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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상영_2009_0911_금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_2009_0911_금요일_06:45pm_B4F 시네마 『미디어 작가들을 위한 디지털 영상기술의 기초』_2009_0915_화요일_06:00pm_2층 갤러리
참여작가_송차영_안정주_이예린_전수현_조충연
주최_KT&G상상마당 주관_갤러리상상마당
관람료_4,000원
시네마 상상마당_B4F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7-5 KT&G 상상마당 2F 갤러리 Tel. +82.2.330.6223 gallery.sangsangmadang.com
전시 배경 ● 스크린을 걷다. 꿀꿀한 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 서울의 사계가 펼쳐진다. 테마파크와 갤러리로 변한 도시는 기획된 사건과 쇼의 과잉을 무제한 제공한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바쁘게 이동하는 시민들 머리위로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고 고층빌딩위로 A4용지들이 날린다. 지하생활자는 TV모니터처럼 생긴 작은 창문으로 계절이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을 응시한다. 사람들은 고층아파트 거실에서 숨을 힘겹게 내쉰다. ● 『길(La Strada), 1954』이란 영화가 있다. 애잔한 음악과 함께 젤소미나와 잠파노가 펼치는 현실을 양 어깨에 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애환이 있었다. 그 이면에는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 벌어지는 파국이 자리했다. 가슴 짠한 감동을 선사한 수많은 영화들을 뒤로 하고 극장 밖 거리로 나오면 보편적인 감정을 상품으로 찍어내는 자본의 욕망이 우리를 반긴다. ● 80년대 초 영화 『비디오드롬(Videodrome), 1983』에서 주인공은 비디오와 신드롬이란 모티브를 통해 새로운 미디어를 둘러싼 의혹과 공포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비디오라는 미디어를 통해 현실과 환각 사이를 교차하며 운동하는 욕망이 나의 것인지 아니면 나 아닌 타자의 것인지 모호해진다. 미디어를 통해 영상시대를 사는 사람의 문제가 은유된다. 이러한 시각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다 명확하게 나타난다. 신화적이며 스팩터클한 『매트릭스』는 『비디오드롬』의 다른 버전이다. ● 다양한 갈래와 결을 따라서 영상이미지와 접촉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또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던 간에 무언가가 나의 의식을 결정하고 영향을 준다. 심미적이며 정서적인 삶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그러한 힘의 작용에 저항하는 운동이 발생하는데, 우리는 예술가들에게서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 ● 예술의 안과 밖에서 미디어를 둘러싸고 낯익은 상황이 벌어진다. 미디어는 어느 방향으로나 열려있다고들 말한다. 상호작용성이 그와 같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시선 또는 응시로 이야기되는 주체, 힘의 문제가 연루된다. 비약하자면 싱글채널 비디오는 관객의 시선을 향에 열려 있지만 동시에 관객은 바로 그 싱글채널을 향해 노출되어 있기에 상호작용의 역학은 불균형하며 비가역적이다.
미디어아트 이론가인 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가 제기한 '전체주의적 상호작용성(Totalitarian Interactivity)'에서도 우린 어떤 영감을 받는다. "서구 예술가는 인터넷이 모든 위계질서를 붕괴시키고 예술을 민중에게 돌려주는 완벽한 도구로 보고 있다. 반면, 과거 공산 국가의 국민이었던 나는 인터넷을 스탈린 시대의 공동주택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곳에서 사생활이란 없다. 모든 사람이 서로를 감시했으며 보이는 것은 화장실, 부엌 등 공공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었다." ●'전체주의적 상호작용성'이란 낯선 개념은 미디어아트 주위에 팽배해있는 '상호작용성'이 주는 긍정적 비전을 파열하는 뉘앙스가 있다. '전체주의'와 '상호작용성'의 서로 충돌하는 용어의 조합으로 새로운 인식의 지점을 만든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호작용성'이 수용되고 작동하는 정치경제학적, 문화적, 예술적 맥락을 재고하도록 종용한다. 이 우울 또는 이해는 다소 과장되거나 특정한 시간과 장소의 경험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의 글은 인터넷과 전자정보사회에 대해 다루었지만 보다 폭넓게 미디어문화 또는 뉴미디어문화 전체에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싱글채널 비디오아트라는 이 애매모호한 용어와 여전히 그를 향해 질주하는 힘들이 또는 그로부터 나오는 힘들이 무엇인지, 어쩌면 구소련을 거쳐 미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마노비치와 같은 경계의 삶을 살지 않는 한 불가능한 지점일지 모른다. 또는 식민지 국민에서 서구의 아방가르드의 삶을, 그리고 성공적인 코스모폴리탄이자 예술가의 삶을 산 백남준처럼 아주 특수한 소수에게만 허락된 경험일지 모른다. 어쩌면 가장 오래된 미디어 가운데 하나인 싱글채널 비디오영상을 통해 진화하는 첨단 뉴미디어들의 세계의 삶과 인상을 또는 어떤 시적 예감을 만나는 것 또한 그러한 경험일지 모른다. ●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세상을 보다 더 좁게 만들고 사람과 문화와 장소 간의 안전거리를 상쇄해간다. 그 결과 예술가들은 또 그들의 직관과 영감은 점차 협소해지고 상투화된다. 예술가들에게는 단지 일상과 권태의 영겁회귀만이 가능해진다. 그러기에 현대미술분야의 싱글채널 비디오를 둘러싼 숱한 이론들과 미학들은 신화이거나 다소 억지스럽거나 오류로 점철된 우화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장르나 형식 또는 사조의 예술사 또한 예외는 아니다. 『비디오드롬』의 그 불안한 징후는 마노비치의 '상호작용성의 징후'이기도 하다. 그것은 매번 반복되는 대중들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열광과 외면, 예술가들의 예술 또는 대중을 향한 열광 또는 외면에서 유사한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비약해서 미적 정치학의 견지에서 미디어문화의 파시즘, 예술적 파시즘 등으로 전화(轉化)될 수 있다. ● 그러나 그것이 어떻다는 건가? 어쩌면 상투적으로 반복되어 온 감정의 키치와 신파가 우리의 인생살이 아닌가? 그리고 미디어들 간의 흥망성쇠를 둘러싼 일상의 삶과 시간 속에서 주조하고 형성해온 의식, 기억, 이미지들이 얼마든지 서로 상반된 인식과 이념을 낳을 수 있다.
단채널 도시(Single Channel City) ● 영상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예술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변화된 것 중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특히 60년대 이후 확산된 실험적인 퍼포먼스와 싱글채널 영상들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장소 특정성의 문제 또는 의식의 장소이며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신체의 문제 등등. 그 가운데 점차 시간보다 공간의 문제가 전면에 제시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전지구적인 삶의 형식은 도시화와 도시들 간의 네트워크의 확산으로 구조된다는 것과, 이러한 삶의 조건하에서 생을 구성하는 도시인이 곧 현대인이란 인식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장소의 문제는 점점 확대되어가는 현대 문화로서 현대미술의 전지구화라는 현상을 지역성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심 이슈로 대두되게 된다. ● 전시제목으로 채택한 '단채널 도시(Single Channel City)'는 영상미술에서 특권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장소와 공간의 문제를 고려한 수사(修辭)이다.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어 더 이상 현대인에게 미지(未知)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와 삶을 도시거주자의 시각에서 영사(映寫)한다. ● 미시적으로 분화되어가는 일상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영웅적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엄밀하게 구조화된 일상의 틀과 궤도에 적응한다는 것은 주위의 누군가에게는 혜택 받은 운명이라거나 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도시의 삶을 내면화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 부산물처럼 튀어나오는 것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구성한 것들을 싱글채널 비디오를 매개로 오직 하나의 '응시'와 오직 하나의 생의 장소로서의 '도시'와 연결해 본다. 실존의 조건이 빠져버린 형식은 공허하다. 익숙한 이슈인 이상적 소통은 철두철미 일방적이며 단절된 의식과 사건들 사물들이 뚜렷이 나타난 이후의 사건이다. 싱글채널 비디오아트로 구성한 이번 '단채널 도시'는 그런 인식과 미적 응전의 은유이다. 싱글채널 비디오는 커뮤니케이션아트의 독특한 장소성을 보여준다.
비지올로기(Visiology) 2009 ● 기술과 예술의 문제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혼선과 난해함과 복잡한 양상을 생각해보면, 용어와 관념이 혼용되는 가운데 싱글채널 비디오를 통해 넓게는 현대미술과 좁게는 미디어아트의 현황을 일별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합의에 도달하지 않았거나 특정 경험에 의한 몇 가지 개념이나 시각으로 환원하는 오류와 독단에 기댈 수 는 없는 것이다. 다만 누차 확인되어온 것은 싱글채널 비디오라는 미디어아트의 가장 단순한 전시 형식을 통해 그 문제가 보다 단순하며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기대가 여전히 있다는 것, 그리고 작가의 주제와 의식을 보다 간명하게 표현하는 싱글채널 비디오를 욕망한다는 것이다. ● 상상마당 기획팀은 싱글채널 비디오 작가와 작품을 1회성 프로그램이 아닌 다년간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하면서 현대미술의 한 흐름을 이해하는데 일정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현대예술의 전개과정에 나타나는 시각이미지와 의미의 문제, 표현과 형식의 문제, 이해와 소통의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난맥을 이룬다. ● 영상전시는 무한한 지점으로 개방된 문을 갖고 있다. 수많은 예술적 표현 가운데 가장 사색적이며 성찰적 표현으로 인정받아온 지난 시기 영상작업의 맥락을 고려하면서 작가를 초대하였다. 초대 작가는 각자 나름의 길을 모색하면서 싱글채널 비디오의 형식을 통해 자신들의 예술적 이념과 예술을 통한 삶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비지올로기2009는 이러한 인식에서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에 천착하는 영상미술가들에게 작품 상영의 기회를 확대하고 보다 다양한 기술적 워크숍을 통해 작업 역량을 확인하는 과정을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여전히 관습적 또는 일반적 맥락에서 수용되고 이해되어온 싱글채널 비디오의 기술적 또는 예술적 전략과 활용을 생각해보는데 있다. 나아가 미디어아트의 다양한 수용과 변주를 보며 향후 예술의 수용과 대중적 확산의 문제와 연계하여 싱글채널 비디오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험하는 젊은 작가들의 현황을 일별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초대된 영상작품들을 통해 현재의 싱글채널 비디오아트의 현황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나아가 예술사의 오래된 문제인 기술과 예술의 관계,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를 생각한다. 그리고 영상이미지가 인생과 삶의 과정에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는지 생각한다. 스크린 위의, 또는 우리의 의식을 느리게 흐르는 이미지는 기억과 성찰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 그러나 무엇보다 예술적 직관과 감성을 시간과 의식의 흐름 속에 얹히는 작업이 영상작업의 공통된 지점이다. 영상작가들에게 싱글채널 비디오는 날카로운 단검과 같다. 도시의 일상을 칼끝으로 일격에 찌를 수 있다. 또는 첨단미디어의 쓰나미를 견디는 미적(美的) 피신처일지도 모른다. ■ 김노암
■ 상영일정(영화관 상영시간 40분) 2009_0911_금요일_06:00pm(작가와의 대화_06:45pm~7:45pm) 2009_0912_토요일_05:00pm 2009_0913_일요일_07:00pm 2009_0914_월요일_05:00pm 2009_0915_화요일_05:00pm 2009_0916_수요일_05:00pm 2009_0917_목요일_05:00pm
* 티켓구매_현장판매(상상마당 1F 티켓박스) / 온라인 예매(상상마당 홈페이지, 맥스무비, 인터파크) * 할인적용: 멤버십(1,000포인트 차감 / 신규가입 시, 1,000포인트 무료 지급), 실버(20%), 장애인(20%) * 상영시간은 주최측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의 공지를 참고바랍니다.
■ 『미디어 작가들을 위한 디지털 영상기술의 기초』_2009_0915_화요일_06:00pm_2층 갤러리 기술 워크숍Technical Workshopㅣ 김형희(상상마당CineLab 테크니션) *워크숍은 무료로 진행되며, 사전예약이 필요합니다. 일정은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예약문의: [email protected])
비지올로기는 고유의 시각과 영상미를 구축해 나가는 국내 싱글채널 작가들의 다양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연례 프로그램입니다. 올해는 도시를 주제로 공간과 장소의 문제와 도시거주자의 시선을 담은 작품들을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상영합니다.
Vol.20090917d | 비지올로기 2009: 단채널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