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미소 기획초대_오영숙展

오영숙展 / OHYOUNGSOOK / 吳英淑 /painting   2009_1022 ▶ 2009_1111

오영숙_있음(being)_나무에 혼합재료_152×192cm_2009

초대일시_2009_1022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미소_GALLERY MISO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코액스 인터콘티넨탈호텔 지하2층 C-13 Tel. +82.2.564.2076

Image Calligraphy ● 인간의 역사가 문자와 함께 시작된다면, 이미지의 역사는 찰나적 영감에서 출발한다. 역사. 누적된 시간의 집합체. 당대 문화의 정체성을 극명히 드러내는 대표적인 아이콘은 바로 문자이다. 소리가 형태를 만나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문자는 정보와 상징 속에 내포된 논리와 조형성를 통해 그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면 이 조형적인 규칙이 사라진 문자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스치는 영감 속에 여기에 주목하여 문자가 가지는 새로운 조형미를 독특한 작가적 해석력으로 보여주는 여성 작가가 있다.

오영숙_1=1+1+1+...._나무에 혼합재료_136.5×57cm_2009
오영숙_2=2+2+2+..._나무에 혼합재료_136.5×57cm_2009

작가 오영숙. 'ㄱ', 'ㄴ' 의 자음과 'ㅏ,ㅑ,ㅓ,ㅕ' 의 모음이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가장 진보한 문자체계인 우리 고유의 한글. 그의 유쾌한 상상력은 초등학교 1학년 국어시간에 칠판에 쓰여진 '바둑이와 고양이' 에서 과감히 모음을 빼버린다. 어느새 반가운 바둑이와 귀여운 고양이의 의미는 사라지고, 'ㅂ' 과 'ㄷ' , 'ㄱ', 'o' 등 칸딘스키의 점.선.면을 연상하게 하는 다이나믹한 형태의 자음만이 드로잉처럼 칠판에 남는다.

오영숙_3=3+3+3+..._나무에 혼합재료_136.5×57cm_2009

작가 오영숙은 이렇게 모음이 사라진 한글 자음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서 오래된 토기의 표면과, 화재로 소실된 남대문, 드라마 '바람의 화원'으로 친숙해진 화가 신윤복의 미인도를 표현한다. 토기, 남대문, 미인도로 대변되는 문화의 정체성. 그러나, 그 정체성은 오영숙의 작품 세계에서는 그 경계가 불명확하다. 바래져 버린 시대의 정체성. 텍스트가 가지는 규정적이고, 단정적인 논리성은 오영숙의 작품세계에서는 다만 새로운 재료일 뿐이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으로 작품으로 구현된 문자의 논리성은 새로운 조형미와 함께 새로운 예술로 거듭나게 된다. 문자의 논리가 가진 이성, 문화에 대한 예술적 변조를 통해 작가는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의 가치를 다양한 상징적 조합으로 구성된 문자텍스트의 '美'세계를 보여준다. 퇴근길. 대로변의 다양한 간판을 한번 보라. 뜻을 초월한 문자가 아름다운 것은 이미지가 가지는 다양한 상상력 때문인 것을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오영숙_untitled_나무에 혼합재료_152×136.5cm_2009

문자는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대상을 정의하고 그것의 가치를 결정한다. 흩어져 있던 의미의 파편을 모아 하나의 이미지로 수용자의 뇌리에 자리잡게 한다. 이것의 텍스트의 힘이고 이 힘을 이용해 현대 미술은 이질적인 대상을 차용하고 문맥을 반전시키며 텍스트와 이미지의 연결 고리를 진화 시켜왔다. 다양한 현대미술의 면면은 이 같은 연결고리의 변용이 반영된 결과이다.

오영숙_지금_나무에 혼합재료_20×125cm_2009
오영숙_까치와 호랑이_나무에 혼합재료_95×67.5cm_2009

한글의 자음만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 온 오영숙의 신작 속 텍스트는 구축이 아닌 해체를 선택한다. 이전 작업이 자음을 모아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갔다면 조선시대 명화를 주제로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신작은 원작의 아우라를 해체하는 역발상을 제시한다. 부분에서 전체가 아닌 전체에서 부분으로, 일상으로부터의 예술이 아닌 예술로부터의 일상으로, 관객에서 창작자가 아닌 창작자에서 관객으로 힘의 균형이 역전되었다. 의미의 해체가 시작된 것이다. 감히 손 될 수 없는 신윤복의 미인도, 불타버린 국보 1호 숭례문 등 역사 속 원작의 오리지널리티가 쓰고 있던 아우라 역시 일종의 환영이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신기루처럼 다가서면 사라져 버리는 원작의 규정된 의미는 결코 소통될 수 없는 이상향이다. 자아가 아닌 타자의 편의에 의해 의미 규정되어 버린 박제화된 동물의 표본과 다를 바 없다. 오영숙은 전통, 선입관, 역사, 원작의 아우라에 갇혀 소통되지 못하는 이미지의 빗장을 풀어 버린다. 해체하고 공격한다. 새로운 가치는 소통이 필요하다. 오영숙의 해체작업이 만들어낸 변용이 새로운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이다. ■ 이대형

Vol.20091025i | 오영숙展 / OHYOUNGSOOK / 吳英淑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