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Leipzig

에라스무스 쉬뢰터展 / Erasmus Schroter / photography   2009_1007 ▶ 2009_1030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5_C 프린트, 디아섹_120×150cm_1990

초대일시_2009_10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UNC 갤러리 청담 UNC gallery Cheongdam 서울 강남구 청담동 141-11번지 Tel. +82.2.543.2798 www.uncgallery.com

Focus on Exhibition ● 1956년 생(生) 에라스무스는 통독 이전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 나고 자랐고, 거기서 사진을 공부했다. 그리고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인 1985년에 서독 함부르크로 이주했다. 이러한 작가 이력이 그의 작품을 보는 데 중요한 이유는, 에라스무스의 주요 사진들이 독일 현대 정치사가 남긴 '역사적 파편들'을 피사체로 담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DDR, German Democratice Republic; GDR)의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에서 성장했고, 이 사회적-경험적 배경이 그로 하여금 과거 군사용 방어 시설이 빚어내는 오늘의 풍경에 주목하도록 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에라스무스의 사진은, 독일 나치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 북부부터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까지 이르는 해안에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한 벙커와 방어 시설 체제를 찍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일명 '벙커 사진'이 현장을 건조하고 중립적으로 기록한 '도큐먼트'일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가시적으로 그 사진들은 전후(戰後) 유럽의 해안가에 방치돼 있는 벙커들을, 마치 무대 위에 가설된 세트 풍경처럼, 매우 인위적이고 과장된 '미적 사물'로 변형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가 무너져 가는 군용 건축물의 폭력적 위용을, 무대의 조각용 돌덩어리(monolith)가 뿜어내는 스펙터클로 변형하는 데 동원한 핵심 장치는 '인공조명'이다. 피사체 외부에서 덧붙여진, 선정적일 정도로 핑크와 보라색 톤을 발하는 이 조명이 에라스무스의 사진 속에서, 바닷물에 반쯤 잠겨 있는 벙커를 석양 아래 드라마틱하게 침몰해가는 함선처럼 보이게 한다. 또 눈이 시릴 정도로 깊은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명이, 수풀들 속에서 흉물스러운 외벽을 드러내며 육중하게 버티고 있는 벙커를 고대 밀림의 아즈텍(Aztec) 신전처럼 보이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11_C 프린트, 디아섹_120×150cm_1990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19_C 프린트, 디아섹_120×150cm_1995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26_C 프린트, 디아섹_120×150cm_1992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43_C 프린트, 디아섹_120×150cm_1999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45_C 프린트, 디아섹_120×150cm_1999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53_C 프린트, 디아섹_120×150cm_1995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들의 충돌 내지는 두 요소들의 모순을 발견한다. 그것은 에라스무스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국가 체제 아래 성장하고 예술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는 달리 말해서, 그의 카메라가 대면하고 있는 대상, 즉 벙커 따위의 군용 시설과 주변 공간이 역사적 ? 사회적 ? 정치적 문맥을 함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라스무스는 그 문맥을 즉자적이고 비판적으로 작품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작가는 그 논쟁적인 피사체를 지극히 은유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일견 자기 사진에 대한 어떤 사회학적이고 정치학적인 담론으로부터도 한발 비켜서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 UNC 갤러리

Vol.20091005d | 에라스무스 쉬뢰터展 / Erasmus Schroter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