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새 천년 기획Ⅹ-한국화의 현대적 변용

CONTEMPORARY TRANSFOMATION IN KOREAN PAINTING展   2009_1006 ▶ 2009_1011

초대일시_2009_1006_화요일_06:00pm

기획 1, 2_원로 / 중진 초대작가 강보경_강재희_계선희_고찬규_곽정명_구본아_구철회_권기범_권기윤_권인경_권희연_김건일 김경선_김경희_김대열_김대원_김동수_김명진_김미리_김민경_김민재_김민주_김민지_김보희 김선두_김성호_김성희_김은진_김정희_김지_김지연_김진관_김창래_김천일_김천정_김품창 김현_김현경_김현철_김혜영_나기환_나정태_나형민_남군석_남궁환_남빛_노신경_류숙영 리미희_민경갑_민재영_박노수_박능생_박만규_박명선_박서림_박성식_박소영_박순철_박완용 박은라_박인환_박일화_박종갑_박지영_박필현_박현정_박혜신_배상윤_백범영_백지회_백진숙 변내리_변정현_복부희_서용_성경희_성송희_성창경_성태훈_손영남_송근영_송영방_송윤주 신영상_신지원_신철균_신태수_신하순_심수진_안동숙_안석준_안소현_안호균_양정무_양혜숙 엄기환_오경미_오선예_오숙환_오용길_오정은_오태학_왕렬_유미란_유미선_유윤빈_유지원 윤기언_윤세열_윤진숙_이광춘_이구용_이군우_이규선_이근우_이기숙_이기훈_이동연_이동환 이만수_이미연_이선우_이성아_이성현_이세정_이숙자_이숙진_이순애_이승숙_이승연_이양우 이영희_이은호_이인숙_이인실_이재복_이정신_이종상_이지은_이진용_이창희_이철량_이해경 임서령_임선미_임송희_임영숙_임진성_임태규_임현경_임현락_장두일_장안순_장진_장현재 전수경_정경화_정미혜_정세원_정수영_정유정_정종해_정준미_정채희_정탁영_정황래_정희우 조성은_조인호_조춘자_조평휘_지요상_차명희_차영규_천병민_최성훈_최송대_최순녕_최예빈 최진원_최해진_하연수_하태진_한은선_한진만_故한풍렬_함순옥_허준_현경숙_홍성모_홍성표_홍푸르메

기획 3_청년 작가 박정림_박정혜_박주동_박진영_배정미_배한나_서은경_안인경_연보라_우순근_유경진 유미희_유한이_유형미_이신혜_이오성_이윤한_이정연_이지은_이지은_임향_장성희_정나영 정은주_조경미_주희_진분홍_최은혜_한성희_한아림_한윤진_황윤경_황인순_황효실

주최_동양화 새 천년 추진위원회 후원_서울문화재단

관람료_일반 3000원 / 학생 및 단체 2,000원

관람시간 / 11:00am~08:00pm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HANGARAM ART MUSEUM 서울 서초구 서초동 700번지 1~3층 전관 Tel. +82.2.580.1519 www.sac.or.kr

'틈에서의 사유 ' -동양화새천년 10주년 기념전에 부쳐 ● 이번 전시는 『동양화새천년』전의 10주년을 기념한 전시다. 그동안 이 전시는 특정 주제를 내세우는 기획전의 성격을 지니기 보다는 일종의 그룹전 성격이었다고 보여진다. 각 대학의 동양화과 교수 및 그 후배, 제자들로 구성된, 비교적 대규모의 작가 동원에 따른 전시형태를 지니며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런 인상을 갖고 있던 내게, 10년을 맞이해서 이제는 이 전시를 정리하는 한편 최종적으로 매듭을 져보려는 의도에 따라 현재 동양화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 중 중요하고 의미있는 작업을 한다고 여겨지는, 비평적으로 판단되는 작가를 한 번 정리해보면 어떠냐는 의견을 주최 측이 전해주었다. 그러니까 커미셔너제에 따라 작가인선의 재량권을 부여하는 한편 그렇게 선별된 작가들만으로 전시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약 300여명의 작가인선을 제의받았다. 참여작가들의 참가비를 통해 전시를 만들어야 하는 사정상 그 정도 인원은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300명이라면 무척 많은 숫자다. 오늘날 웬만큼 동양화작업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작가들 모두를 다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숫자다. 일단 숫자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작가 인선에 들어갔다. 가능한 접할 수 있는 작가들의 자료를 검토해나가면서 작품의 질적 측면만을 고려해 선별해 보았다. 작품의 질이란 어려운 문제다.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정답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오늘날 한국 화단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 작품의 질에 대한 논의와 그 공유성이 거의 부재하다는 것이다. 미술시장이 그 어느 것보다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면서 시장의 판단과 선호가 곧바로 작품의 질로 여겨지고 강제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조는 말할 것도 없고 오로지 잘 팔리고 여기저기서 전시를 많이 하고 자주 하는 것이 작품의 질과 비례하기에 그럴 것이라는 그 단순하고 무지한 인식이 의외로 강고하다는 것이 좀 기이하다. 그 같은 시장의 판단과 물리적 활동이 아무 의미없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작품의 질과 의미를 담보하는 절대적인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동양화 새 천년 기획Ⅹ-한국화의 현대적 변용展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_2009

사실 평론은 좋은 작품을 날카롭고 까다롭게 선별하고 왜 그것이 좋은지에 대해 나름의 객관성을 지향하면서 설득력 있게 개진하는 일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안목과 취향일 수 있겠지만 비평가는 자신의 안목과 취향, 세계관, 미술관을 통해 최고의 것들을 솎아내는 자들이다. 인문학, 예술은 결코 정답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대의 안목 있는 이들의 인정 속에 유한한 생애를 살다 해석되고 전복되기를 거듭하며 뒤를 잇는 새로운 사유와 논의의 숙주가 된다. ● 약 250여명의 작가를 선별하고 그 명단을 주최 측에 보냈다. 작가들에게 공문을 보내고 의뢰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작가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그간의 『동양화새천년』전에 대한 인식 때문이거나 참가비를 내야 하는 입장이 선뜻 내키지 않았을 것이며 별다른 이슈나 의미가 부재한 대규모 전시라는 것이 오늘날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회의 등이 아마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보낸 명단의 반도 안되는 숫자만이 전시 참여를 알려왔다. 그래서 애초에 의도한 전시내용은 불가능해졌다. 전시 주최 측은 다시 이전에 전시에 참가했던 이들을 보충해서 약 220여명을 만들어냈다. 기획자입장에서는 애초에 기획했던 인물들과 그 나머지 작가군을 가지고 그 안에서 전시의 틀을 잡는 역순을 취했다. 그렇게해서 특별한 이슈나 주제를 내걸지 않는 대신에 현재 동양화작업을 하는 작가들(물론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로만 한정되겠지만)의 작업세계의 근간을 헤아리고 그것의 근원성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잡았다. 결국 우리 전통회화의 세계를 토대 삼아 이를 해석하고 풀어내는 작업, 그리고 풀어내긴 하되 그것이 서구현대미술의 방법론과 조형이론과 접목되는 지점 내지는 다분히 이를 의식한 데서 이루어진 것이 그간의 한국 현대동양화란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동양의 산수화, 인물산수화와 사군자, 서예(서체)의 변용, 그리고 동양화의 재료 체험을 문제시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이는 당연하고 바람직해보이고 또는 분명한 성과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동양화를 사고하는 틀의 유연성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명목론적인 입장에서 정답 같다고 여겨지는 쪽을 물고 있다는 아쉬움도 지우기 어렵다. 그런 당위성을 갖다가 저마다 조금씩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작업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작가들의 자료를 가지고 앞서 언급한 전통의 틀 안에 배치하고 서로서로의 작업을 조망하고 비교하고 한 번 생각해보는 자리를 만들려는 의도 아래 기획을 잡았다. (물론 이런 구분이 매우 자의적이고 기계적인 한편 각 작품들의 미세한 편차를 억압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불가피하게 큰 틀에서 작가들의 작업을 나누었는데 그 기준은 해당 작가들의 전통에 대한 번역과 이해 그리고 그것의 조형화가 어떤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인가라는 개인적인 관심에 기초한다) 이들 작가들의 작업을 보다 보면 우리가 동양화의 전통과 그 '현대적 변용' 또는 식상하지만, 전통을 무엇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해석하는 틀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도대체 '현대화'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현대미술과 '조형의 현대화'란 것을 어떻게들 이해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작업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지에 대한 이해와 감이 조금 잡힐 것도 같다.

동양화 새 천년 기획Ⅹ-한국화의 현대적 변용展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_2009

한국 현대미술, 특히나 현대동양화는 근대 이후 유입된 서구미술과 지난 전통사회에서 기능하던 이미지 사이에서 나름의 '알리바이'를 만들어나가려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왔다. 그것은 대다수 작가들에게 공통된 과제이자 심리적 억압이고 불편한 강박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서 문제는 좀 심각해진다. 미술이 이렇게 공통된 숙제를 열심히 풀어내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우리 미술이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개별적이 되는 길을 옥죄는 일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자기의 개인적인 작업이 개별적이고 창조적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주체적이여야 한다면 무엇보다 자신의 삶이 주체적이 되고 개별적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자신에게 있어 미술이 무엇인지, 동양화작업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별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림은 바로 그 지점에서 풀린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전통회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별적인 시선으로 그것을 뜯어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동양화와 미술에 대한 자신만의 주체적 시각과 해독 행위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서구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해석 역시 그러하다. ● 알다시피 동양인들은 자연을 외경하면서 자연의 기운이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어왔다. 자연과의 조화가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고 바람과 물이 인간의 문제와 깊이 결부되어 있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머무르는 것과 사물과 그리고 세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조화로운 총체를 이루며 있는 어떤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동양의 예술이고 그림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화란 결국 동양문화의 형이상학을 말해주는 지표이자 일종의 가시화된 상징이다.

동양화 새 천년 기획Ⅹ-한국화의 현대적 변용展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_2009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현실적 조화의 느낌에 그 현실적 근거를 두고 고양된 자연의 장은 자연 속에서 운위되는 일상적 삶과 단절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의 근본은 자연의 유기적 일체성이고 이것은 자연의 체험에서 궁극적으로 증거되는 것이다. 이 전체성은 또한 현실적으로 농경적 삶의 안정된 한계들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구화, 근대화의 물결 속에 그 같은 공간 인식은 상실되었다. 사물의 전체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그 공간의 안정성이 사라지고 장소와 결부되지 않은 이미지들이 범람하게 된 것이 오늘날 현대미술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전에 회화에서 특별한 목적으로 재현되고 가설된 풍경, 산수 등 전통사회의 이미지를 그린다는 것, 계승하고 현대화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가를 물어본다는 것, 그것이 현재라는 시공간 속에서 어떻게 다시 읽혀지고 해독되고 번안되어야 하는 지의 문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질문일 것이다. ● 이 전시는 산수화의 변용, 인물산수의 변용, 사군자, 식물성이 변용, 그리고 서체의 변용 및 일상에 대한 관심 등으로 나누어보았다. '일상'을 제외하면 한결 같이 전통적인 동양화의 세계에 기생하는 작업이다. 사실 일상 파트는 구분하기 애매하기 한데 달리 다른 틀로 들어가기가 어려워 다소 편의적으로 나눠보았다. 그러나 이들 작가들에게 일상은 결국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안에서 그림 그리는 행위를 물어보는 일이기도 하다. 첫째 '산수화의 변용'은 관념적인 산수의 정신을 유지하거나 이를 서구풍경화에 접속된 실경/산수풍경으로 그려내는 한편 그 산수를 모티프 삼아 이를 조형적 실험으로 구사하는 입장, 그리고 산수화의 공간을 미시적으로 들어가 여전히 산수화의 뉘앙스를 여운처럼 간직하고 있는 자연풍경을 소재화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도시라는 오늘의 삶의 공간을 이전의 자연공간을 보는 응시의 시선과 동일한 맥락에서 그려내는 작업으로 파생한다고 보았다. 두 번째, '인물산수화의 변용'의 경우 자연과 '물아일체'를 꿈꾸며 선비의 수양적 차원에서 그려지던 그림이 오늘날 어떤 식으로 전이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았다. 인물산수의 틀이 여전히 이어져오는가 하면 자연 속에 은거하는 인물을 단독으로 추출해 초상으로 초점을 삼는 작업은 이전의 초상화와도 연계되어 있지만 넓은 의미로 인물산수란 틀에서 엿보고자 하였다. 상당수 인물은 여전히 자연/꽃이 들어온 배경 속에서 그것과 분리되지 않는 어떤 상황성을 지속해서 드러내고 있다.

동양화 새 천년 기획Ⅹ-한국화의 현대적 변용展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_2009

'사군자/식물성'은 실상 꽃그림으로 제한되는 느낌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그림은 단연 꽃그림이다. 너무 꽃들이 많이 그려지고 있다는 느낌, 꽃이란 소재가 한국 현대동양화의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결국 그 꽃 역시 자연주의적 전통 내지는 넓게 보면 식물계에서 인간의 이상적인 삶을 헤아리던 사유의 전통 또한 설핏 드러내고 있다고 보았다. 아름다운 대상이자 비교적 손쉽게 그려낼 수 있는 소재로서의 알리바이도 분명 작동하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꽃/자연에 대한 한국 작가들의 놀라운 편애인데 이는 다분히 전통적인 미의식의 유전적 영향 내지는 산수화, 사군자나 민화의 복합적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음은 물론이다. 사군자를 다른 틀에서 담아보고자 하는 입장과 꽃/식물을 조형적으로 포치시키는 작가들 및 단지 식물의 외형을 소재 삼기 보다는 그 식물성이란 존재를 물어보는 작업들로 구분해 보았다. 해방 이후 한국 동양화의 추상적, 조형적 실험은 사실 서구현대미술의 외형적 형식을 동양화의 틀안 에서, 그 유사성을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진화한다. 대부분 서체적 필의 운용(선, 붓질이 외부세계를 지시하거나 재현하는 대신 그것 자체로 자족적인 운동과 신체성을 보여주는, 작가의 몸의 놀림을 반영하는 것이 되는)과 먹과 채색물감, 종이라는 재료가 지닌 물리적 속성 및 평면성이라는 존재론적 조건을 모더니즘적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동양화의 현대적 작업으로 인식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수묵으로 이루어졌든, 채색으로 이루어졌든 비교적 유사한 경로를 보여왔던 것 같다. '서체의 변용'은 한국 현대동양화의 이른바 모더니즘 작업이 수묵이든, 채색이든 서구현대미술의 추이를 강렬하게 의식하면서 이를 동양의 재료체험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그 편린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동양화 새 천년 기획Ⅹ-한국화의 현대적 변용展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_2009

오늘날 동양화 작가들의 작업에서는 여운과 맛이 부족해 보인다. 전통회화에서는 그들의 삶의 감각과 희구가 매력적으로 녹아있다. 오히려 표면적으로는 동양화의 도상과 상징들, 재료들을 거침없이 끌어 쓰는데도 그런 맛과 여운, 세계와 사물, 그림을 대하는 태도는 다분히 실종된 듯하다. 너무 꾸며지고 조형으로만 가공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서양과 동양의 두 문화의 접점과 경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두 세계를 다 같이 들여다보고 거기서 어떤 틈과 흔적을 되살려내는 일이다. 그 차이를 읽어내는 일인데 그것은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그 두 개의 단순화의 논리를 비껴나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단순히 동양화 장르, 그림의 문제만이 아니라 결국 근대화 이후 한국에서의 삶과 문화를 반성해 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사실 글은 이렇게 쓰고 여러 단상들이 범람하지만 과연 동양화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고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 될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잘 안 잡힌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겠다. 이번 『동양화새천년』10주년전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많은 작가들이 빠져있는 반쪽짜리 전시이지만 그 틀 내에서 기존 한국의 동양화가 무엇이며 무었이있나를 반성해보고 앞으로의 돌파구를 만들어나가는 의미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박영택

Vol.20091008d | 동양화 새 천년 기획Ⅹ-한국화의 현대적 변용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