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11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_11:00am~07:00pm
코사스페이스_KOSA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37번지 B1 Tel. +82.2.720.9101 www.kosa.asia
정학현의 '사람의 초상'에 대한 단상 ● 어떤 전시에 출품하든 작가는 자신의 나신을 밝은 조명아래 드러내는 듯한 당혹감과 함께 건널목에서 노인을 구한 소년과도 같은 흥분을 갖게 마련이다. 특히 자신의 노력과 번민의 과정을 온전히 드러내게 되는 개인전이야 말로 고통과 희열이라는 극단의 경연장이 될 수 밖에 없다. 조각가 정학현에게 이번 개인전은 그가 그동안 치렀던 다섯 번의 개인전과는 다른 각별한 의미를 갖는 전시회라 할 만하다. 환갑을 목전에 두고 개최하는 전시회이기 때문에 그의 예술과 작품 세계는 이제 새로운 출발 선상에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아울러 이번 전시는 그가 그동안 제작해온 작품경향과는 다른 중대한 전환을 감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학현은 이전의 작품에서 줄곧 등장했던 차가운 덩어리와도 같은 닫힌 형태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음을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주고 있다. 에너지를 내면으로 응축시키던, 그래서 외양은 단단하지만 고뇌의 침전물을 보는 것 같았던 과거의 조형과 달리 열려진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옥죄던 질곡에서 벗어나 생을 반추하고 나아가 인간 내면의 다양성을 표현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제목도 '사람의 초상'인가 보다. 돌, 주물, 목재와 금속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던 정학현은 이번에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주재료로 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명확성과 간결성이 특징인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되 공장제 기성품을 다시 절단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더하여 작품을 만드는 수고를 감수하고 있다. 균일화, 균제화로 요약할 수 있는 기성품을 녹여 붙이고 쪼고 휘고 가는 과정은 스테인리스 스틸이 주는 차가운 기계적 물성을 넘어선 인간의 느낌을 투영시키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공자는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닌다(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고 하였다. 예란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狩)'의 육예(六藝)를 의미하고, 노닌다는 것도 요즘과 같은 경박한 유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이고 재도론적이어서 불편한 도나 덕이나 인과 달리 보다 쉽게 접하고 마음 편히 다가가야 하는 것이 예 곧 예술이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예의 경지가 그래서 어렵다. 뜻은 높은 곳에 둘 수 있고 행동이야 정의로운 척 할 수 있으나 예술은 진심으로 좋아해야 자신과 동화시키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감성과 희열, 카타르시스의 영역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 전시에서 정학현은 자신을 옥죄던 여러 강박에서 벗어나 '즐김의 경계'에서 작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면의 심사를 힘겹게 풀어내고 조형화하려 했던 과거의 작업이 아니라 스스로 더해지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기분 좋은 우연과도 같은 작품을 보며 "글씨는 그 사람(書如其人)"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글씨뿐이랴, 작품은 언제나 작가의 분신이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실존을 담담히 담아내고 인간을 관조하려는 작가의 진지한 노력의 결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김상엽
Vol.20091104b | 정학현展 / JUNGHAKHYUN / 鄭學玄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