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828_금요일_05:30pm
참여작가 고선경_구이진_김남희_김민경_김윤재_도병규_박은영_박종필_배준현_서지선 서지형_성유진_송연재_오은희_이경하_이승민_임소담_장성은_차영석_황지윤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해석에 반대한다 Against Interpretation 1. A씨 이야기 ● 나와 친한 작가 A는 한동안 작업실에서 두문분출 하며 하루하루를 고민 속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전화를 걸어 신변잡기적인 일상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가 언젠가부터 통 연락이 없길래 걱정스러워 하던 중 얼마 전 우연히 지인의 전시 오프닝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가 잠적을 한 이유인즉슨, 마치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리다 결국 은퇴를 결심하듯, A도 미술계의 비난이 두려워 숨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붓을 놓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A는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부모의 반대를 무릎 쓰고 힘들게 미술 공부를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작업 하는 시간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시간이 더 많을 만큼 버겁게 세상과의 싸움을 하면서도 뚝심 있게 그림을 그려오던 친구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하지만 빈곤의 악순환은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지냈고 A를 꼭 빼 닮은 아이도 태어났다. 오로지 자녀의 행복한 미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 하지만, 부작용은 있었다. 바쁜 부모를 둔 덕택에 다섯 살이 되는 해 까지도 나들이는 고사하고 얼굴을 맞대고 제대로 밥 한끼를 같이 먹어 본 적 없는 아이는 곧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도 말을 하지 못했다. 부모 얼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며 시선을 피하는 날이 잦았다. 애정 결핍과 정서 장애였다. ● 충격에 휩싸인 A 부부는 아르바이트 횟수를 반으로 줄이고 그 시간만큼을 더 자녀에게 할애 하기로 맘 먹었다. 돈이 없으니 비싼 장난감을 사주지도 못하고, 시간이 없으니 멀리 여행을 가지도 못했다. 심지어는 남들 다 있는 흔하디 흔한 동화책 전집도 마련해 주지 못했다. 결국 할 줄 아는 게 그림 그리는 것 밖에 없던 A는 직접 동화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림 속의 A네 식구는 손을 꼭 잡고 동물원에 가기도 하고, 놀이 동산에 가기도 하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우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그림 그리기를 1년여 간이나 지속한 끝에 결국 아이에게 잃었던 말을 되찾게 해주었고, 가끔 웃음을 보이기 까지 하는 등 상당히 상태가 호전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직도 난 늦은 밤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또렷하게 '아빠'라고 했다며 감동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전화했던 그 날의 A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지난 몇 해 간, 한국 미술계에 몰아치던 젊은 작가 열풍은 그에게도 당도하였다. 우연히 A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된 한 기획자가 산뜻한 그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지 아트페어에 같이 나가자고 제의를 했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열 번 째 동화집을 제작 중이던 A는 그 작품을 고스란히 출품시킨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 후로도 A는 몇 차례의 국내외 아트페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십여 년 만의 첫 개인전에서 대부분의 작품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본인도 모르는 작품이 옥션에 나와서 큰일이라며 걱정하듯 내게 토로했지만, 그렇게 싫지 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그의 살아온 삶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그간 고생의 대가라며 축하해 주었다. 난생 처음 기분 좋게 친구들에게 소주도 한잔 샀다. ● 그러나 그 기쁨은 실로 잠시였다. 미술계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는 대신 섬뜩한 채찍을 내리쳤다. 작가정신의 결여, 작품성 부재, 전형적 카피, 100년이 넘은 진부한 표현 방식 등등의 일침은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인터넷 미숙 카페에서 A에게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얼굴 없는 논객들의 글 밑에는 냉철하고 정확한 시각을 감탄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그렇게나 타일렀건만 천성이 여리고 착한 A는 혼자서 시름시름 앓았던 모양이다. 결정적으로 2회 개인전 도록의 서문을 부탁한 젊은 이론가에게 호된 굴욕을 당했단다. 상업작가에게는 글을 줄 수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고 한다. 기분 좋게 함께 A를 축하해 주며 소주를 얻어 먹었던 그 친구 이론가가 말이다.
2. 해석에 반대한다 ●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 ~ 2004) 1933년 1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1948년 시카고 대학에 입학한 뒤, 1957년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전 손택은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이자 예술평론가다. 1966년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담은 평론 모음집 「 해석에 반대한다 」 를 내놓아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을 비판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은 그녀의 저서 「 해석에 반대한다 」 를 통해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라고 지적한다. 과거의 해석법이 원래의 의미 위에 또 하나의 의미를 덧붙이는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근래에 와서는 배후를 파헤치듯 파고 들어가면서 원래의 의미 조차 파괴한다고 봤다. 그녀의 저서가 1960년대에 출판된 것을 감안하면 4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예술작품 해석법은 더욱 무시무시해 졌으리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 그녀는 특히 투명성에 대해 주목했다. 그녀가 주장하는 투명성은 오늘날의 예술과 비평에서 가장 고상하고 의미심장한 가치다. 동시에, 지나친 해석으로 인해 퇴색되어 가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의 빛이 나고 있는지, 그 빛은 과거의 빛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일정한 양의 반짝임을 발산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빛이 나고 있음을 인지하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 비평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는 예술작품은 예술 작품 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비평가의 역할은 관객들이 예술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직접 찾아 낼 수 있게 흥을 북돋아 주는 것이지 그것의 허점을 직접 찾아서 코 앞에 내밀고 '봐라, 잘못된 의미 아니냐'라고 결론 내려 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동물은 편협하기 짝이 없어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선에서만 모든 것을 판단하여 합리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개인 중심적인 접근법은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일정부분 작용하며 순수한 감상과 해석을 방해한다.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비평가나 기획자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심치 않게 비평가와 작가 사이의 논쟁을 목격한다. ● 이것이 논쟁으로만 마무리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합당한 근거 없는 비난은 때론 당사자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상처를 안겨주기도 한다. 실제로 작년과 올 해 두 차례의 IYAP을 준비하며 만난 100여 명의 젊은 작가들 대다수는 기획자나 비평가, 심지어 언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본인의 전시에 와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펜 가는 대로 적어버린 전시 리뷰, 작품 이미지의 위아래도 구분 못한 채 그대로 뒤바꿔 수록해 버린 전시 팜플렛, 듣도 보도 못 한 외국 작가의 카피 작품이라며 자신을 마치 범죄자 취급을 해버리는 처우 등 그들의 불평불만은 퍽 방대하고 다양했다. ● 싸움을 부추기거나 혹은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때론 공정성을 상실한 채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에 의해 예술작품을 규정해 버리는 오류를 범한다는 부분에 있어선 본인도 일정부분 동의한다. ● 적어도 지금의 한국 미술계에서 예술가는 약자다. 물론, 몇몇 눈치 빠른 작가들은 이들을 도리어 이용하고 나서기도 하나 대부분의, 특히 젊은 작가들의 경우 기획자나 언론, 비평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것은 확실하다.
3. 다시 A씨 이야기 ● A에게, 그리고 A의 작품에서 부족했던 것은 무엇인가. 어느 평론가의 지적처럼 A의 작품에서 또렷한 작가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만의 독특한 작품성을 논하기에도 모호하다. 이미 엇비슷한 작품들의 유행이 지나 간지도 한참 되었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모두 옳은 말이다. 그의 작품을 미술사적 부분이나 현대 미술의 카테고리 안에 포함 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 ● 그렇다면, A의 작품을 논했던 그 평론가는 무엇이 미흡했던 것인가. A가 창작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몰랐다. A에게 있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나아가, A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보질 못했으며, 그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해보지 않았다. ● 누군가에게 창작은 미술사에 길이 남기 위한 고된 수행의 길이다. 누군가에게 창작은 교수가 되거나 유명해 지기 위함이거나 혹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된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창작은 단순한 행위이며 자기만족이다. 그리고 A씨에게 창작은 오로지 자신의 아이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수단이다. ● 미술사에 남지 못할 작품을 했기 때문에, 교수가 되거나 유명해 지기엔 부족한 작품이었기에, 현대 미술의 범주에 집어 넣기엔 너무도 촌스러운 작품이었기에 A씨는 비난 받아 마땅한 건가? 그가 더 이상 작품활동을 안 하는 것이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했던 것인가.
4. IYAP 2009 ●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IYAP을 오픈 하게 되었다. 작년 IYAP 2008의 성공적인 결과는 미술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그로 인해 지난 1년여 간 다양한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의 젊은 작가 공모전이 많이 탄생했다. 이렇다 할 데뷔도 못한 채,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해보고 젊은 작가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버리는 젊지 않은 신진작가들이 대부분인 미술계의 현실을 놓고 볼 때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좋은 징조이다. ●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대안공간의 전시 기획자 한 명에게 작가 추천을 의뢰했다. 또한, 지난 1년여 간의 한국 미술계를 신중하게 지켜본 뒤 독창적인 본인만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판단된 30여 명의 작가들에게 포트폴리오를 요청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공개 모집을 통해 200여 명의 작가 포트폴리오가 접수 되었다. 총 250여 개의 자료를 기본으로 하여 1차 포트폴리오 내부 심사를 통해 약 50여 명을 선발했다. 이 후 직접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해 실제 작업 확인 과정과 간단한 인터뷰를 거쳐 최종 20명의 IYAP 2009 참여 작가가 선정되었다. ● IYAP은 작가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갤러리나 기획자, 비평가가 중심이 아닌 오로지 작가가 주인공이 되어 극을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 1회성 공모전이 아닌, 향후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로 그들이 한국 미술계에 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끊임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오랜 준비 기간과 많은 인력이 동원된 IYAP 2009는 침체된 한국 미술계에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활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 이들을 올바르게 성장토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단 믿고 지켜봐야 한다. 이제 막 발돋움을 하는 젊은 작가들이 공정하고 격조 있는 작품 해석을 받게 될 그 날까지는 참고 지켜봐 줘야 한다. 예술가는 60세가 될 때까지 실험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참 실험중인 그들에게 손을 씻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운을 걸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험 자체를 중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두어 점 작품이 판매되었다고 해서 상업작가로 치부해 버리거나, 누군가의 작품과 다소 닮아 있다고 해서 범죄자로 취급을 해버리거나, 작가의 목소리는 듣지 않은 채 의역을 해 버리는 것도 삼가야 한다. 물론 오역은 더욱 조심해야 할 부분임은 말 할 필요도 없겠다. ● 수전 손택의 말처럼,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이다. 물론 냉철한 비평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금은 우선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 더 급하다. 이것은 관객도 원하고 작가도 원하는 바라고 감히 확신한다. ● 『IYAP 2009 : 해석에 반대한다』展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대체 무슨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창작의 고행을 하고 있는 것인가. 직접 전시장에 나와 그 이유를 찾아보기 바란다. 그 누구도 틀렸다고 지적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해석은 온전히 여러분의 몫이니 말이다. ■ 윤상훈
Vol.20090828d | IYAP 2009: 해석에 반대한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