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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태展 / KIMINTAE / 金仁太 / sculpture   2009_1021 ▶ 2009_1027

김인태_제한된 이미지_혼합재료_30×15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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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02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B1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시지각적 실상과 허상에 놓인 물질과 공간_작가 김인태 근작에 대한 소론 ● 1. 작가 김인태의 작업은 가시적으로 확연한 매질(媒質)로 재현된 조형적 단면과 우리가 직접 체감하는 지각 단면 간 괴리를 확대하거나 혼재시킴으로써 인식적 실재와 개념적 실재가 어떤 방식으로 상충, 공존하는지에 대해 묻고, 이를 다시 제3의 시각으로 창출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일정한 공간 속에서 인위적인 연출을 거쳐 발현되는 그의 작업들은 눈으로 읽어 받아들여 고착되곤 하는 충실한 관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며 인지의 결과에 의해 다양하게 변모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와 같은 특질들은 시각과 매스(mass)의 상호작용, 보는 대상과 인지 대상 간에 존재하는 보편적 관념을 배경으로 한다. 수천 개의 유리 파편으로 오밀조밀 구성해, 보는 것에 관한 단일성과 일반적 정의를 이탈하거나, 픽셀처럼 작은 문자를 기호로 치환 반복하여 대상의 본질을 투영하는 것, 또한 다각적 영상으로 작가와 관객 모두 다르게 보고 낯설게 보기를 통해 생기는 원래의 것과 경계를 넘나들기를 시도하는 것 등이 김인태 작업의 뿌리이다. 이를 보다 포괄적 개념에서 보면 가시적 상징 이면에 깃들어 있는 본질의 허구에 대해 지적하는 과정의 일환이랄 수 있으며, 집단화 되고 편자 되면서 '알고 있는'시각에 규정된 일반론적 이해를 넘어 그것에 이의가 없던 고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인태_오바마, 본존불_스테인레스 스틸_210×107cm_2009
김인태_슈퍼맨_스테인레스 스틸_90×112cm_2009
김인태_Compound Eye_거울, 스틸_190×180×40cm_2009

2. 작가의 조형언어들은 환형(環形)은 물론이고 회화적 성질과 동등한 범주에서 펼쳐 놓을 수 있는 사진(다분히 대중적인 아이콘이 음각된)이나 영상, 문자와 꽃 등을 이용한 작가의 여러 평면 작업들, 그리고 기타 오브제들을 통해 전개된다. 일예로 그의 근작인 조각 「Compound eye」의 경우 조각을 조각으로 만드는 요소인 공간의 깊이와 형태에 의해 조화로워야할 이미지들이 오히려 공간을 해체함으로써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에 대해 의구심을 갖도록 한다. 우선 커다란 원형은 직시적 틀이다. 즉 감각화되어 흡수된 인간 지각(우선적으론 작가 자신)의 일차적 거름망인 화자의 눈(eye)이며 동시에 '보임'을 단정하는 거푸집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성격을 강조하게 하는 것은 바로 파편처럼 엉겨 붙은 유리조각들('초자, 硝子')이다. 이것은 하나의 덩어리(lump)에 그리드(grid)처럼 디테일하게 이입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럼프인 구형체와 그 덩어리를 묶는 얼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초자는 상(像)이 지닌 리얼리티를 개체화 하면서 단층적 시각을 전복시키고, 나아가 보이나 보이지 않는 것, 또는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것이 반드시 실체는 아니며 되레 이율배반과 아이러니를 수반할 수 있음을 부각시키는 요소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초자 피스(piece)는 단순한 투영의 소재, 혹은 상을 재현하는 도구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작품자체는 하나의 (눈으로 읽어 받아들인)실존체이며 일종의 시각성을 확립시키는 루시다(lucida)이지만 반사된 채 드러나는 모든 형상들은 홀연한 허구이며 드러나지 않던 옵스큐라(obscura)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의중에 의해 현실(실제)이면서 환영이고 동시에 실상이면서 허상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게이트로써 작동한다는 게 옳다. 김인태 작품은 핵심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시각의 다변적 측면의 고찰, 연속과 불연속성에 대한 관조적 이해, 획일성과 다양성, 보임과 숨겨짐과 같은 자기 분석적인 태도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인태_Compound Eye_거울_60×90×15cm_2009

3. 표현 재료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버락 오바마'나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과 같은 대중스타들이 등장하는 사진 작업(정확히 말해 판화 방식의 에칭 작업)과 영상작업 또한 형식적인 측면에서 동일한 궤를 그린다. 그러나 사진 복제 작업을 통해 그는 특정한 대상에 침투되어 있는 '명확히 인식되고 인정되는 것'들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논리적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는 차이는 존재한다. 평범한 관점에서 그것은 유명한 스타들을 단순히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 최근 유행하는 팝아트 성향의 그림들에서 흔하디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이들을 그린 것일 따름이다. 허나 가까이 들여다볼 경우 수없이 많은 단어들이 기호처럼 부유함을 목도할 수 있다. 이 단어들은 이미지에 함몰된 통념을 뒤집는 기폭제이다. 타자 스스로 규정한 시각적 정의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는 실질 단초이다. 이를 조금 더 설명하자면, 여기서 스타들의 초상은 일종의 기표(記表)일 뿐이다. 가까이에서야 분별할 수 있는 단어들(환형 조각에서 유리조각과 같은 특질을 내포한)은 자족하지 못하는 기의(記意)이다. 그렇지만 핵심은 기표가 아닌 기의에 있고, 기의는 스스로 정립될 수 없기에 기표에 의존한다. 물론 여기서 기의의 속성은 작가의 내면이며, 어느 경우엔 기억이나 과거의 단상(참고로 작가는 약시이다. 이에 그는 남과 다르다는 정체성의 혼란, 타인과 자신 사이에 놓인 시각적 기능의 차이에 대해 좌절과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오늘날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서술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경험과 기억에서부터 구축된다 해도 그르지 않다.)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에겐 그저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작가는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이입해 놓고 있어 이 작품들은 '보기'와는 달리 꽤나 서술적임을 알 수 있다. 그 외, 이 작품들은 어떤 지시대상(referent)과의 관계를 부정하는데 있어 잘 알려진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되 그것을 기표와 기의로 결합시켜 자신 만의 언어를 만들고, 작품 속 체계 안에서 구조화된 기호로 정리하고 있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피와는 구분되는 밀도 있는 작업인 셈이다. 여러 개의 모니터와 카메라가 부착된 「Self Viewer」와 같은 영상 작업은 김인태 작업의 확장 가능성을 증좌하는 것들이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스스로에게 이미 안착되어 있던 친숙한 무반성적이었던 대상이 자아로부터 독립해 재차 화자와 직면하도록 하는 작품이랄 수 있다. 그 대면의 과정을 보면, 일단 작가는 피사체를 전후해 설치한 카메라를 이용, 인물의 정면과 측면, 그리고 후면까지 비추도록 한다. 그리곤 이를 여러 대의 모니터에 송출한다. 이때 모니터에 반응하는 대상은 시공을 넘어 순간적인 것에서 영속성을 지닌 것으로 변환되며, 단편에 불과한 시각적 잔상은 관조적 자세로 입장변화를 얻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인간 본질(Wesen), 정확히는 시각 본질에 대한 탐구이다. 본질의 주체는 영상의 주인공, 즉 피사체(조명된 대상)이면서도 의도된 타자이다. 대상의 리얼리티, 그 자체의 불변적 기능에서 탈피해 다시각적 형상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주체도 본인이자 타자이다. 허나 필자의 견해론 기울기는 타자(관조적 대상)에 좀 더 가깝다. 본질을 추구하는 주체가 복제의 기술을 타고 개념으로 치환되고 있는 점을 눈치 채는 것도 결국은 관자(타자)로 판단된다. 다만 김인태는 이 시점에서 작품을 자신과의 교류로 연장하고 나아가 작업의 근간으로 삼는다. 예술의 가치와 미적 언어들을 활성화 하는 주요 무대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인태_Self Viewer_가변크기_혼합재료_2009

4. 그의 주요 표현매제인 사진과 유리 등의 반사체, 고정된 피사체를 둘러싸고 있는 영상 등은 매체로써의 용도라기보다 원본의 의미를 무력화하는 새롭게 생성된 허구이며 그의 작품을 접하는 이들 또한 하나의 특별한 허구적 존재로 이해될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선 그의 작품들은 시각의 다른 문을 열어주었던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큐비즘이 드러낸 통일된 공간의 외면, 다면적 시선의 물질화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3차원 대상을 해체시켜 평면에 드러낸 부조 작품들, 시각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영상작업들이 그러했고 평면 회화를 통해 인물을 희화화 한 작품들도 그 범주에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김인태는 그러한 원리에 다분히 종속적이었다고 여겨진다.(2007년 개인전 당시 선보였던 파노라마(Panorama) 연작들이 그렇다.) 하지만 오늘날의 작품은 보다 진일보해, 상호성을 띤 양자적 공간, 층을 달리하는 시지각과 물질로써 빚어진 생산물을 언급한다. 의미 있는 것은 이전의 즉시적 방식이 완연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기법상 세련된 우아함을 발견할 순 없지만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사물의 측면, 사고의 지층이 파각 되고 감각의 전환이 순환으로 이어지는 긍정적 방향에서 나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는 점이다. ■ 홍경한

Vol.20091024h | 김인태展 / KIMINTAE / 金仁太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