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순의 회화작업에서 작가는 가능한 한 '무(無)'에 가까운 흑백 화면 위에 그림을 그려나간다. 작가는 선화(線畵)를 응용하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한 가지는, 청먹과 젯소를 섞어 바탕칠한 먹물빛의 캔버스 위에 목탄으로 그린 후 손가락의 지문을 이용해 목탄을 직접 밀어넣듯, 수많은 선을 되풀이 해 그리는 방법이다. 그 선들이 서로 만나 더 굵은 선과 넓은 면을 형성해 나가며, 생명력이 넘치는 역동감을 자아낸다. 원래 인체 데상을 기반으로 추상화한 윤곽선에서 출발한 선들은 유기적인 선의 운율과 생명력으로 연결되기도 하며, 매듭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의 또 다른 방법은 검은 벨벳 천의 표면 위에 가늘고 가벼운 흰색의 수많은 선을 여러 겹 그리는 것이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여백에 생긴 구멍들은 무한한 심연이 펼쳐지는 회화의 한 유형이다. 금욕적인이라 할수 있는 절제된 흑백의 색과 오로지 선하나로 회화를 형성하고 있는 배상순의 작품은 감각적인 색체와 새로운 기법의 현란하게 응용하는 근년의 회화경향과는 정반대로 회화의 근본을 철저히 따른다. 이 작가의 진지하고 독창적인 화풍에서 생기는 예술적인 활력을 앞으로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Otagaki Makoto

배상순_monkeys fist3_162×162cm

배상순_joinable2005_200×91cm_2006

배상순_마주보기1 vis-a-vis 1_캔버스에 젯소, 목탄, 먹물_각 117×91cm_2009

광주신세계갤러리는 배상순 초대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08년 제11회 광주신세계미술제 수상 작가에 대한 초대전으로 열립니다. 배상순은 구상적인 모티브로 시작하여 추상화된 조형으로 완성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목탄과 먹, 백색안료를 위주로 그려진 이 작품들은 인체와 매듭이라는 구체성을 반복적인 드로잉으로 단순화 시키면서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이미지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흔하고 작은 사물이 모뉴멘트화 되는 이런 과정은 작가가 사물의 재현보다 자기 내면에 몰두하려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페인팅보다는 드로잉의 과정에 가까운 이 작업은 단번에 드러나지 않고 시간과 행위의 축적을 통해 미묘하면서도 사유적인 율동감을 담은 화면으로 귀결됩니다. ● 매우 회화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지만 그렸다기 보다는 소조작품을 완성해 나가듯 쌓아 올려 만들어진 그림들은 희거나 검은 바탕에 검거나 흰 색채로 그려집니다. 특히 검은색 벨벳천 위에 그려진 작품들의 경우 올려진 백색의 안료를 빨아들이는 검은 색에 의해 그려진 듯 그리지 않은 듯한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작가가 최종적으로 그려진 이미지보다는 그리는 과정과 거기서 얻어지는 명상적인 교감을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색채를 최소화 하거나 백색과 검은색을 고르는 것도 그러한 과정에 적합한 선택이라 할 것입니다.

배상순_실뜨기 1.2.3 cat's-cradle 1.2.3_캔버스에 젯소, 목탄, 먹물_각 60×84.5cm_2009

배상순_monkey's fist 6_캔버스에 젯소 목탄 먹물_183.5×112cm_2009

배상순은 일본 교토를 근거지로 서울과 영국 등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작품은 작가가 작업의 주제로 삼고 있는 매듭이나 생명의 원형질에 대한 은유를 담은 것들입니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명상적인 작업이 그녀가 원하는바 '관계맺기', 사유의 공감으로 전환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 광주신세계갤러리

Vol.20091013f | 배상순展 / BAESANGSUN / 裵相順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