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910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태은_류호열_목진요_뮌_박준범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두산갤러리 서울 DOOSAN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연지동 270번지 두산아트센터 1층 Tel. +82.2.708.5050 www.doosangallery.com
ZKM,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를 통해 바라보는 한국의 미디어아트 - 0. ● 많은 사람들이 벌써 미디어아트는 한 물 갔다고, 결국 그들만의 리그는 본 리그에 입성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흔히 말하듯이 9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가 미디어아트의 전성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당시 소위 말하는 '새로운(new)' 미디어를 사용하는 작품들이 봇물처럼 밀려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당시에는 이 새롭게 대두하는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신이 나서 다양한 실험을 하는 작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다수의 작가들이 미디어아트의 역할과 사회에서의 기능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는 것이다. 2009년 오스트리아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새로운 센터를 개관하였고, 페스티벌 30주년을 맞았으며, 독일의 ZKM은 20주년을 맞았다. 미디어아트라는 같은 길을 걸었으나, 지금 그들이 걸어가는 길은 상당히 다르다. 한국 미디어아트를 이야기하기를 ZKM과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시작하려는 것은 단순히 세계적인 센터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걸어왔던 길과 그들의 태도가 우리의 미디어아트가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좋은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1. 칼스루에-ZKM ● 슈트트가르트에서 열차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도시 칼스루에는 ZKM이라는 미디어아트 센터를 통해서 세상의 주목을 받았었다. 과거 무기공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미디어 센터로 바뀌고, 많은 미디어아티스트들과 컴퓨터 공학자, 과학자들이 함께 어울려 연구하고 작품을 제작하는 세계 최고의 미디어아트 센터였다. 그러나 세계최고의 미디어아트 센터로서의 명색이 무색하게 최근 ZKM은 계속해서 작품이나 담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그다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간혹 대규모 전시들이 열리기도 하고, 로보랩 등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한다고는 하지만 이전의 활발했던 활동에 비해 그럭저럭 현상유지만도 버거워 하는 거대한 화석화된 공룡과 같다.
2. 린츠-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페스티벌 ● 칼스루에에서 열차로 약 5시간 가면 도나우 강변에 있는 작은 도시 린츠에 도착한다. 린츠는 한때 철강공업단지로 파란하늘을 보기조차 어려웠던 곳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의 린츠는 매일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그리고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로 유명하다. 1999년 시작하여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은 미디어아트 관계자들에게는 최고(最古)의 축제가 되었다. 비록 최근 들어 컨퍼런스나 워크숍이 밀도 있는 내용보다 대중성과 상업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전세계 미디어아트 관계자들에게는 여전히 의미 있는 곳이다. 밤낮으로 미디어아트의 현안과 문제, 미래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미디어아트의 최근 동향을 어렵지 않고 가깝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이 갖고 있는 큰 힘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는 미디어아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경험임에 틀림없다. 30년이라는 짧지않은 시간을 한결같이 지켜오며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을 이렇게 살아있게 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미디어아트의 가능성과 역할을 믿고 꾸준히 한결 같은 길을 갔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3. 한국 혹은 서울의 미디어아트 ● ZKM의 적막함과 생기에 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은 한국 미디어아트의 방향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우리의 현 상황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초이다. 분명 한국의 미디어아트는 ZKM처럼 첨단테크놀로지를 실험하거다 거대한 프로젝트를 하는 유형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르스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을 닮아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도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미디어시티 서울)'이라는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미디어 아트의 현안과 이슈,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행사라기보다는 정체된 현대미술축제에 더 가깝다. 게다가 미디어아트를 하는 친구들을 엮고 만나게 하는 커뮤니티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 주는 센터도 없다. 세계적인 IT 강국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임에도 미디어아트에 관한 인식과 인프라는 세계적이지 못하다. 때문에, 세계적인 수준의 작업이 나오지 않는다고 투정부리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매체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한국의 미디어아트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몇 가지 특징을 들어 한국 미디어아트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 정도는 해 볼 수는 있겠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의 미디어아티스트들은 외국의 경우와 달리 미술대학 출신, 특히 조소과 출신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디어 작업은 싱글 채널을 포함한 비디오아트나 비슷비슷한 소프트웨어와 센서를 사용하는 키네틱 아트 같은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지금 세계 미디어아트계에서 한참 논의되고 있는 류의 미디어아트보다는 현대미술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유형의 미디어 아트 작업이 많다. ● 다음으로 한국 미디어아트 작품 중에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작업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스나 오픈 소스에 관한 작업들도 마찬가지다. 인권문제나 환경문제등에 대한 논의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방송 미디어가 아니라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는 미디어 액티비즘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이러한 현상은 아무래도 프로그래밍이나 디지털 문화를 배경으로 나온 작가들보다는 시각예술을 전공했던 작가들이 많기에 이슈 기반의 내용적인 부분보다 시각적인 면을 더 많이 고려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4. 예술과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media)'로서의 미디어아트 그리고 미디어아티스트 ● 미디어아트를 사회적인 툴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아트가 태생적으로 새로운 미디어나 테크놀로지를 신봉하고 찬양하고 나섰던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극한까지 실험하고 사회적인 여파와 파장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왔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지나치게 내면화되고 자기표현의 툴로 정체되어 있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한국의 미디어 아트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여기에서의 다양성은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내용에 있어서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 The Medium』전시는 의미 있는 접근이다. 김태은, 류호열, 박준범, 목진요, 뮌 다섯 작가는 언뜻 인터랙티브 미디어, 비디오, 영상 설치 등 각기 다른 '매체 형식'으로 대변되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의 다양성을 보여준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듯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어떤 사회적인 이슈를 대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누구에게나 친숙한 뮤직박스라는 소재를 인터랙티브 작업으로 소화한 목진요의 「Music Box」는 미디어아트에 대한 일반적인 거부감에서 벗어나 보다 친숙하고 편안하게 관객에게 다가가는가 하면, 박준범의 「600cc」나 「An Impact Absorption Device」는 작가의 다소 엉뚱한 상상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으로 빽빽하고 틀에 박힌 일상에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맛이 있다. 류호열의 「Juke Box」는 작가가 제작한 뮤직박스 형식의 오브제 안에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한 비디오 작업을 상영한다. 실사와 컴퓨터애니매이션,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아우를 그의 단순한 영상 이미지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 전시에 소개된 모든 작가들의 개별적인 작품에 대해서 일일이 다 열거하며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스스로를 특정 매체에 국한 시키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눈에 띠게 행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미디어'를 다루는 작가의 입장에서 특정 매체에 국한되지 않고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는 미디어 작가로서, 그들이 바로 예술과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라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작가들임에는 분명하다. 이러한 작가들이 많아 질 때, 그런 작가들이 함께 커뮤니티를 이루어갈 때,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믿어지고 지켜줄 때, 우리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 신보슬
Vol.20090925e | THE MEDIUM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