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飛.행行

실경속을 거닐다 ● 박능생의 초기 작업은 인간의 생활사와 밀접해 있는 재개발 지역의 주택과 시장풍경 그리고 현대화된 도시를 상징하는 빌딩 숲과 자동차들의 행렬 등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모티프들이 근간을 이루며 오랜 기간 꾸준히 수묵 작업을 해왔다. 또한 박능생은 도시를 둘러싼 자연의 풍경을 회화의 조형요소로 재구성하고 수묵화의 전통기법과 현대적 표현방법을 혼용하며 자신의 예술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작가이다. 최근 박능생의 작업에서 크게 두 가지 양상을 엿볼 수 있다. 하나는 서울의 풍경을 한 화폭에 모두 담아내려는 거대 프로젝트형 작업이 그것이고, 또 하나는 지역의 역사적 의미와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재해석하여 회화의 재현적 의미와 동시대성을 부여하려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박능생의 대표수작 「서울풍경도Ⅴ」와 「난지도(蘭芝島)」 작품은 그가 현대화된 도시와 자연의 풍경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박능생_서울풍경도Ⅴ_화선지에 수묵_214×149cm×4_2008~9

먼저 서울풍경도는 과거에도 몇 차례 연작의 개념으로 작업해온 바 있고 송파, 관악산, 남산 등에서 바라본 서울의 다양한 풍경을 대형 화폭에 옮긴 시리즈 작품이다. 평균 7미터에서 10미터가 넘는 대작들로 서울의 곳곳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서울풍경도Ⅴ」 는 그동안 보여 왔던 서울풍경 작품들 중 단연 눈에 띄는 대표작이다. 서울의 360도 풍경을 장대한 파노라마로 펼쳐 보이고 있는 이 작품은 박능생이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작업해온 야심작이다. 총 길이가 23미터나 되는 이작품은 북한산에서 서울의 전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주요 봉우리(비봉, 향로봉, 승가봉,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보현봉, 용암봉, 노적봉 등)를 30여 차례 이상 수 없이 오르내리며 틈틈이 화첩에 스케치를 하고 이를 토대로 재구성하여 화폭에 재현한 초대형 작품이다.

박능생_점프 화선지에 수묵, 오일스틱, 아크릴채색_214×149cm_2009

박능생_난지도(蘭芝島)_화선지에 수묵, 오일스틱_149×214cm_2009

「서울풍경도Ⅴ」는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사진을 참고하기도 하지만 현장감을 중요시 여기는 박능생은 산을 오를 때 마다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스케치한 화첩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북한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풍경은 그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각 봉우리의 지점에서 보여주는 서울의 부분 풍경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이어붙이는 재배치 작업을 통해 작가는 서울풍경의 전체를 조망한다. 각 봉우리의 위치와 고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시점이 발생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작가는 수묵화의 전통기법을 따르고 있기는 하나 다소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에는 다점투시법이 적용되어 있다. 이 기법은 중국 북송의 곽희가 지은「임천고치」에서 시점의 위치에 따른 구도 포착법이다. 7∼8세기 무렵에 삼원의 형식이 출현하기 시작하였으나, 이론은 북송(北宋)의 곽희(郭熙)에 의해 정립, 완성되었다. 삼원법을 병용한 대표적 예로 곽희의「조춘도(早春圖)」와 안견의「몽유도원도」 등이 있다. 박능생의 서울풍경도 작품에도 전통적 실경산수의 형식적인 기법과 정신적 개념이 유사하게 적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동시대 풍경을 기록하는 박능생의 이 작품은 한 시대를 대변하는 기념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박능생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서울풍경도는 다소 이질감이 감지되며 사진의 영역에서는 표현될 수 없는 서울의 색다른 이면과 독특한 구도의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다. ● 박능생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형식적인 특징은 산수화나 풍경화를 그릴 때 주로 사용하는 명암의 대비와 채도의 감소효과로 원경과 근경을 구분 짓는 회화적 원근법에서의 탈피이다. 다만 먹의 양과 형체(덩어리)의 크기에 의해 근거리와 중거리 원거리가 나뉠 뿐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작가는 회화의 평면성을 의도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감지되는 또 다른 매력은 전통적 수묵화에 사용되는 모필의 사용보다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그 거친 단면을 이용하여 화면 전체를 정교하게 그려나가는데 있다. 화가는 그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표현에 있어 재료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전통적 모필의 한계를 극복하고 생생한 서울풍경의 현장성을 극대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뭇가지를 선택한 것이다. 또한 「서울풍경도Ⅴ」는 좌측과 우측이 연결되는 360도 서울풍경으로 시작과 끝이 없다. 어디서부터 관람하여도 무방하다.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동시대 서울의 풍경 그 자체를 기록한 작품이다. 그리고 고정된 시선이 아닌 시선의 이동이 매우 자유로운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를 애써 찾자면 화면의 하단, 그러니깐 감상자와 가까운 근경의 몇몇 봉우리(박능생이 실재로 스케치한 지점)를 찾아 작품을 감상한다면 작가적 시점과 이동경로에 따라 서울풍경을 전체적으로 조망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능생_비행시리즈_캔버스에 수묵, 아크릴채색_90×72cm_2009

박능생_비행시리즈_캔버스에 수묵, 아크릴채색_90×72cm_2009

박능생의 또 다른 작품 「난지도(蘭芝島)」는 과거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였던 장소로서 지금은 그 모습을 완전 탈바꿈하여 자연생태환경을 조성하고 시민들에게 문화체험과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곳의 중심에 위치한 난지창작스튜디오에 거주하면서 평상시 주변풍경을 주의 깊게 관찰해왔으며 봄부터 가을까지의 계절 풍경을 이미지화하여 한 화폭에 복합적으로 담아냄으로써 매우 이색적인 풍경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의 내면에는 인간의 욕심이 거대한 쓰레기 동산을 만들어 무방비 상태의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다시 파괴된 자연이 인간을 위협함으로써 또다시 인위적으로 파괴된 자연을 녹지공간으로 재조성하는 서클구조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상생관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현대화된 도시의 모습과도 맥을 같이하며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생산의 반복된 사회구조의 일면을 보여주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있다. 이 작품에도 작가는 다점투시법을 적용한다. 전체적인 화면은 한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난지공원의 평원시점을 갖고 있으나 세부 풍경의 이미지는 하늘에서 새들이나 볼 수 있는 시점인 부감법을 차용하고 있다. 이 같은 이미지의 표상은 작가가 사전 인지하고 있거나 부분 사생을 통해 이미 스케치한 것을 전체 이미지 속에 복합적으로 적용시키고 각각의 풍경을 재해석하여 화면 곳곳에 재배치 시켰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실재와는 다르게 화면 내에서의 이동시점이 매우 자유롭다. 다소 상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는 작가가 지역과 장소적 특성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인상적인 작품이다. ● 박능생의 풍경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실경산수의 정신과 관념산수의 형식을 접목시킨 회화라 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동시대를 표현한 지극히 현대적인 회화이다. 박능생이 일관하고 있는 동시대의 현대화된 도시와 자연풍경의 작업은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눈과 손과 발이 허락하는 한 그가 속해있는 더 넓은 세계를 화폭에 담으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번 전시의 제목『비(飛)ㆍ행(行)』은 그러한 미래지향적 의지를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또한 작가는 현대적 회화의 재현에 있어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장단점을 누구보다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앞으로의 그의 작업행보가 기대된다. ■ 최관호

박능생_점프_화선지에 수묵, 오일스틱, 아크릴채색_214×149cm_2009

Strolling through the actual scene ● Neung Saeng Park's works in his earlier days were primarily based on motifs that were closely related to our daily lives. They were houses under reconstruction, market sites, skyscrapers representing modernity or long procession of cars, all of which he persistently continued producing his India ink paintings. Furthermore, he reorganized the landscapes of the environment around the city as components of his paintings, and used both traditional methods of India ink paintings and modern expressing techniques through which he extended his presence in the field of arts. There are two large specifics in his recent works. First is that he has been trying to picture the whole city of Seoul in one large painting, and second is that he has been trying to understand the region's historical meanings and features. The underlying intent was to reinterpret them in his works so as to show the meanings of revival in the paintings and give them a sense of contemporaneousness. The 「Landscapes of Seoul Ⅴ」 and 「Nanjido」 are two main paintings of this exhibition that would deliver his point of view about the modernized city and the nature surrounding it. They would also help us understand the ways the artist tried reinterpreting them. ● First and foremost, the 「landscape of Seoul」 is a piece that Park had already been working on as a series. It is a gigantic piece in which he tried to gather various landscapes of Seoul that he viewed from the tops of Songpa, Kwanak mountain, and Namsan. The lengths of the pieces vary from 7~10m on average, and one can see many places of Seoul at a glimpse. The fifth piece 「landscape of Seoul Ⅴ」 is indeed an outstanding masterpiece among all his prior works. The artist had planned and worked on it since long ago in order to display the full 360° view of Seoul in a grand panorama. Its total length is 21m on which the artist reproduced the view by reorganizing the sketches he had made while climbing up the main tops of mountains starting from Bukhan Mountain, where he could see the whole of Seoul, for more than 30 times. ● While working on 「Landscape of Seoul Ⅴ」, the artist partly referred on photos for details, however because Park stresses the importance of the sense of realism, he relied mainly on the live sketches he had made on which he had recorded his feelings while climbing up. The landscape he viewed from on top of Bukhan mountain provided him with a new perspective. In addition, through reorganizing the partial views of Seoul from each mountain top, he was able to get a grip of the overall landscape of Seoul. A variety of viewpoints were produced because of the differences like the elevation and positions of each peak, and although the artist had followed the traditional methods of India ink painting, there are more or less certain differences. In other words, multi-perspectives were used in his work. Such method is a way to catch different structures and was used by Kwakhee of North Song China in his piece 「Im cheon go chi」. The method of using three circles had already appeared in 7~8th century, however the theory was established and completed by Kwakhee of North Song China. The major example that shows a combined use of the three circles are Kwakhee's 「Jo choon do」 and Ankyun's 「Mong yu do won do」. Park's works about Seoul also follow the traditional forms and the spiritual concepts of drawing a real scene. Furthermore, the fact that it is a record of the same age endows on it a monumental characteristic. There are slight differences that can be detected throughout the piece, and the different sides of Seoul that were impossible to be seen on photos, along with its unique structural expressions are impressive. Another common feature in Park's pieces is his escape from perspective drawing, a method normally used when drawing landscapes by giving a contrast in light and shade or the reducing of saturation so that there may be a separation in the foreground and the background. Here, it is only by the amount of ink and the magnitude of the shapes that the fore, the middle and the background are separated. It is through such method that the painter intentionally maintains the flatness of the piece. Another fascinating point about this piece is that rather than using the traditional hair-pencil (brush), the painter broke sticks to make use of its rough edges to draw the whole scene elaborately. By choosing his tools for expression in a liberal manner, he overcame the limits of traditional hair-pencils (brush) and was able to maximize the realness of the scenery of Seoul. In addition, the 「landscape of Seoul Ⅴ」 has no beginning nor and end since its left and right ends are connected. No differences are made wherever one chooses to stop and appreciate the art piece since there is no story but a mere record of the city itself. Also, there is not a fixed viewpoint but one that can be freely moved around. However, if one desires to search for a specific viewpoint, it would be located at the lower part of the scene: the few mountain tops nearest to the viewers (the actual point at which Park drew his sketches). From there, one would be able to follow the artist's perspectives and view the landscape of Seoul in line with his path. ● Another piece of Park, 「Nanjido」, is produced based on Noeul park and Haneul park, places that had been transformed from trash dumps in the past to ecological spaces that provides people with cultural experiences and relaxation. The artist resided at the Nanji creative studio located at the center of the park, and closely observed the sceneries that were produced everyday. He gathered images starting from spring to fall and reproduced them in one single piece creating a novel experience. The material he chose for his work displays how human desires brought destruction to the defenseless nature which in turn became a threat to the humans themselves, which they inevitably had to rebuild it artificially. In other words, he claims for the coexistence and the circular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nature. This also is in line with the image of modernized cities and shows a significant facet of the society where creation, extinction and reproduction repeatedly happen. ● The artist also uses a multi-perspective in this piece. The overall scene was viewed from across the Han River and has a plain perspective, while the details were drawn in an overlooking perspective, something that can only be possessed by birds within the sky. Such images were possible since the author had either perceived of it prior to starting his work, or because he had applied his partial sketches in the image and reinterpreted and rearranged them at different places. Furthermore, the viewpoints within the piece are freely moving, different from reality. There are more or less certain imaginary features added to the piece, however, as an overall, it is an impressive work that reinterpreted the peculiarities of the region. ● Park's sceneries are paintings that bring in the spirits of the actual landscapes to the methods of drawing conceptual landscapes. It accepts the traditional ways in its formalities, however its contents are reinterpretations of the contemporary society. As a consequence, the piece can be described as a modern painting with contemporaneousness in a broad sense. ● The consistent work of Park which draws the modernized city and the natural landscapes surrounding it are monumental. He shows a determination to draw a larger world as far as his feet and his hands would allow. The title of this exhibition 『Strolling through the actual scene』, also has a connotation of his future-oriented determination. Furthermore, since the artist is fully aware of his strengths and limits in reproducing modern sceneries, one should be safe to hold positive expectations about his pieces yet to come. ■ Kwan Ho Choi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2009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장 임대료, 인쇄료, 홍보료, 작품재료비 및 전시장 구성비, 전시컨설팅 및 도록 서문, 외부평론가 초청 워크샵 개최 등 신진작가의 전시전반을 지원하는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Vol.20091024d | 박능생展 / PARKNUNGSAENG / 朴能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