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展 / KIMMINHO / 金慜號 / printing   2009_1027 ▶ 2009_1110

김민호_해미버드나무2_라인에칭_87×60cm_2009

초대일시_2009_1027_화요일_06:00pm

2009 유아트스페이스 젊은 작가 기획공모展

art M 콘서트 『29살 청년의 음악반란』_2009_1029-목요일_08:00pm_카이 Kaii(크로스오버 싱어)

관람시간 / 10:00am~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유아트스페이스_YOO ART SPACE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6번지 Tel. +82.2.544.8585 www.yooartspace.com

미묘한 어긋남으로 비롯된 감성의 나무 ● 판화의 매력은 판이라는 제 삼의 가변적 소재 위에 작가의 주관을 개입시키고 불확정적인 요소들의 변화를 넘어 보다 미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판을 이용해 같지만 다른 복제가 가능해지고, 동일하지만 미묘한 어긋남 속에서의 느껴지는 섬세한 자극을 간과 할 수는 없다. 잉크나 종이에 의한 미묘한 어긋남, 판형의 마모됨에 따른 미세한 변화는 같다고 해도 완전히 일치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회화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재료와 압력의 공정을 거치는 동안 예기치 못했던 요소들이 작용하는 것이 판화의 매력이라 할까? 긁고, 새기면서 만들어지는 에칭의 섬세하고 정교한 선은 부식에 의해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킴에 따라 예상치 못한 미묘함과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에칭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만들어 내는 섬세한 형상의 미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데 김민호의 전통적인 에칭 기법은 정밀한 노동의 과정과 함께 개체와 여백간의 미묘한 어긋남과 간극을 통해 고즈넉한 명상적 느낌의 자연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미학사에서 끊임없이 지속되어온 것 중에 하나는 예술이 자연을 재현한다는 것이며 미적 가치 역시 자연에 따르는 것을 이상으로 보고 있다. 예술이 자연의 재현을 통해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표현해 내고 인간의 삶이 예술과 분리 될 수 없다고 한다면 작품은 작가의 형상을 입고 있는 나의 모습을 대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민호는 이러한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존, 교감, 대립되고 상응하는 존재임을 나무라는 메타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김민호_개심사 느티나무_라인에칭_60×43cm_2009
김민호_해미 버드나무1_라인에칭_72×60cm_2009

김민호에게 있어 나무는 어머니의 품을 대신하는 평온함과 안도감의 상징적 소재이며, 어머니와 같이 항상 곁에 있어서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포괄적 의미를 담은 대상이다. 오랜 시간 무심하게 지나쳐 온 것들 이지만 대상과의 눈길이 조응하는 어느 순간 비로소 소중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동판위에 새겨진 짧은 선들의 반복과 노동의 시간들은 지나온 오랜 시간을 담고 있으며 외로운 풍경속에 관조적 나무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나무라는 하나의 개체는 화면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화면의 중심에는 나무기둥이 중심축을 이루고 앙상한 줄기와 가지들이 화면 가득 뻗어 있다. 일정 하게 반복되는 선의 길이, 두께, 기울기, 겹침 등의 정도에 따라 나무의 기둥과 나뭇가지가 구분되며 화면의 명암 또한 선의밀도와 정교함에 의해 좌우 된다. 선과 여백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선의 밀도와 집적에 따라 굵은 나뭇가지로부터 잔가지로 흐려지며 결국에는 공기로 흡수되어 버린다. 선으로 시작된 개체는 기둥으로부터 벗어날수록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호한 공기의 흐름 속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다. 최근의 작업들에서는 공기 속으로 흐려지는 선들의 느낌들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데 여리지만 강한 버드나무의 생명력은 기존의 빽빽한 구성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묘사를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버드나무가 담고 있는 풍류적 성격과 함께 여백에서 오는 공간의 힘을 더욱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연에서 생성되는 모든 것들은 최소단위의 결합과 변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는데 인간과 자연, 예술의 과정을 일치된 삶으로 보고 나무의 형상을 통해 존재와 소멸이라는 순환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의 재현에서 시작된 김민호의 일련의 작업들은 이제 자연의 사실적 묘사와 더불어 관조적 관점에서 내면의 감성과 인상이 담긴 새로운 시각으로 변화 되고 있다. ● 흑백의 공간속에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의 모습은 화려한 색을 사용하지도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지도 않지만 인간의 감각기관을 자극하고 내면에 숨겨져 있는 지각적 사고와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매번 새로운 표현, 새로운 양식, 새로운 매체에 관심을 갖고 흥미롭고 낯선 것들에 귀 기울인다. 거듭되어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공급해줄 뿐 아니라 자극적인 변화에 따른 새로운 예술형식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하고 있다. 과학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환경의 영향에서 인간을 차단시키고 격리시킴으로써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들로 유혹한다. 그러나 디지털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아날로그의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전통적인 것,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것은 새로운 것이 등장 하더라도 본질과 가치,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 속에 스며들어있는 인간됨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민호의 나무들은 자연을 재현하거나 모방하는 테크닉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을 동등한 시각으로 봄으로써 나무라는 개체를 통해 나를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잠재되어 있는 감성을 잔잔하게 자극한다. ■ 신경아

김민호_버들가지2_라인에칭_27×50cm_2009
김민호_제주퐁나무4_라인에칭_60×180cm_2008

省察之木 ● 어린시절 좋아하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등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인간과 자연은 서로 팽팽한 대치상태에 놓여있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적대 관계에 놓인 인간과 자연의 모습은 자연히 그 둘의 '공존'으로 인한 문제점에 관심이 이어지게 된다.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없는 애니메이션의 결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과제를 얻게 했다. 그 물음에 대한 고민으로 출발해 현재에 이르게 되면서. 나는 인간과 자연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마주치게 된다. 그 물음은 여전히 새로운 시야와 마음으로 자연을 만나게 해준다. ● 바람 많은 제주엔 퐁나무도 많다. 한쪽으로 바람을 맞아서 기형적으로 치우쳐 서 있는 모습은 웅장한 성과 같이 힘 있고 중후한 느낌이고, 마을 어귀에 자리를 잡고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마을을 감싸 안은 수호신과도 같다. 무엇보다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형상은 신비하기까지 하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마을에 이 나무를 일부러 심었는데 귀신이나 악귀로부터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그렇게 멋진 나무가 주변 곳곳에 존재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자연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나 자신의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했고, 그 속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멋진 대상을 발견 하게했다. 가까웠다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비로서야 만난 퐁나무 이기에. 이번 작업에서 나는 특별한 관심과 소중함을 표했다.

김민호_제주퐁나무3_라인에칭_60×90cm_2008

나무의 원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뭇잎이 없는 가지만 그리고 있다. 나뭇잎은 나무의 일부이나 계절마다 새로 나고 지는 것이 마치 옷과 같아서 마치 사람이 옷을 입으면 원래의 몸매가 감춰지듯 가지를 가리고 있다면 나무의 본 모습을 다 나타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품 속 나무는 짧고 가는 선으로 채워져 있다. 동판 라인에칭은 가는 선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심지어 더 가는 선을 긋기 위해 바느질용 바늘을 숫돌에 갈아 더 뾰족한 니들을 직접 만든다. 짧고 가는 선을 나무가 자라는 수평방향으로 일정한 규칙성이 띄게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그어 채워 나간다. 선 하나하나 긋는 행위는 쉽지 않다. 손가락에 긴장을 주고 일정하게 계속 그리고 있으면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제주 퐁나무는 이전작업에서 그리던 나무보다 훨씬 많은 잔가지와 굵은 가지를 가지고 있다. 선을 가늘고 촘촘하게 채우기에 정성을 많이 쏟을 수 있는 좋은 대상이다. 나무 한 그루 가지고 하루 이틀도 아닌 수개월이란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선을 그을 수가 있다. 그러면서 나무와 나는 하나가 된다. 내가 나무의 어머니가 된 느낌이다. 그렇듯 퐁나무의 모습엔 시간의 흔적도 있고, 삶의 모습도 있는 것이다.

김민호_제주퐁나무2_라인에칭_48×90cm_2006

이러한 작업진행과정은 인간, 자연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에 표현된 나무는 단순히 나무 하나의 자연물임을 떠나 인간과 자연을 대변하는 대상이다. 인간 자연은 모두 작은 입자들이 모여서 이루어 진 것이고 이루고 있는 형태에 따라 모습이 다를 뿐임을 의미한다. 또한 그 개체는 각 개체마다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작품 안에서 보면 짧고 가는 선으로 촘촘히 채워나갔지만 결국 가지 끝으로 가면 각각 따로 떨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생긴 선과 선 사이의 공간 때문에 나무라고 부를 수 있는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각각 개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다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전부 같은 존재이므로 그 어떤 것을 대할 때 나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생겨난다. ● 공기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자유롭게 숨을 쉬듯 자연이 주변에 당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았다. 작업을 하면서 피부에 와 닿는 자연의 존재를 다시 보게 되고, 나무와 내가 하나가 되면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당연한' 진리를 깨달았다. 나는 이제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그 '당연한' 이야기들을 정성들여 말하려 한다. ■ 김민호

Vol.20091027e | 김민호展 / KIMMINHO / 金慜號 / pr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