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aken Individual

김다해展 / KIMDAHAE / 金多海 / photography.installation   2009_0829 ▶ 2009_0918

김다해_흔들리는 개체(부분_중앙 홀)_비디오, 만화경_29×21×70cm_2009

초대일시_2009_0829_토요일_06:00pm

24시간 관람가능

쿤스트독 프로젝트 스페이스 KUNSTDOC PROJECT SPACE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82.2.722.8897 www.kunstdoc.com

흔들리는 개체 - 그녀의 몸짓들 ● 작가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솔직하다. 지적허영으로 포장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그에 따른 '물질로서의 육체의 소멸'과 그녀의 영혼을 흔드는 불안함-물질로서 존재하는 인간의 육체-를 탈 물질화된 육체, 신체와 정신의 이중적 통합을 꾀함으로서 존재의 경계너머를 욕망하고자 한다.

김다해_흔들리는 개체_비디오 설치_540×240×70cm_2009

김다해의 '흔들리는 개체'는 본질적인'인간'을 화면에 담고자 한 것이다. 이미지속의 그녀, '흔들리는 개체'는 물질 그 이상의 무엇이 되고픈, 세상의 본질은 현실 밖에 있다고 여기는 '본질'에 관한 작가의 허락된 환상이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발을 딛고 서서 유독한 정념, 어둠속의 꽃과 같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김다해_흔들리는 개체(부분_좌)_렌즈에 채색_178×240cm_2009

20세기 후기 신형상주의, 추상표현주의, 누보레알리즘, 신표현주의 등을 비롯한 몇몇 회화양식에서는 인간의 몸 혹은 작가의 신체가 아주 중요한 소재 혹은 주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몸이 묶여져 있거나 뒤틀려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거나, 찢어져 있거나 형태자체가 동물과 합성되어 왜곡되어 있는 등 다양한 가능태를 지닌 채 작품의 일부 혹은 전체를 이루며 등장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크기나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작가가 직접 그렸거나 광고물 혹은 사진이나 영상자료 등을 차용하여 회화작품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김다해의 육체는 현상학적이나 사회내적인 개체의 존재, 외부와 내재의 결합등의 의도가 아닌 지금의 그녀, 20대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솔직히 드러내며 그 속에서 동반되는 존재적 불안과 함께 유리의 다면으로 이뤄진 둥근 홀 속의 이미지로 결합, 분열되고 재생되어 보여진다.

김다해_흔들리는 개체(부분_중앙 홀)_비디오, 만화경_29×21×70cm_2009
김다해_흔들리는 개체(부분_중앙 홀)_비디오, 만화경_29×21×70cm_2009
김다해_흔들리는 개체(부분_중앙 홀)_비디오, 만화경_29×21×70cm_2009

식물이나 동물은 영어의 'perish'라는 동사를 써서 '소멸'이라고 표현하나 인간에게는 'die'라는 동사로 죽음을 표현한다. 이는 인간만이 '죽고', 식물과 동물은 '소멸한다'는 것으로, 인간만이 죽음의 의미를 알고, 그 죽음을 또 다른 영속으로 연결지울 수 있음을 암시한다. 불교에서는 죽음에 대해 먼저 인생의 현실을 좌절과 실망만을 안겨다주는 고(苦)로 보았다. 즉 산다는 것이 고이고, 죽는다는 것이 고이며, 늙어 가는 것도 고이고, 앓는 것도 고이며, 미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고이다. 한마디로 말하며 인생을 구성하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요소는 다 고이다. 이것을 일절개고(一切皆苦)라고 한다. 이러한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시간적으로 변화무쌍한 제행무상(諸行無常)인 것과 같이 인간 또한 생(生)에서부터 사(死)로 향하는 일여정(一旅程)임을 말하고, 이를 인과(因果)의 도리(道理)를 적용하여 생이라는 원인에 의하여 사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보았다.

김다해_흔들리는 개체_비디오 설치_540×240×80cm_2009

그래서 불교는 이 세상의 허무함을 제행무상(諸行無템常), 제행무아(諸法無我)라고 표현하고 이것을 사성제(四聖諦)를 통하여 열반적정(涅般寂靜)에 이르며 무(無)의 상태를 추구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해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생(前生)의 업(業)이 없어야 하는데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러한 업이 청산될 때까지는 반복되는 윤회의 과정을 겪어 업을 완전히 없이하였을 때 인간은 열반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고(苦)에서의 인간해탈은 이성과 의지를 사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고 이때에 비로소 현세의 모든 모순이 풀리고 무지(無知)도 사라지고, 고가 진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覺者)의 죽음은 이미 고가 아니라 오직 오요소(五要素)로 구성된 물질의 분해작용인 것이다. 김다해의 '흔들리는 개체'속 분열된 형상성은 바로 이러한 오온〔五蘊, Khanda=Skana=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분해로서 고를 사멸하고 그 형체를 죽음과 더불어 온전히 소멸해버림으로서 동시에 재결합되어 윤회됨을 의도하고 있다. ● 죽음이라는 자기의 멸절(滅絶)을 통해 무아(無我)가 되며 그로 인한 진아(眞我)로 거듭되어지길 염원하는 작가는 정신과 육체의 경계선을 제가한 대립하는 두 항-영속과 소멸-을 이질적으로 결합된 다양한 형태의 몸짓으로 디지털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양쪽의 렌티큘러 속 나신의 형태, 그녀의 나체는 마치 인도인들이 죽음이라는 것을 옷을 벗음으로써 껍질을 벗는, 새로운 생명을 얻는 영원한 의식으로 인식하였던 것처럼 시각 속에 남겨진 회가 그녀가 벗어 버린 옷인 듯 존재론적 초월을 여운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 김다해의 존재에 대한 불안함, 죽음의 영속에 관한 욕망을 드러낸 이 작품에서 그는 첫째, 탄생에서 탄생으로 이어지는 인간생명의 파멸적인 단계를 이루듯, 이질적 재결합으로 형상화된 이미지들이 반복 재생되어 육체와 정신의 일원론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육체의 해체를 통해 심부(深部)를 들려다 봄으로써 죽음 너머의 영속을 꿈꾸며 그것에 대한 불안감을 소멸시키고자 한 것이다. ● 둘째, 바따이유적 에로티즘의 시선에서 드러나 있듯 여자의 나체, 성적인 존재로서의 실존적 한계에 초월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또 다른 존재성을 가지기 희망하며, 자신의 육체의 죽음으로서 획득될 수 있는 영원과 그로 인한 단절적인 심연의 불연속적 특징을 보편적 실재와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그의 드러난 알몸의 육체로서 표현해 보이고 있다. ● 셋째, 실존적 한계와 단절을 조장하는 터부와 금기에 대한 뛰어넘기를 통해 인간실존의 비연속성에 근거한 상호교감의 단절적 상황을 존재와 소멸의 순환적 과정을 통해 해소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죽음이 어떤 가능태로 변화될 수 있을지 되짚어 볼 수 있으리라. ● 이번 작업이 이후 또 다른 분열과 재생으로 이어질 앞으로의 작업을 위한 그녀의 진아(眞我)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 본다. ■ 김현지

Vol.20090829g | 김다해展 / KIMDAHAE / 金多海 / photography.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