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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충무갤러리기획공모전 수상작가
관람시간 / 평일_10:00am~08:00pm / 주말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충무갤러리_CHUNGMU GALLERY 서울 중구 흥인동 131번지 충무아트홀 Tel. +82.2.2230.6629 www.cmah.or.kr
충무갤러리는 10월 15일부터 10월 30일까지 먼지를 수집해 지우개로 지워가며 독특한 작업세계를 보여주는 『강상훈개인전-Dirtograph』를 개최한다. '2007충무갤러리기획공모-황학동만물시장'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가는 도심 곳곳에서 채취한 먼지를 소재로 작업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아카데미극장, 중앙청 그리고 9.11테러현장이 자리했던 장소의 바닥에 7일 정도 종이를 붙여두고 그 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흔적(발자국, 바퀴자국 등)을 담는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먼지를 먹어 검게 변한 종이위에 과거의 역사적 현장과 현재를 지우개로 먼지를 털어내듯 지워가며 가필(加筆)없이 음영(陰影)만으로 이미지를 완성한다. 이번전시 부제인 Dirtograph는 먼지(Dirt)와 사진(Photograph)을 합성해 만들었는데, 역사적 자료인 사진을 모티브(motive)로 하지만 먼지작업을 통해 사진과는 다른 시간의 층위를 보여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작가는 '밟는 행위'로 인한 물리적 재료의 현장성과 '지우는 행위'를 통한 역(逆)표현방식을 통해, 과거와 그리고 변화된 현재를 한 화면에 공존시키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작업세계를 보여준다.
기록을 위한 인간의 욕망 ● 지구상의 생물 중 인간만이 유일하게 과거라는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산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형태든 간직된 경험을 재생 또는 재구성해 기록하고 저장해 두는 방법을 수세기에 걸쳐 연구해왔다. 원시시대의 상형문자, 언어와 문자의 체계 발달, 지필묵(紙筆墨)과 사진의 발명 그리고 컴퓨터까지 역사를 기록하고 그것을 압축해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과학을 발달시켜왔다. 특히 19세기 사진의 등장은 회화의 서사적·재현적 기능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이후 조형 예술가들은 일상적인 현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는 사진을 뛰어 넘어 독자적인 아우라(aura) 확보를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다. 강상훈도 사진을 모티브(motive)로 작업하지만, 사진이 가질 수 없는 영역을 다루는 작가다. 즉 그의 먼지작업은 피사체를 구체적이고 지시적으로 기록하는 사진의 기능을 내재하고 있으나, 사진 작업에서 볼 수 없는 시간의 층위를 보여준다.
먼지로 기록되는 과거와 현재 ● 작가는 개인적 또는 집단적 기억을 갖고 있는 도심의 이곳저곳. 즉 재현하고자 하는 장소의 바닥에 종이를 붙여두고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 방치해 둔다. 흰 종이는 방치되어 있는 기간 동안 어떤 이유든 그 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담는다. 도시민의 분주한 발자국, 자전거나 오토바이와 같은 이동수단의 바퀴자국 뿐만 아니라 비둘기의 배설물 등 시간이 지날수록 찢기고 헤어진 종이는 점점 더 회색빛 도시를 온전하게 기록한다. 처음에는 갈색, 붉은색 그리고 신발자국과 자전거 바퀴자국 등 각각의 특징이 바닥에 깔린 종이에 선명하게 기록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도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흔적은 지층처럼 쌓이며(마치 삶을 통해 만들어지는 배설물처럼) 흰 종이를 먹지처럼 검게 만든다. 작가는 시간과 기후에 따라 충실하게 변화하며 길바닥의 일부처럼 거리를 기록한 오염된 종이를 수거한다. 그리고 일정기간 종이가 자리했던 주변의 풍경은 지우개로 조금씩 지워져가며(먼지를 털어내듯) 서서히 그 형태가 만들어진다. 즉 흰색의 캔버스에 물감과 붓질로 이미지가 채워져 가는 방식이 아니라, 먼지로 채워진 종이위에 지우개가 붓이 되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별다른 가필(加筆 retouch) 없이 음영(陰影)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이미지는 본연의 형태를 드러낸다.
특히 이번전시에는 기존에 보여줬던 재래시장이나 9.11테러현장과 같은 단일공간 작업과 함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합성이미지의 작업이 전시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명동성당일대와 대형 상업지구로 변모한 현재의 명동거리가 합성된 작품은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들도 그 참상을 가늠케 한다. 또한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의 전신(前身) 서울운동장에서 1957년 개최된 학생종합체육대회와 신축중인 동대문디자인 플라자&파크, 1960년 미국 아이젠하워대통령 방한 당시 아카데미 극장 앞에 모여든 시민들의 모습과 현재 광화문 일대의 중첩, 1968년 마지막 전차에 작별을 고하는 승무원과 지금의 동대문역의 풍경 그리고 그 흔적조차 사라진 중앙청광장에서 1963년 있었던 제5대 대통령취임식장면 등 이 모든 작품은 빛바랜 흑백사진사료를 토대로 현재의 그 공간을 찾아 종이를 붙여두고 일정기간 방치 후 수거해, 그 위에 50여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지우개로 지워가며 그려낸다. 마치 땅 속 깊이 있던 매장유물의 흙과 먼지가 제거되면서 그 형태가 드러나듯 도시의 먼지로 얼룩진 종이에는 과거와 현재가 기록된다. 즉 작가는 작품에 유물적 특성(물질적 특성+경험)을 부여하여, 예술작품의 원본이 지니는 시간과 공간의 유일한 현존성인 '아우라'를 만드는 것이다.
Dirtograph ● 이번전시 부제인 『Dirtograph』는 먼지(Dirt)와 사진(Photograph)을 합성하여 만들어낸 단어이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한 화면에서 공존시키는 방법론을 가치의 생성과 소멸을 경험한 먼지에서 찾았다. 현재 오염물로 치부되는 먼지도 어느 시대 어느 순간, 누군가 또는 무언가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러한 시간적 추론의 출발점에서 작품은 시작되었고, 주관이 배제된 중립적 입장에서 촬영된 사진을 모티브로 사용한 것이다. ■ 오성희
Vol.20091016j | 강상훈展 / KANGSANGHOON / 姜尙勳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