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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종진_류신정_류호열_민정아_설총식_신성호_양태근_연기백_이동주 이상윤_이유미_임승오_장준혁_전신덕_정찬부_주송열_채지영_최 일_차재영&최현철
주최/주관_야생동물들_경기도 관광 공사 후원_후원_경기도문화재단_통일부_1사단
도라산평화공원_Peace Park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장단면 노상리 520번지 도라산평화공원 일대_도라산역 내외 Tel. +82.31.953.0409
분단과 환경의 아이러니 속에서 경의선이 멈추는 도라산역. 유령도시같이 한가한 역사(驛舍)와 텅 빈 주차장. 바리케이드로 차단된 인적 없는 도로. 이정표 위의 평양 가는 화살표가 초가을 햇살 아래 졸고 있다. 서울과 의주 사이의 끊어진 철길을 복원해 북한을 관통하고,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까지 가겠다던, 그래서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을 향하는 거점이 되게 하겠다던 김 전 대통령의 웅대한 꿈은 여기서 일단정지다. 모든 것이 조용하다. 평화공원 가는 길에 핀 인동초가 말없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지구상의 마지막 남은 비무장지대이며, 생태계의 보고(寶庫). 생사가 교차하는 전투지역의 선단(先端)이며, 파괴와 살상의 현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문명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하다. 그래서 더욱 맑고 쓸쓸한 이곳, 평화공원에서 21명의 야생동물들이 여덟 번째의 전시로 『야생-도라산을 가다』를 펼친다. 전시제목이 환경문제를 상징하는 야생이며, 분단 상황을 제유(提喩)하는 도라산 이듯이 명칭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야생동물은 2001년부터 시작된 젊은 조각가들의 모임으로서, 회원의 조건과 자격을 한정하지 않고 마음이 통하면 누구든 전시에 참여시키는 유연하고도 열린 조직이다. 회원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니 상업주의와 문화 속물주의에 길들여지지 않은, 그래서 진지하고도 순수한, 문자 그대로 야생동물들이다. 이들이 선정한 올해 전시의 주제는 환경(생태), 역사(지역성), 미래(통일)이다. 장소를 물색하고 그에 어울리는 주제를 설정한 기획이 참신하다. 회원들은 자신에게 흥미 있는 주제를 선택하고 그에 맞춰 작업을 진행했다. 우선 환경을 주제로 한 작가로는 김종진, 류신정, 신성호, 이동주, 최일, 최현철, 차재영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역사를 주제로 작업한 작가군에는 류호열, 연기백, 이유미, 임승오, 전신덕, 정찬부, 주송렬, 채지영을 넣을 수 있다. 끝으로 미래를 주제로 작업한 작가들로서는 민정아, 설총식, 양태근, 이상윤, 장준혁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전시가 비록 주제전이라고 하나 출품작들을 특정 주제의 틀 속에 일괄 분류하는 것은 넌센스다. 필자가 이들을 이렇게 분류한 것은 작품이 풍기는 대강의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 어떤 인위적 정형에 들어맞는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획일적 분류는 요즘의 트렌드에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자칫하면 작품 고유의 의미와 해석의 유연성을 침해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모두 다양한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채로운 재료 속에 자신의 개념을 용해시키는 작가들 각자의 방식이 자유롭고 발랄하다. 이들 젊은 조각가들은 아직도 우리 조각계의 전반적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모더니스트의 미학과 심미안을 수정하고자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 작품은 과거의 '엄격양식'을 넘어서서 '자유양식'으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시의 장소가 도라산역과 평화공원이라는 점. 작가들 또한 이곳 고유의 역사적, 정치적, 지역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작품제작에 임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장소특수성site-specific을 충분히 살려 환경과 예술 간의 조화와 상관관계를 부각시킨 전시라 하겠다. 삶과 역사와 사회를 외면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을 추구했던 과거의 모더니스트 예술로부터, 현장과 삶의 조건과 개인의 내러티브에 주목하는 포스트모던 예술로의 이행인 것이다. 20 세기를 지배하던 거대담론은 이제 그 힘을 잃었다. 예술의 독트린, 이념의 독트린이 무너진 마당에 아직도 지난 세기의 유물인 냉전의 흔적을 지워버릴 수 없는 이곳... 분단의 현장이 주는 의미가 시니컬하다.
죽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산 사람이 끌려 다니고, 살육의 땅에서 생태가 살아남았듯이 이곳은 모순과 아이러니의 땅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껴안고 모순을 극복하고자하는, 그래서 모든 것을 긍정하고자하는 것이 이 전시의 궁극적 지향점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사연을 짐작이라도 한다는 듯 인동초가 미풍에 흔들린다. ■ 오상일
Vol.20090909j | 야생-도라산에서 만나다-2009 야생동물들 기획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