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

방효성展 / PANGHYOSUNG / 方曉星 / painting   2009_1007 ▶ 2009_1017 / 일요일 휴관

방효성_시간여행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3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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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퍼포먼스_2009_10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빛갤러리_VIT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76번지 인곡빌딩 B1 Tel. +82.2.720.2250 Vitgallery.com

방효성의 『시간여행』 ● 방효성은 행위미술가로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화려한 경력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동경 사가쵸 스페이스 갤러리 초대전(1990), 링컨센터 초청 퍼포먼스(1994), 헤이그에서 열린 이준열사 순국 1백주년 기념 퍼포먼스(2007), 사라예보에서 열리는 윈터 페스티발 참가 등등. 그외에도 방효성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퍼포먼스 1967-2007』(2007), 『한국실험미술제』(2003) 등 국내의 주요 전위미술전 등에 참가해왔다. 전위미술 분야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기여도를 생각해볼만한 부분이다. 이런 사실만 보면 방효성을 퍼포먼스와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실험작가로 착각하기 쉽다. ● 그러나 실제로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총 17차례의 개인전중 몇차례의 행위와 설치작품을 빼놓고는 대부분 회화와 드로잉 작품으로 개인전을 가졌다. 다시 말해 행위미술가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행위미술 못지않게 그의 관심분야는 그림이며 지금까지 일관되게 회화와 드로잉에 주력해왔음을 알 수 있다.

방효성_시간여행_종이에 아크릴채색_78×108cm_2009

그의 회화는 사실 행위와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다. 주제라는 '씨알'이 몸에 떨어지면 '퍼포먼스', 평면위에 떨어지면 '그림'이 된다. 장르가 다양한 것같지만 실은 그의 모든 작업은 '생각의 저장고'에서 나오는 것이며 어떤 매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한다. 그의 작품의 특색은 물론 행위를 하는 듯한 자유로운 운필에 있다. 붓이 화면에 닿으면 마치 어린아이가 종이위에 크레파스를 쓱쓱 문지르듯이 술술 풀려간다. 그는 어떤 형식의 구애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림의 기초가 되는 원근법이나 명암, 전통적인인 의미에서의 구도에서도 멀리 떠나 있다. 화면은 내러티브가 속닥거리는 평면으로서 족하고 그 평면에 붓놀림의 연회를 펼친다. 색깔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색보다는 운필에 더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숫자나 기호, 낙서가 자주 등장하고 붓터치의 효과를 살리는 것도 실은 신체행위가 자아내는 흔적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붓의 흔적은 몸짓의 투영이고,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방효성_시간여행_종이에 아크릴채색_78×108cm_2009

그의 작업 자체가 하나의 드로잉에 가깝다. 그때그때의 감흥이 손의 힘과 속도, 각도에 의해 전달된다. 물론 그의 작품에도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무엇을 서술하거나 물상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애당초 그의 작품에 이미지는 기호로 축약되거나 그 기호 자체도 정체가 불분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언어가 소통을 위한 하나의 약속이듯이 물상을 기호로 대체시켜 정신적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은 쉽게 이해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지만 물질과 정신세계 사이에 틈새가 있듯이 물상과 기호 사이에 틈새가 있음을 알려준다. 아무리 자세히 뜯어보아도 해독되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얼핏 보고도 대충 그 뜻이 이해되는 것도 있다. 결국 우리는 해독되지 않는 것을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말이다.

방효성_시간여행_종이에 아크릴채색_78×108cm_2009

그의 이미지는 사물 이전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편견과 오해로 망실되고 왜곡된 형태가 아니라 본연의 온전한 모습을 꿈꾼다. 물론 어떤 것이 가장 온전한 모습인지는 작가도 알지 못한다. 다만 창조주가 세상을 지었을 때의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을 궁리하면서 그 본체를 찾아가는 것이다. 화면의 분위기가 아득하고 몽환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완전한 상태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해도 거기서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의 또다른 특징은 시간의 추이다. 이것이 그의 작품에 핵심을 이루는데 방효성은 지나간 시간들을 지워가듯이 화면위에 흔적들을 남긴다.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그리고 덧칠하여 아래층의 물감이 스며나오게 한다. ● 이런 작업은 마치 새 계절이 오면 옷을 갈아입는 산하를 보는 것같다. 시간은 경과하면서 지상에 언제나 새로운 지문을 남긴다.

방효성_시간여행_종이에 아크릴채색_78×108cm_2009

봄에는 새싹의 환희를, 여름에는 신록의 궁전을 세우고, 가을에는 결실의 열매를, 겨울에는 다시 새 계절을 기다리며 도약의 계기로 삼는다. 그의 작품에서도 시간이 계절처럼 지나간다. 지나갔다고 해서 허망해하지 않으며 초조해 하지도 않는다. 그럴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 그의 작품의 내면은 신앙의 언어로 차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변해가고 소멸되어 가지만 존재 자체는 영원속으로 한걸음씩 다가간다. 이렇게 희망과 다가올 세계에 대한 소망을 표상한다. 필자는 그의 그림을 찬찬이 관찰하면서 천상의 가락을 들려주는 연주가가 생각났다.

방효성_시간여행_종이에 아크릴채색_50×65cm_2009
방효성_시간여행_종이에 아크릴채색_50×65cm_2009

물론 그의 작품에는 천국을 상징하는 어떤 것도 없고 천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환기를 통해 피조세계의 질서 및 아름다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존재, 그것의 생명력은 피조세계의 신비와 경이를, 그런 신비는 창조주가 아니라면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것들이다. 작가는 지금도 휘파람을 불며 작품을 통해 마음속에서 불어오는 천국의 바람, 낙원의 꽃, 천사들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쏜살같은 시간의 질주 속에서도 그가 즐거워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 서성록

Vol.20091016g | 방효성展 / PANGHYOSUNG / 方曉星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