 더 많이 가미되어졌고, 이와 더불어 이전의 격렬한 운동도 안정적으로 변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캔버스의 크기도 이전과 비교할 때 진정된 크기로 소급되어 있는 것 같다. 과거 작가는 큰 화면에 격렬한 운동성으로 감각의 수용한계를 넘어서며, 일종의 숭고미와 유사한 감정들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보다 내밀한 운동성에 접근한 것 같고, 또한 그 내밀성을 위하여 크기가 가진 위협적인 인상을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숭고미는, 시각적인 차원에서, 안전을 위한 거리를 확보한 후에 전달되는 미 감정이었지만, 최근의 작품들은 관객을 물리적으로 보다 가깝게 불러들이면서, 다른 감상의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이 신작들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이전의 형상유사성(analogy)에서 더 나아갔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식으로 말하자면, 이제 김춘수의 회화는 더욱 자기지시적인 성격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와 더불어 리터러시는 상대적으로 감소되었다. 약간 쉽게 풀이하면 김춘수의 회화는 연상의 고리를 끊고, 그 자체인 회화표면으로 환원한 것이다. 그러니까 모더니즘 회화론이 주장하는 그 원리적인 궁극점에 도달한 셈이다. 이런 도식으로 본다면 별 재미가 없다. 이 도식을 깰 근거는 바로 그 작품이 제공한다. 김춘수의 회화는 캔버스를 대면하여 작가가 수행했던 작업의 과정과 그 시간을 재현한 것으로 정의하면 보다 풍부한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결과를 먼저 정리해 보면, 캔버스 표면의 질감은 더욱 잘 인지되고, 손질의 흔적은 그 자체로서 존재감을 얻었고, 흘러내린 물감의 흔적에서 중력과 물질 사이에 대응을 읽어낼 수 있다. 전체적인 화면을 본다면, 더욱 간략해진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화가가 이전과는 달리 단호한 의지로서 손질(=회화행위)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한 행위의 궤적도 명료해졌다. 손질은 이제 행위의 역동성뿐만 아니라 색을 이루는 원료의 성질까지 잘 드러내준다. 여러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 얼룩이나 의도적인 제어에서 벗어난 듯한 자국들은 행위의 시간이 구성한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의 회화가 지닌 형질 또한 유지되고 있다. 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방향성은 이전의 가파른 경향을 완화했지만 여전히 인식되는 부분이다. 손질의 강도도 공격적인 성향에서 진정된 추세로 나가지만, 언급하였듯이 더욱 더 단호해졌다. 이로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나아가는 경로와 과정을 선명하게 표시하고 있다. 필자와 같은 미술사가들에게 이러한 분명한 발전상은 반갑고 또한 고맙다. 이것은 또한 작가의 사고와 실천이 논리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지속적이고 발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본 김춘수의 회화는 회화성의 근원에 다가가서 결국의 시간의 힘을 남기고, 그 관념의 바다로부터 탈출해 나 온 여정을 보여주는 기록과 같다. ■ 김정락
Vol.20091105b | 김춘수展 / KIMTSCHOONSU / 金春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