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P AWAY

김송이展 / KIMSONGYI / 金송이 / painting.video   2009_0910 ▶ 2009_0930 / 월요일 휴관

김송이_A SERIES FROM "THE SELF-PORTRAIT: TEA #PA_ 캔손지에 차, 커피, 잉크, 수채물감_각 20×20cm_2009

초대일시_2009_0910_목요일_06:00pm

2009년 갤러리 정미소 기획초대展

입주기간_2009_0710~2009_1001

후원_운생동건축사무소_월간객석_한국문화예술위원회_www.a-act.net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_(사)스페이스코디네이터

관람시간 / 01:00pm~08: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정미소 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www.space-act.net

갤러리 정미소의 기획은 김송이의 작업세계가 보다 확장되고, 규모를 갖게 되는 시점에서 기획된 전시이다. 주제면에서는 초기 정체성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작업하던 연작들이 작품이 연작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로 진행되기도 하면서 보다 확장된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특히 작가 입장에서 보자면 주제면에서 심화되고, 한국내의 담화현상과 전시문화와의 접목을 꾀하는 시점에서 기획되었다. 김송이는 한국에서는 공예를 전공하였지만 미국에서는 조각과 현대미술을 다시 전공하고, 주로 다양한 레지던시을 통해서 미국에서의 현대미술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해왔다. 그래서 올해 여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드로잉 위주로 개인전을 하였고, 바로 이어서 정미소에서 보다 본격적인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이 전시는 갤러리 정미소와 김송이 작가간 소통이 지속되어오면서 비교적 오래전에 기획되었으나, 개인전 자체에 매우 비중을 두고 작가가 2-3년간에 걸쳐 준비해온 전시라고 볼 수 있다. ● 전시 방법면에서 작가는 보다 해당 공간과 밀접하게 소통해가면서, 관람성을 새롭게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시점에 있다. 이에 갤러리 정미소는 작가에게 단기 입주 기간을 제공하였고, 이에 곧바로 이어 개인 전시를 통해서 한국에서 단기 입주하면서 재료차원, 작업 규모 차원, 공간 소통 차원, 관객성 개발과 비평적 성과 등을 달성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그간 한국에서 김송이의 작업을 소개하지 못했기에, 작가와 작품 소개의 의미도 중요한 부분이다. 갤러리 정미소의 젊은 작가 기획과 지원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기획은 무엇보다 젊은 작가로 하여금 작업 규모와 작품의 공간 소통방식 개발,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도큐멘트와 자료집 제작, 국내 비평 반응을 통해서 작업 세계를 심화 시키도록 하는 등의 작가 지원의 목적도 크다. ● 이에 갤러리 정미소는 7월10일부터 9월 10일(전시 오픈)까지 두 달여간 갤러리 내에 작가가 입주하여 작업할 수 있게 하여, 공간에서 매체 활용도를 높이고, 작품의 공간 설치- 공간 소통력과 더불어 관객 소통 루트 개발- 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작가는 이 기간 동안 작품 재료들을 보다 다양하게 실험해 볼 수 있고, 작품의 규모를 다양하게 제작, 실험하였다. 그 결과를 9월 10일부터 시작되는 개인전에서 관객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이번 입주와 전시는 무엇보다 작품의 전시로써의 소통 방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며, 동시에 작업 주제를 확장, 심화시키고, 비평적 성과를 거두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송이_The Self-Portrait:Pencil_애니메이션_00:03:40_2002~2004

작업소개 1: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작업 (2002-2007) ● 작업 초기 김송이는 일련의 자화상 작업을 하였다. 초기 2002년에 시작한「The Self-Portrait: Pencil」연작은 비디오 애니메이션 작업인데, 종이 한 장에 드로잉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 이미지인) 자화상 이미지를 그리고, 지우는 반복 자체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드로잉-애니메이션 작업은 자화상 뿐 만아니라 가족 이미지를 활용한 2007년부터 지속되어오고 있는 작업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김송이_Family photo 3_애니메이션_00:03:10_2007~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 우선 개념적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거울매체를 사용하였고, 기록 성격을 도입하여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이 작업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보이는 것에 대한 배반'을 구현하는 듯하다. 이 작업에서의 이미지는 보이는 차원 이상의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차원으로 도약한다. 즉 평범하게 거울에 비친 듯한 이미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점차로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이미지_대상은 거울에 비친 상으로써가 아니라, 거울이라는 시선-응시에 (잔혹하게도) 노출된 피학_대상처럼 변하게 되는 듯이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 이상을 넘어선, 즉 '스크린' 자체를 넘어선 응시 차원이 노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이 이미지의 표현성이 한층 효과를 내면서, 스크린-화면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효과가 강조되는 경향은 이후 흉상의 단독 자화상 시리즈에서 보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으로 진행된다. 애니메이션 연속 필름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동작들인데, 이것이 2차원의 평면 종이 위에 중첩시켜 놓으니, 결국 관객은 그 행위와 감정의 잔해들만이 흉측하게 남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이미지의 사실적인 차원을 넘어선 실재적인 차원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김송이_The Self-Portrait: tea127_종이에 잉크, 차_28×21cm_2009 김송이_Untitled 018_종이에 잉크, 흑연, 커피_76.2×91cm_2008

작업소개 2 : 최근 드로잉 작업 변천과 작업 방식(2008-현재) ● 최근 몇 년 동안 김송이는 비슷한 주제 하에서, 일련의 드로잉 작업을 지속 중이다. 2006년경부터 진행되는 드로잉작업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잉크로 그린 선묘가 특징적이었지만, 점차로 여기에 물이나 먹물을 이용해 이미 드로잉 된 선들을 파괴하는 표현효과가 증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감을 볼 수 있다. 잠시 드로잉 기법들의 변천을 자세하게 기술하면, 2002년 초기에 김송이는 잉크를 위주로 작업하였다. 그래서 섬세한 선묘가 매우 특징적이었고, 가는 선묘들이 만들어내는 장식 효과도 있었다. 그런데 김송이는 점차 수채화 종이 위에 수용성흑연, 수성크레용 등 (뿐만 아니라 커피물이나 차(tea)와 찻잎 등 일상적인 재료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용성 매체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부터 작가는 수용성 매체들이 종이 위에서 흐르고 번지면서 만들어내는 효과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우연한 효과_이미지를 보게 된다. 일례로, 2006년 시도한 방법적인 것 중, 차(tea)와 찻잎을 이용한 기법은 일상생활에서 오는 모티프를 사용하여 화면에서의 컬러와 질감의 시각적 효과를 강조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에 찻물과 찻잎을 뿌리고 압축시켜 말린 뒤 나오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통해, 의도성 및 의외성과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표출시키는 것이다. 일련의 드로잉 작업들은 애초 드로잉 된 이미지 위에 물을 이용해 지워내고, 흘리고, 번지게 하며, 또한 이들이 마르면 그 위에 다른 선을 중첩하여 반복적으로 그려가는 과정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이러한 물리적 변화 속에서, 의도한 것과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혼합되면서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하게 된다. 이는 가장 최근의 필라델피아 개인전에서도 일견 엿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표현적 특징을 강조하게 되고, 여성 초상들과 주변 사물들, 환경들이 추가되면서 내러티브가 확장되고 또한 이미지의 표현성과 물질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진행됨을 볼 수 있다. ● 몇몇 드로잉 작업에서 김송이는 가족 사진첩을 활용한다. 이는 일종의 현재 드로잉이라는 행위로써 과거의 사진 속 기억을 재기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작가는 그러한 '기억을 재기록' 하는 기저에는 '무상함'이 짙게 깔려있다고 한다. 갓난아이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들, 자신을 안아든 어머님,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들이 평화로운 과거 추억의 증명으로 보이지만, 작가는 반대로 기억조차 없는 정형화된 기록의 사진이 주는 아이러니가 노출되기도 하고, 심지어 공포가 노출되기도 한다. 작가 자신은 "이상적으로 그려진 이야기처럼 불확실하고 모호하여 덧없는 것은 없으며, 과거로 갈수록 미화되고 현실과 떨어질수록 희석된다."고 기술한다.

김송이_MOM 1_파브리아노지에 수용성 크레용_152×101cm_2009 김송이_IDOL_파브리아노지에 수용성 크레용_203×140cm_2009

작업소개 3 : 최근 작업과 전시 장면 _ 2009, 갤러리 정미소 ● 최근 작가는 자신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을 그린다. 자화상 연작은 주로, 사라지는듯 혹은 드러나는 듯한 희미한 이미지들이다. 그 모든 연작들이 전체의 자화상을 파편적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몇몇 드로잉은 가족이기도 하고, 주변의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들 여러 인물 드로잉은 이제는 자기 자신인지 타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인물들 이미지는 기본적으로는 그 인물 개성에 집중한 초상화라기보다는, 그리는 작가 자신의 심상에 집중된 타자를 빌어서 그리는 자화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주된 작업 주제는 인물 초상이라기보다는, 인물 초상의 형태를 빌어서 '시간'과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작가의 기술대로, 김송이는 "'순간'ephemeral과 '지속'endurance의 역설적 관계"를 보다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다뤄지는 이미지인 '나'의 이미지, 여러 인물들의 이미지, 기억의 모티브들 등 현실에의 '나'를 둘러싼 여러 소재들이, 존재차원인 '나', 즉 '주체'의 문제로 개념화된다. 그래서 김송이의 작업에 나타나는 타인에 대한 기억, 그 순간에 대한 기억, 과거와 현실 사이의 간극에 있는 혼란, 기록과 사실과 허구, 상상(망상)과 그 사이 개입된 감정 등 이 모든 것들이 드로잉을 중심으로한 일련의 작업과정, 즉 반복된 작업과정 속에서 사라지고, 남겨지는 이미지들의 분절되지만 지속적인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일련의 이미지들은 주체-타자의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파편적인 자기 자신을 비롯한 그/녀를 구성하는 집단 초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갤러리 정미소

김송이展_갤러리 정미소 단기 레지던시_2009

나의 최근 드로잉 시리즈들에서는 자화상의 형식을 취하여 시간의 흐름과 축적 그리고 그에 따른 기억의 모호함을 다룬다. 심리적 동요와 신경증적 불안의 상태를 암시하는 이미지들은 사적이고 일상적 영역 안에서 발견되며 수집된다. 수용성 흑연, 잉크 등으로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을 수없이 반복해 그린다. 겹쳐지고 지워지고 번지고 뭉개진 이미지는 순간의 무상함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순간에 대한 집요한 기록이다. 나의 그리기는 '순간'ephemeral과 '지속'endurance의 역설적 관계이다. 또한 사진첩 속의 인물과 사물들을 기록하면서 시간의 경과에서 비롯된 기억의 왜곡과 그 모호함을 탐험한다. 사진은 기억나지 않는 장면과 사물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는 것 같지 않는 행복과 이상의의 순간을 증빙하는 (것만 같은) 가족/기념사진은 '블레이드러너'에서와 같이 존재의 진정성에 혼란과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나 자신을 그리는 두려움, 혹은/그리고 그려지지(파악되지) 않는 자아 혹은 그가 속한 세계에 대한 좌절감이 내 작품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이다. ■ 김송이

김송이展_갤러리 정미소 단기 레지던시_2009

잔재_왜상들, 그것의 낯설고 섬뜩한 아우성 - 1. 반복에서 출현하는 왜상2 ● 김송이의 최근 몇 년간의 작업을 일견해보면, 미국 거주를 시작한 초기에는 자화상과 가족 초상 연작을 통해서 정체성문제를 다뤘음을 볼 수 있다. 2002년에 시작한 「The Self-Portrait: Pencil」과 2007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Family Photo」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나 사진첩의 이미지를 연필이나 잉크로 그리고, 그것을 지우는 과정 자체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이미지들은 거울이나 카메라 등의 기록매체를 활용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보이다가 점차로 색이 번지고, 이미지가 뭉개지면서 전체적으로 애초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보니 결국 한 개인의 정체성이란 것은 규정되지 못한 채, 실패의 과정에서만 드러나는 왜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후 이어지는 일련의 자화상 드로잉 연작들은 시간과 기억의 문제를 보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듯하다. 특히 주목해 볼 부분은, 여러 자화상 연작들이 반복되면서 거듭 새로운 자화상으로 다시 탄생하고, 또한 인물 초상 연작들로 이어지면서 급기야는 '나'를 포함한 여러 초상들을 해체하고, 재구축 하는 과정 자체이다. 애니메이션에 나타난 이미지의 왜상으로서의 특징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드로잉 작업 중에서, 「Untitled」 초상화 시리즈들은 김송이 자신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때로 얼굴만 집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진첩이나 기억속의 한 사건을 암시하는 듯한 배경에서 한 여자가 모호한 행위를 하고 있기도 하다. 드로잉들에서 주인공 인물은 과거의 장면이건, 현재의 자신이건 상관없이 주로 현재의 한 여성이 주축이다. 그러다보니 시간대를 초월해서 '나'라는 존재가 구성되고 해체되는 과정 자체가 드러나게 된다. 성장, 이주 등을 통해 불연속적으로 지속되어온 삶들이 망각, 회고, 불완전한 기억 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현재의 불완전한 의미에서 해체되거나 재구축되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지속하고 있는 김송이의 드로잉 작업 방식은, 지우고 그 위에 다시 흔적을 남기는 중첩과 이것의 반복이 특징적이다. 김송이는 "쉽게 지울 수 있으며, 동시에 지워지지만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수용성 매체를 사용하며, 여기에 흘러내리기, 번지기 기법을 사용한다. 김송이의 이러한 반복적 작업 방식으로부터 생겨난 이미지는 불완전하게 지워진 잔재들에 동시에 새롭게 덧붙여진 흔적들이다. 미처 지워지지 않고 남은 잔재들에 중첩되어 (흘리기, 번지기 등으로 만든) 새로운 이미지들이 흔적으로 남으며, 예견하지 못한 새로운 이미지가 화면 위로 떠오른다. '반복'이 새로운 창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 정미소의 『Slip Away』(2009)전시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The Self-portrait: Tea # PA」시리즈와 「Mom」, 「Idol」, 「Toys」 시리즈는 최근 김송이의 드로잉 중에서 큰 두 축을 이루는 듯하다. 이 두 시리즈는 각각 자기 자신의 자화상 시리즈와 가족과 기억 속의 소재들로 그린 초상화 시리즈이다. 이 모든 연작들은 (불특정한 인간의) 집단초상 혹은 자화상 전체를 파편적으로 구성한다. 자기 자신, 가족, 주변 인물, 관계들, 그리고 사회적 형상들 등이 모두 불특정한 (집단) 초상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자화상과 초상화 시리즈가 예전에 비해서 표현적이고 추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며, 자신을 포함해서 불특정한 인물들로 확장되는 이유는, 아마도 김송이의 주된 작업 주제가 인물 초상이라기보다는, 인물 초상의 형태를 빌어서 '시간'과 '기억', 그리고 그것의 '지속'의 문제, 특히 불연속적이고 반복적인 지속이라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기술대로, 그리기는 "'순간'ephemeral과 '지속'endurance의 역설적 관계"라는 것은 바로 이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김송이의 작업 이미지들로부터 우리는 단순히 특정한 인물 초상차원을 넘어서서 존재론적인 의미에서의 주체 자체를 이야기하게 된다. ● 2. 시, 공간을 초월한 왜상_사진첩 ● 김송이 작업 특징인, 반복으로부터 우리는 그 반복의 효과로서의 이미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가장 최근 작업군 중에서 「The Self-Portrait: Tea #PA」 드로잉 시리즈는 갤러리 벽면에 집단적으로 자화상시리즈를 설치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오래된, 시간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화석과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그것이 집단적으로 설치되어있으니 일종의 사진첩에서 한 장 한 장을 평면에 펼쳐놓은 것 같기도 하다. 김송이가 작업 초기 가족 앨범과 기억을 소재로 하였고, 그녀가 주로 시간과 지속의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작업군은 현재에 그려졌으며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과거 혹은 역사적 잔재들로서 일련의 새로운 차원의 사진첩의 이미지들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의 자화상 이미지들은 마치 그것이 기억 혹은 무의식의 저편에서 불현듯 솟아오르는 듯, 동시에 가물가물 잊혀지는 듯 보인다. 불완전하고, 희미한 이들 이미지들은 잊혀진 기억과 지속되어온 시간과 그것들의 불완전한 축적의 잔재들이다. 또 다른 작업 군인, 초상화 시리즈 중에서 「Mom」, 「Idol」, 「Toys」 등은 주로 자신과 관계된 타인들의 형상이다. 이 형상들은 그것이 매우 활동적, 유동적으로 보이며 수용성 크레용의 거친 선묘와 번짐의 평면적 효과가 만들어내는 표현 효과가 특징적이다. 마치 동양적 의미에서 사물을 구성하는 기氣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은 주체를 둘러싼 관계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김송이가 앞으로 장차 어떤 확장된 의미에서의 존재들을 그려나갈 것을 예견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앞선 자화상 시리즈들이 시간을 초월한 주체의 형상이 되어가고 있다면, 이 작품y들(가족과 주변관계망의 초상들)은 주체의 형상의 변화를 부추기고, 그 변화에 상호 영향 관계에 있는 사회적 관계망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 모든 작품들은 시, 공간을 초월해서 제작되고 있는 일련의 새로운 사진첩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송이의 이들 형상들이 만들어내는 전시장은, 비록 그것이 자화상이건 다른 사람을 소재로 한 초상화들로 구성된 것이건, 일련의 주체/타자의 형상들이 지독한, 어쩌면 숙명처럼 보이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역학의 현장처럼 보인다. 주체로 하여금 트라우마적 고통을 맞보게 하고, 성찰하게 하고, 동시에 항상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이 낯선 타자(성)들이 주체와 한데 얽힌 역학의 현장 말이다. 타자, 그것은 기억이나 무의식속에서도 존재하며, 동시에 사회관계망 속에서도 존재한다. 주체-타자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욕망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 욕망의 대상인 타자는 절대로 주체에 들러붙어 괴롭히고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주체에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나는 전시장의 이 온전치 못한 왜상으로서의 이미지들을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대상-원인 a 의 운동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불러본다. 왜냐면 일련의 김송이의 자화상과 초상화 이미지들로부터 우리는 주체-타자의 욕망의 역학 속에 존재하는, 고유한 주체의 정서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공포나 두려움, 히스테리적 반응, 성찰 심지어 명상 등의 느낌을 반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또한, 여러 신체들만이 주축이 된 전시장을 보면, 이 몸 형상들이 마치 육화된 물질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미지들은 반복적으로 남겨진 가학-피학의 흔적이자, 그것을 감내하고 견디고 표출하면서 형성한 트라우마-히스테리적 주체의 형상에 빗대어 볼 수 있다. 게다가 인물 초상화 시리즈들에서 표출되는 어떤 검은 색의 에너지의 표현은 그 타자들의 몸 자체가, 주체의 몸 자체와의 연결을 표현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들 이미지들이 한 여성의 몸 형상에 잔인할 정도로 가해지는 반복적 터치(혹은 상처)의 흔적으로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들은 지극히 현대 주체의 불완전한 측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다. 지극히 현재적이면서도 또한 시간성이나 지역성, 공간성을 초월하고 있는 일련의 김송이의 자화상, 초상화 시리즈는, 그렇기 때문에, 주체-타자의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게 하며, 변하게 하는 욕망의 변주, 운동을 드러내는 차원으로 도약한다. 3. 트라우마적 반복과 욕망의 운동 이미지 ● 주체란 자신의 의지와 통제에서 벗어난 일종의 '무의지적 기억'의 형태로 소환되는 타자와도 같다. 마치 절대로 기억해낼 수 없는 우리들의 꿈의 화자이자 등장인물처럼, 그/녀는 항상 불확실한 형상으로만 등장한다. 그것이 주체이자 동시에 낯선 타자로 분열된 그/녀의 형상이다. 이 파편화된, 분열된 주체의 이미지는 불연속적인 기억과 역사 속에서 좌절한 자의 이미지이며 타자와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데 실패한 자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녀는 현재의 불완전한 기억과, 불완전한 이미지들 사이에서 부유하는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불확실하고 허구적이고 망상적인 존재이다. 분열된 주체 이미지는 어떤 대상, 즉 주체를 괴롭히는 타자의 형상과 중첩되고 겹쳐져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트라우마적 경험의 순간에 출현하는 주체-타자의 집단 형상이 되기도 한다. 이 형상, 즉 그/녀는 과거, 기억, 사건들로부터 창조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들로부터 절연된, 그리고 다시 과거, 기억 등을 트라우마적으로 새롭게 상기시키는 이미지 자체이다. 그 이미지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자신의 민족 혹은 역사로부터도 단절되고, 그 단절을 반복해오면서도 동시에 그 자신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이미지이며, 이들은 지금 단절과 회귀의 변증법적 운동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불완전한 역학 속에서 좌절과 상실과 배반과 분열과 망각의 고통이 커질수록 더욱 더 잔재들로서의 그/녀는 필사적으로 아우성치게 된다. 그리고 그 잔재들의 아우성자체는 강한 욕망의 (운동의) 흔적을 새롭게 요청하고, 그 흔적은 새로운 중첩을 만들어내면서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반복은 이제 주체-타자간에 끊을 수 없는 어떤 고리, 원환을 형성한다. 그것은 분노, 히스테리, 두려움, 아쉬움, 망각, 성찰, 그리고 새로운 기대와 이 모든 욕망의 운동과 그것의 역학이 그려내는 원한이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특정 존재의 형상이라고 지칭하기조차 어렵다. 잔재들로서의 그/녀는 이제 새로운 욕망을 자극할 충동의 소리만이 웅성거리는 '실재'의 필사적인 몸부림_흔적_운동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의 흔적들, 그것을 지우는 망각의 반복된 제스처들, 그리고 바로 그 반복으로부터 남겨진 잔재들과 그것의 흔적들, 그리고 이 모든 흔적들의 중첩, 지속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역사의 반복과 비견될 수 있다. 그 반복은 분명 트라우마적 반복이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트라우마란 항상 과거나 기억, 무의식으로부터 습격당하는 듯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현재의 어떤 자극에 의한 추동된 경험이기 때문에, 지극히 현재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것은 충분히 고통스럽기 때문에 항상 상실과 망각을 수반하며, 동시에 주체 차원에서의 섬뜩할 정도로 낯선 경험을 동반한다. 그리고 바로 그 고통과 섬뜩함 속에서 주체는 자기 자신과 그/녀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타자를 새롭게, 즉 타자의 새로운 욕망을 재발견한다. 트라우마적 반복은 고통 뿐 만 아니라 이러한 성찰과 재발견을 수반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물론 트라우마적 경험은 프로이트에 따르자면 방어와 억압을 수반하지만, 그것의 반복은 단지 억압을 지속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자극과 만날 가능성 혹은 자극과 새롭게 만날 가능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반복 속에서 새로운 증상들이 출현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욕망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모든 흔적들은 도래할 기억의 아카이브일지도 모른다. ● 나는 김송이의 갤러리 정미소에서의 『Slip Away』 전시를 또 다른 시작이자 출발로 보고자한다. 분열된 트라우마적 주체의 형상이 이제 단절과 지속의 변증법에 의해 불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추동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이주와 단절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상실과 망각 속에서 부유하는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김송이의 이미지들을 현대 주체의 왜상으로 비견해보았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현대 주체의 이주와 트라우마적 경험, 그리고 새로운 욕망에 대한 갈구의 흔적이 되는지, 그리고 주체-타자의 욕망의 역학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내고자 하는지를 더듬어 보았다. 우리는 바로 이 이미지들로부터 항상 새로운 충동의 제스처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욕망의 웅성거림을 듣게 될 것이다. 상실과 트라우마적 충돌과 그것의 반복으로서의 (개인사의) 흔적이자 (역사의) 반복으로서의 이미지는 또 다시 새로운 기억과 욕망의 흔적들이 누적될 장소로서의 새로운 사진첩이자, 이미지-스크린이기 때문이다. ■ 이병희

Vol.20090910b | 김송이展 / KIMSONGYI / 金송이 / painting.video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