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l's Other Name

원론(原論)으로부터의 가제   2009_1014 ▶ 2009_1111

초대일시_2009_1014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_박미선_신선주_이수영_최수환

관람시간 / 10:00am~06:00pm

연희동 프로젝트 YEONHUI-DONG PROJECTS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28-6번지 Tel. +82.2.324.1286 www.yhdprojects.com

현대미술의 담론이 쏟아지기 전만해도 미술의 역사는 거칠게 말해 회화의 역사이자 유화의 역사로 서술되어 왔다. 기독교 이데올로기로 인해 이미지 재현(representation)이 제한되어 온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날 무렵, 때마침 발견된 유화는 무엇보다 대상의 사실적인 표현을 가속화하였다. 색조나 농담이 쉽게 얻어지고 다채로운 재질감을 표현할 수 있었던 유화는 다양한 회화양식과 효과의 실험을 확장케 하였고, 세부 표현과 이미지의 중첩이 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매체보다도 내러티브의 전달과 각 시대의 시각문화 및 이데올로기의 반영에도 뛰어났다. '세상을 보는 창문'과도 같았던 그림은 20세기 초 추상회화의 등장으로 대상의 재현에서 자유로워지며 개인의 감정과 정신, 무의식을 표현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사진의 발명과 개념미술의 도입, 미디어와 설치 등으로 현대미술의 매체와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전통 회화에 대한 향수가 강해지고 있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 일까? 대중들은 여전히 과거의 명화 속 환상을 붙잡으려 하고 작가들 또한 미술의 뿌리인 그리기/회화의 끈을 붙잡고 여러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연희동 프로젝트의 이번 전시는 다른 매체와 기법을 도입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그리기' 의 언어를 보여주는 네 명의 작가, 박미선, 신선주, 최수환, 이수영의 최근작을 소개한다.

박미선_나무_캔버스에 유채_162×114cm_2008
박미선_2007년 가을, 봉천동 길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유채_ 93×131cm_2008

자연이 손짓하는 블랙홀 풍경 ● 캔버스의 흰 여백과 현기증을 일으키는 눈부신 햇살이 깃든 박미선의 풍경화는 마치 이 세상 너머의 몽롱함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서울의 여느 길에서나 마주치는 거리나 나무 등과 같은 흔한 풍경속에서의 경험에서 시작된 것이다. 젊은 시절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길을 찾아 헤매며 방황하고 있을 때, 작가는 "늘 지나치던 거리의 가로수와 회색의 아스팔트길, 그리고 그 위에 부서지는 햇빛 속에서 마치 우주, 존재계, 자연이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존재의 일면을 마주한 듯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연과의 신비로운 교감속에서 황홀한 기운을 느끼며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할 여행으로 기억하고 있다. ● 박미선 작가에게 도심에서 체험한 뜻밖의 사건은 인생의 위로내지는 그가 찾아 헤매던 질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이 되었고, 이는 그가 명명한 '구도풍경(求道風景) '으로 캔버스에 자리잡는다. 순간의 경험을 포착하기 위해 작가는 그때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이를 참고하여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캔버스에 옮긴다. 다시 말해 사진을 보고 유화로 풍경을 그리거나, 사진을 캔버스에 출력하고 그 위에 붓질을 더해가며 그 심상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이미지는 작가가 언제 어디선가 자연과 마주한 생생한 체험의 풍경이자 망각이 내포되어 있는 기억의 풍경이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눈과 마음』(1964)에서 "눈을 통해 응시하는 우리 앞에 우주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화가와 그의 그림"이라고 말했듯이, 박미선의 풍경화는 이를 마주하는 관객에게도 블랙홀과 같은 흡인력으로 자연과 합일하는 순간의 경험을 선사한다.

신선주_북경대학교 고가_오일 파스텔, 코닥 캔버스에 잉크젯 프린트_100×100cm_2009
신선주_UCCA_파스텔, 코닥 캔버스에 잉크젯 프린트_100×100cm_2009

손으로 빚어낸 흑백의 색면 풍경 ● 클래식한 흑백 풍경 사진처럼 보이는 신선주의 최근작은 작가의 회화적, 조각적 터치로 완성된 모노크롬 풍경화이다. '사진적 리얼리티의 흑백 회화'로 요약되는 이 작업은 작가가 거주했던 여러 지역에서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하는데, 여기에는 기하학적 형태로 축약되는 건축물과 원근법적 풍경에 대한 그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작가가 카메라로 포착한 건축물은 각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드러내는 복고적인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 작가가 사진에서 회화로 변형(transformation)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검은색오일파스텔은 유조선에서 솟구쳐 오르는 오일과 유사하다. 흑백 사진같은 신선주의 작품과 원초적인 색과 반질반질한 질감의 포토 리얼리즘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부드럽고 끈적끈적한 오일파스텔에 남겨진 작가의 회화적, 조각적 흔적일 것이다. 즉 그의 작품은 손으로 문지르고 도구로 긁어내고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한 과정과 시간을 관객에게 인식시킨다.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낯익은 건물과 풍경은 아날로그 사진과도 같은 신비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구상과 추상 이미지 사이를 연결해 주는 암흑의 색면은 그 파악불가능성으로 인해 보는 이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카메라로 채집한 사진을 이처럼 새로운 순수회화의 언어로 번역한 신선주의 고요한 흑백 풍경화는 사진과 회화, 구상과 추상, 향수와 낯섦 사이에서 우리의 시선을 더 오래 붙잡아 둔다.

최수환_Emptiness_summer_LED, 플렉시유리_121×121×2.5cm_2009
최수환_Emptiness_spring_LED, 플렉시유리_121×121×2.5cm_2009_부분

구멍과 빛이 창조한 환영-착각(illusion) ● 최수환의 '라이트 드로잉(light drawing) '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작업은 검정색 아크릴판이나 종이에 각기 다른 크기의 수많은 구멍을 뚫는 집요한 노동에서 시작된다. 그리기의 매체가 된 산업적이고 미래적인 형광등이나 LED 등의 빛은 구멍을 통과하며 이미지를 나타낸다. 빈 공간인 구멍을 공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작가에게 '빔(emptiness) '은 불교철학을 바탕으로 한 '비움'의 개념과 연관된다. 구멍들을 채운 빛이 형상을 구축하듯이, '빔'은 더 많은 것을 채우고 다양함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이자 공간인 것이다. 벽에 걸린 라이트 드로잉 앞에서 서성이는 관객은 다양한 구멍의 크기로 인한 빛의 어른거림으로 평면의 작품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신비한 시각적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어둠속에 전시된 흔들리는 빛의 회화는 보는 이를 평온하게 만드는 명상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간의 라이트 드로잉에서 관객은 이미지의 근원인 빛이 사라졌을 때 망막 속에 맺혔던 형상이 단지 수 많은 구멍, 즉 빔만으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이처럼 최수환의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시각공간(실제적 공간)과 비시각 공간(비실제적 공간) 사이의 관계"이자, 관객의 지각(감각의 종합)과 대상/현상의 실체 사이의 시각적 리얼리티를 탐험하는 것임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비물질적인 존재인 빛은 가장 실제적인 듯 보이면서도 비실제적인 매체이자 공간으로 사용된다. 그의 작업은 넓게 보면 디지털 영상시대에 범람하는 각종 이미지, 즉 픽셀 단위로 조합된 상(像)과 무빙 이미지가 대상/현상의 실체인가라는 의문과도 연관된다. 실제보다 더 매혹적인 빛의 환영은 결국 작가가 하나하나 뚫어낸 수많은 구멍들일 뿐인 착각의 이미지인 것이다.

이수영_점 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전사_65×46cm_2007
이수영_연결 02_절연선_가변설치_2009

점으로 승화된 존재들의 향연 ● 무한의 공간에서 점멸(點滅)하는 별무리처럼 보이는 이수영의 그림은 보는 이마저 침묵하게 하는 조용한 회화다. 이수영의 작업은 캔버스가 아닌 투명한 비닐 위에 점을 찍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아크릴 물감과 비닐 미디엄이 섞인 안료는 점들에 입체감과 질감을 더해준다. 그 위에 작품에 따라 수 차례 서로 다른 색면들이 덧칠되고 색상들이 우연하게 섞이면서, 배경이 되는 색면은 깊이 있는 공간으로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작품은 비닐 위에 켠켠이 쌓인 점과 색면들을 캔버스에 전사함으로써 완성되는데, 이때 비닐이 캔버스에서 떨어지면서 생기는 자국들과 비닐의 주름은 작품 표면에 흔적을 남긴다. 대개의 회화와 정반대로 그려지는 이수영의 그림은 이처럼 관객이 접하는 순서대로 그 레이어가 생성된다. ● 이전에 색면에 종이로 된 점들을 꼴라주한 작업과 최근에 점들의 궤적을 삼차원으로 제작한 작업까지, 이수영 작품의 중심에는 많은 작은 '점'들이 있다. 그에게 점을 찍는 것은 강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반복적인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다. 둘만의 유학생활에서 배로 늘어난 식구를 돌보는 반복적이면서도 불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하루에 몇 십 개씩 그릴 수 있었던 점들은 비워진 시간이자 자기와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했다. 이렇듯 이수형의 회화에서 색면에 얹혀진 수많은 점들은 틈틈이 조각난 시간들 속에서 남겨진 그의 흔적이자 작가의 존재들이다. 시간의 정직성을 드러내는 점들은 심연과도 같은 공간속에서 존재의 향연을 벌였던 셈이다. ■ 권연희

Vol.20091018g | Oil's Other Name_원론(原論)으로부터의 가제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