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구역

김미정展 / KIMMIJUNG / 金美廷 / painting   2009_1021 ▶ 2009_1027

김미정_제목미정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60.6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미정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10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김진혜 갤러리_Kim.jinhye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Tel. +82.2.725.6751 www.kimjinhyegallery.com

보호구역 - 1.'이름짓기'라는 말놀이 ● 자기정체성을 문제삼는 일군의 작가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자기자신에의 배려를 궁리하는 젊은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전시제명으로 삼거나 작품제목으로 삼는 김미정은 자기이름을 걸고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대신, 자기이름을 놓고 유희하는 게임을 선택한다. ● 발터 벤야민은 언어를 모든 정신적 존재의 층위에 따라 네 단계, 즉 사물을 직접 창조하고 이름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말로서의 창조적 언어, 이름을 부여하면서 순수 인식에 도달하는 아담의 언어, 현재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사물들의 말없는 언어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평소 관찰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는 결점을 가지면서 근본적으로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으로 그것은 의미 전달을 하는 기호적 언어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표현될 수 없는 정신적 존재의 표현이라는 측면을 지닌다. 인간의 언어는 사물의 언어를 말로 번역하면서 말하는 사람의 정신적 본질도 함께 표현한다. 벤야민은 인간의 언어가 더 높은 단계의 언어로 초월하게 되는 경계 지점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경계 지점은 이름에서 나타나는데 현재의 언어가 언어의 집약적 총체성을 지닌 아담의 언어와 만나게 되는 곳은 바로 이름에서이다. ● 작가 김미정은 자기 이름 美廷을 未定과 치환하여 '제목미정'이라는 제목짓기와 자기제시라는 이중의 효과를 겨냥하는 트릭으로 말놀이를 즐긴다. 제목짓기 혹은 이름짓기 놀이를 시각적인 트릭으로 점프시키는 작가의 버릇은 이전 작업부터 보인다. 이미지와 제목을 거꾸로 뒤집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수다와 소문의 속성을 말풍선으로 비꼰 「침묵이 금이다」(2007), 「다이금 이묵침」(2007)는 사람들 사이의 가면쓰기와 가면뒤집기를 희화화한다. 비슷한 캐릭터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병치한 「말괄량이」(2008), 「개구쟁이」(2008)는 제목의 성차적 어감과 시각적 착란으로 애니메이션 입체영화같은 효과를 끌어낸다. 그런가하면, 「시끄러운 묘지」(2007)에서는 작가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반딧불의 묘지』에 등장하는 사탕캔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비슷한 일본제 사탕캔을 구입해서 사탕을 먹은 다음, 사탕대신 말풍선을 그려넣고 시끄럽다(ヤカマシイ)라는 일본어와 묘지(ボチ)라는 단어를 합성하여'시끄러운 묘지(ヤカマシイ ボチ)'라는 말풍선 캔상자로 둔갑시킨다. 얼핏 재치있는 장난처럼 보이는 귀여운 발상에는 말과 사탕의 달콤한 촉각성과'묘지'라는 단어의 무거운 질감을 교묘하게 연결하는 기민한 언어적 유희가 돋보이는데, 시끄러운 수다 끝에 누군가 죽어나가는 상황을 연상하고 나면, 발랄한 재치가 예사롭지 않다.

김미정_제목미정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94cm_2009
김미정_제목미정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09

2. 자기배려의 기술 ● 작가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 장난감 모으기에 흥미를 느끼다가, 장난감 모형을 캐릭터화하는 작업을 캔버스 안으로 끌여들였고, 차츰 목마 같은 장난감 만들기에 경도되었다고 한다. 작가 자신이 직접 구매해서 모은 장난감들을 하나 혹은 여럿으로 캐릭터화한 다음, 사각의 유리상자로 보호막을 덧씌워서 화면 중앙에 배치한 「제목미정」 연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는 장난감 모형 캐릭터, 사각의 유리상자, 사방으로 퍼지는 광선 무늬이다. 「제목미정1」,「제목미정2」,「제목미정3」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고립되어 있는 듯한 불안감과 타인들과의 관계망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안전지대에서 자유롭고 싶은 소망을 사각의 유리상자라는 마법의 보호망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바탕에 깔려 있는 사방으로 퍼지는 광선 무늬는 현실세계에서 환상세계로 넘어가는 착란적 상태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계(異界)와 접속하는 마법적 장치로 호환되고 있다. 「제목미정4」, 「제목미정5」에서는 마치 만화 속의 마법사처럼 현실이탈을 꿈꾸는 작가의 심리가 사각의 유리상자 안에 안전하게 보호받는 은둔자로서 묘사되기도 하지만, 「제목미정0」에서는 현실로부터 이탈하여 제대로 된 자기자신을 찾고 마음껏 날아다니는 활달한 우주여행자로서 보여지기도 한다. ● "수집가의 행복은, 사물들과 단둘이 얘기하기 위한 고독한 자의 행복"이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작가는 직접 수집한 장난감을 재구성한 캔버스 안에서 수집가로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사물들과 가장 친밀했던 순간을 마법걸기 놀이로서 반복적으로 증식하여 동화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수집은 한 사람의 발견의 응집이며 사물을 배치하는 기술이며 기억을 재구성하는 만화경이다. 취향을 드러내려는 자기과시형 수집가들도 있지만 자기 보호구역을 찾는 자기만족형 수집가들도 있다. 자기에의 배려에 대한 사려깊은 고찰을 시도한 미셀 푸코에 의하면, 자기의 테크놀로지 즉'자기배려'는 자기자신이 즐기는 쾌락을 미학적으로 조각하는 것이다. 김미정에게'자기배려'는 자신이 애호하는 장난감을 수집하거나 공작하여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요술환등)적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발현된다.

김미정_제목미정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09

3. 판타스마고리아적 공작소 ● '제목미정'의 세계를 통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던 김미정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결합하는 자신만의 공작소를 직접 꾸리는 데 몰두하며 점차 환상적 세계로 빠져든다. 작가가'반복'의 쾌감과'놀이'의 충동을 발견한'회전목마'라는 이미지는 평면적인 세계 「A Merry go round」(2007)에서 회화와 입체가 결합된 「A Merry go round」(2009)로 발전하면서 판타스마고리아적 공작소로 변형된다. 흥미에 이끌린 놀이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을 피하고 사물의 세계와 상호적이고 비위계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유토피아적인 충동을 포함한다. 놀이는 도구적 노동에 내재한 지루함과 달리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놀이는 강압에서 해방된 자유의 영역이다. 자연히 놀이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반복의 규칙에 매료된 자들은 반복에서 오는 쾌감에 사로잡혀 환상적 공간 즉 판타스마고리아적 세계와 접속되기 마련이다. ●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적 세계는 원래 요술환등기로 펼쳐지는 꿈의 세계를 의미하였지만, 광학적인 효과나 환상적인 세계에서 경험하는 총체적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전유되기도 한다. 꿈 의식이나 소망을 반영하는 유토피아적 세계, 즉'꿈의 집'을 동경하는 어린아이같은 몽상가들에게서 판타스마고리아적 세계가 곧잘 재현되는데, 김미정은'목마'라는 오브제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놀이동산을 직접 꾸며내는 방식으로 마술적 공간을 발명한다. 회전하는 목마의 반복하는 이미지를 회화평면으로 묘사하던 작가는 목마를 직접 만들어서 색칠을 한 다음, 종이로 만든 놀이동산에 실재하는 말처럼 설치하고 자신이 원하는 회화적 풍경과 결합한 사진작업으로 어디에도 없는 환상적 공간을 창조한다. 가상공간 속에서 완전한 자유를 꿈꾸는'제목미정'의 세계는 결국 장난감으로 이루어진 판타스마고리아적 세계, 꿈의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김미정_N∩JWIG_혼합재료_2009
김미정_A merry go round_혼합재료_2009

4. 보호구역이라는 마법의 유리상자 ● 다매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한 개인은 가상세계와 매개된 현실을 살아가는 불안감, 고립감, 분열감을 수시로 경험하며 안전해지고 싶은 욕구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충족한다. 김미정의 작업에서 특기할 만한 요소는 안전해지고 싶다는 소망을 놀이충동으로 해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만의 공작소를 직접 발명해가는 자발적이고 생산적인 유희충동이다. 어디에도 안전한 보호구역은 없다는 것을 작가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제목미정'의 세계를 자기만의 공작소로 꾸릴 줄 아는 자발적인 충동이 사그라들지 않고 현실 속에서 자기 식의 활동구역을 마련하는 능동적인 에너지로 잘 쓰이려면, 무수한 자기갱신 혹은 자기변신 과정을 잘 견뎌내야 할 것이다. 이제, 세상에 본 게임을 시작하는 지금, 작가자신이'제목미정'의 보호구역이라는 마법의 유리상자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 지켜볼 일만 남았다. ■ 김정복

Vol.20091021i | 김미정展 / KIMMIJUNG / 金美廷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