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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00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얼 갤러리 ERL GALLERY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2-2번지 진송빌딩 B1 Tel. +82.2.516.7573 www.galleryerl.com
얼갤러리에서는 강지만 4번째 개인전 『五里霧中(오리무중)』展을 초대 전시한다. 작가는 혼자만의 세계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환상으로 이번 전시 주제인 오리무중이라는 사자성어에서 볼 수 있듯 혼자만의 세계라는 안개 속에 가려져 숨어버린 현대인의 끝없는 일상을 대변한다. 현재 그의 작업은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을 할 수 없는 키덜트적 캐릭터 인물상으로 많은 나이대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강지만의 작품은 항상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로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늘 혼자이지만, 얼굴이 커서 얼큰이로 불리는 작품 속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재기발랄, 행복해 보인다.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동화적 환상 속에 빠져 노는 얼큰이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하는 여운을 가져온다. 이는 바로 이 시대 젊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고뇌로 머리만 커져버린 유쾌하고 코믹한 얼큰이들의 환상 속에서 만나는 무릉도원과 시대적 사회상을 반영한 자기고찰, 더욱 견고해진 석채기법과 점묘로 톡톡히 들어나는 따스한 화면, 그리고 회화적 질감을 넘어 조각과 LED 설치작품 등 다양한 시도들 또한 이번 강지만의 『五里霧中』展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닫힌 세계 속 페이소스와 새로운 자아의 발견 - 1. 우린 모순으로서의 인생, 고독과 비극으로서의 삶의 단면들을 끊임없이 응시하는 가운데 그것을 감내하려는 노력을 보이지만 삶을 보편화 해온 가시적, 목적적 욕망과 당위성에 짓눌려 아무런 항거도 하지 못한 채 비움이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곤 한다. 싫든 좋든 이런 저런 이유로 버릴 수밖에 없는 리스트를 만들어야 하며, 그렇게 작성된 명단에 새겨진 것들이 인생론 마지막 장을 반드시 '행복'으로 기술하는 것은 아님을 자각하곤 한다. 물론 버리는 것들이 많다고 하여 꼭 그만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확신도 거짓이기 일쑤임을 눈치 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다수는 그 뻔 한 선택, 불가항력적인 여정을 따를 따름, 이탈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저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마는 것뿐이다. ●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개체에 접근하는 숙명의 다른 모습은 소통의 불편함이요, 권력의 위압감이고 자율적 이방인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방증하는 것은 자신의 지향점과 대척점에 있는 현실과의 괴리 또는 이상과의 불일치, 진실과 거짓의 모호함, 실현의 정도와 의지 간 간극과 같은 내적 현상 등이다. 이는 숙명이라는 이름 안에 감춰져 있는 신고(辛苦)의 본질적인 성향이자 얼굴이다. 문제는 그것에 순응하지 않으려 단절과 분절, 탈출과 해방을 꿈꿀 때 발생한다. 체념과 좌절은 단편적인 길을 열어주지만 전복과 항거는 불투명한 행로와 함께 지독한 고독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린 가끔 연민을 느끼며 때론 슬퍼지며 더러는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의 다수가 그러하듯 이런 상황에서의 감정이란 허허롭기 마련이다. 어떤 동경이 직접적으로 나와 밀도 있는 인접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공허하고, 결국 혼자라는 생각에 머물면 머릿속은 온통 실존에 관한 의문부호들로 채워지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여기서 잉태되는 것은 혼돈이다. 개인의 자아와 공동체적 정체성의 이질적인 교집합, 이성과 감정의 엇박자, 추억과 선망의 비호흡, 오늘과 내일의 상호 충돌 과정을 겪게 되면서 흔히들 말하는 삶의 명징함은 뒤죽박죽된다. 마치 안개 속에서 어느 항로를 따라야할 지 구분하지 못하는 형국, 작가 강지만의 네 번째 개인전 주제인 오리무중(五里霧中)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2. 작가 강지만은 비교적 연륜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경중과는 달리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철학적인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왔다. 이는 지난 세 번의 개인전에 발표된 작품을 통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부분으로써, 평범한 삶에서 우러나는 깊은 단상들, 한 치를 알 수 없는 심적 혼돈과 진한 외로움 등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강지만이 다뤄온 주제들은 늘 인간의 심리를 반영했으며 현실에 놓인 다양한 현상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담아낸 것이었다. 그것은 대체로 인간사의 쓸쓸함과 외로움, 도시인들의 무관심과 에고이스트적인 이중적 잣대와 타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으로 드러났으며 그 위에 작가의 진지하고 따뜻한 의식이 도포되는 양상을 띠었다. ● 따라서 어느 면에선 다소 무겁고 사색적이라는 게 옳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 상념 등을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풍자, 우의와 같은 남다른 여운으로 가득 메워 놓고 있다. 그러한 탓에 내용과는 달리 그 외형은 오히려 유쾌하고 기발하며 흥미로움으로 가득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며 묘한 '페이소스(pathos)'마저 전달한다. ● 이번 『오리무중』展에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 또한 자신의 세계에서 침잠한 채 세상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도유한 시선이 투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같은 동선을 그린다. 인간 내면 끝자락에 매달려있는 근원적인 쓸쓸한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들춰내고 '영원한 세계 또는 절대고독 속에서의 새로운 자아발견'이라는 작가의 지속적인 명제가 동화적 상상력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과거 작품들과의 유사함을 증거 한다. 다만 이전 『오리무중』展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보다 명료해진 스토리와 선명해진 언어로 점철되어 있어 기존 습속을 배제한다. 특히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견고함, 서사적 내레이션의 강조는 이전 작품들과 일정한 선을 긋는다. 그리고 나와 연관된 외부세계를 직통하는 그 내레이션은 우리에게 사색의 기회를 보다 선명하게 제공하며, 삶은 무엇이고 현실을 기반으로 한 심연 속 자화상은 어떻게 그려지는지에 대해 다시금 재생한다.
3. 이제 작가 강지만의 작품을 완성케 하는 여러 회화적 요소들을 눈여겨보자. 그는 유년시절 이후 누구나 한번쯤은 품었을 법한 꿈이나 기억, 희망, 바람 등을 비롯해 현실에서 체감하는 실존에 대한 자각과 자문을 작품 속에 이입해 일반화 한다. 작가 개인의 시각을 통해 구현되는 이것은 일종의 로망에서부터 소소한 단상들, 번민과 고통,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에 이르는 비교적 감성을 자극하는 단초들이며, 작가는 이를 평범하게 다가서도록 하면서도 썩 가치 있는 무게로 거둬들인다. 어느 곳에서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상황'이 작가의 내면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업으로 거듭나는 셈이다. 해학이 부유하는 유머러스한 풍경, 무표정하거나 혹은 귀엽거나, 신랄하게 세상을 응시하거나 무관심해 보이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하는 강지만의 작품들은 마음 내 공명을 울리는 유쾌한 기호들로 채워진다. 엉성한 영웅의 활약을 담은 「레슬러」와 「히어로」, 자기모순에 빠진 상태를 조명한 「신고합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독백으로 박금당한 「인질」, 이성을 넘어선 초현실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it's here paradise」 등의 근작들은 모두 그러한 강지만의 독자적인 회화성을 구축하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랄 수 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인식적 측면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자 설명의 열쇠인 캐릭터들의 활약이다. 제임스 메튜의 소설 '피터 팬(Peter Pan)'이 사회적 테마를 통해 페이소스와 유머, 감상, 풍자가 녹아있음을 연상토록 하듯 강지만의 캐릭터들 또한 그의 작업에 있어 구성 및 전개, 스토리텔링을 완성하는 실질적인 주체이자 상징으로 자리한다. ● 듬성듬성한 수염, 러닝차림으로 곧잘 등장해 흡사 백수 혹은 동네 아저씨처럼 느껴지는 한 어른(작가를 모티프로 했다 싶을 만큼 외형이 상당히 닮은)과 비교적 성숙해 보이는 소녀(다른 인물들 보다 젊잖아 보이는), 그리고 늘 날카로운 성징을 예측케 하는 앙칼진 표정의 한 소년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인데, 머리는 크고 팔다리는 가느다란 독특한 생김새를 한(가분수에 '얼큰이'라 표정의 디테일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몇몇의 캐릭터들은 토끼, 멧돼지, 곰, 새, 개 등의 동물들과 함께 주연과 조연을 번갈아가며 다양한 상황에서 극의 전개를 원활하게 이끄는 감초 역할을 한다. 인간의 생을 하나의 무대로 한다면 그의 그림 또한 견고하게 지어진 무대요, 그 캐릭터들은 인간 군상의 대역으로 훌륭한 셈이다.
4. 다음으로 눈여겨봐야할 것은 스토리, 즉 서술과 공간구성이다. 일단 강지만 회화에서 서술을 말랑하게, 전달의 원활함을 나르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캐릭터들이다. 그들은 화면 곳곳을 누비며 상황을 연출하며 본인을 비롯한 주변 일상의 담화들을 만들어내고 작가의 의도를 대신한다. 환상의 나래로 빠져들거나 익살스러운 형태로 존재하거나 끊임없이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그들은 작가의 의중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를 돕고 심층화 하는 매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감성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 모두를 일체화시키는 핵심적인 요소라 해도 그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을 흐르는 일정한 맥은 '서술의 주제', 즉 이기적인 사회, 불안정한 인간 심리, 영웅을 바라거나 고독에 몸부림치는 병리적 현상들을 유추케 하는 공간구성에 있다. 물론 작가에 의해 철저하게 위장되기에 액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더구나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의 행동과 설정 덕분에 단지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평가에 치중토록 하지만 재치 있는 위트와 날카로운 아이러니를 따라 끝에 이르면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단상, 자아에 대한 고찰, 콤플렉스에 시달리거나 고립을 자초하는 현대인들의 숨겨진 이면을 만날 수 있다. 이는 공간구성의 결여에서는 불가능하다. ● 더불어 공간은 서술을 부각시키는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만평처럼 읽히도록 하는 기능성을 갖고 있는데, 주인공이 놓이고 환경이 부언하며 작은 소재들을 주변에 배치함으로써 화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들은 거미줄처럼 하나로 연계되어 작가의식을 주관하고 표현 형식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개별적 이미지만으로도 독립적인 목소리(일종의 상징성)를 갖고 있다. 이 독립적인 목소리(요소)가 하나의 공간에서 통합적으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서술구조는 완성되며 강지만 작업이 포박하고 있는 군중 속 외로움, 즉 고독감의 실체(서술의 실체)는 가시화된다. ● 이를 정리하면, 강지만은 딱딱한 회화의 거푸집 빈 공간에 캐릭터를 세우고, 물을 채우듯 그 사이사이에 스토리를 집어넣고 공간을 적절히 분할하거나 교합시킴으로써 날카로운 작가적 시각과 부드럽고 온화한 언어들을 창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정하게 서로를 흡수하며 화면 위에서 순환할 때 강지만의 회화는 제 수준을 담보하게 된다. 이는 다른 말로 인간의(캐릭터로 치환된) 살며 살아가는 와중에 챙겨야만 할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간과하거나 잃어버린 후 남는 비우연의 이면에 대한 서술, 나아가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과 생의 본질에 관한 의문을 공간으로 포괄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5. 사실 강지만이 그림을 통해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생활의 결함이나 악폐(惡弊), 여러 불합리함과 우열, 허위 등에 대한 기지 넘치는 비판적 또는 조소적(嘲笑的) 발언으로 함축된다. 여기에 일상에 대한 동질감의 획득, 잉여인간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존재에 대한 밀도 있는 성찰의 필요성을 회화적 감성의 전복이라는 시지각적 기능을 통해 반영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며 넓게는 휴머니즘을 향한 따뜻한 동경, 작가의 가치관의 다른 모습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단순히 트렌드에 민감한(단지 팝아트의 성향으로 단정하는 시각) 스타일화가 아닌 고유의 형식과 논리, 언어들을 뱉어내며 우리네 삶에 투영되어 있는 고독과 외로움, 실존하는 현대인들에 관한 날카롭고 애정 어린 자서전이라는 것이다.
그의 그림 속에 부유하는 유머러스한 이미지들은 소통의 부재와 단절, 탈피로 인한 진한 고독감을 생경하지 않게 묻어내는 역할을 하며 문명 속에 침전되어가고 있는 인간주의를 일깨우는 일종의 역설적 등식을 엿보도록 한다. 그런 이유로 그의 그림들은 애수,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지만 반면 부쩍 살갑게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며, 캐릭터들은 그것의 조타를 알려주는 직접적인 치환의 매개이자 동시대적 상황을 설명하는 일종의 표상으로 안착된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주제인 오리무중(五里霧中)은 이러한 표상을 암시하는 주어로 정의된다. ● 한편 작업방식에 있어 강지만의 작품들은 고된 노동력을 요구하는 시간의 산물이다. 일일이 점과 점을 연결해 완성하는, 그야말로 공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것은 작업 시간에 있지 않다. 그 집적된 시간과 비례해 작자의 예술적 개성과 미적 향기를 타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보편적 공감대에 올려놓는 완숙함, 군더더기를 버린 채 핵심만 명료화하며 점차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작품의 질, 닫힌 세계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자아에 대한 탐구와 관계가 깊다. 이번 얼갤러리 초대전인 강지만의 『오리무중』展은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 얼 갤러리
Vol.20091006h | 강지만展 / KANGJIMAN / 姜智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