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815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브레송_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충무로1가 고려빌딩 B1 Tel. +82.2.2269.2613 cafe.daum.net/gallerybresson
자연을 향한 경계인의 시각, 소멸과 흔적 ●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풍경화의 역사를 생각해보자. 풍경화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그 이유는 풍경화의 전개가 역사적으로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집트의 무덤, 로마와 폼페이의 벽화 등에서 발견된 바위, 풀, 나무 등이 자연주의적인 기법으로 그려졌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풍경화에 대한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근본적인 차이는 그 당시에 그려진 자연대상 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배경으로 기능을 하였기에, 풍경화가 독립적이고 미적인 사고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 풍경화는 17세기 계몽주의 시대 전 까지는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으나, 독립된 주제가 된 것은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들에 의해서 객관적인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는 낭만주의 사조가 대두되면서 풍경에 대한 개념이 바뀌기 시작한다. 풍경화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자연의 모습은 지금까지 인간의 배경으로서 인식되고 정복의 대상으로서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독자적인 질서와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실재를 실감하는 것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말경에 인간은 자연을 잃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풍경화가 선호되던 시기의 배경은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간의 생활양식이 변화되고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역사가 있었다. 자연의 이용과 파괴가 극도로 진행된 우리가 풍경이란 말을 자연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할 때가 많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생활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가? 혹은 자연과 연관 지어 볼 때 우리들의 풍경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런 식의 접근 방법이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여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시각을 가로막는 '무생물/대형건물'과 함께 바쁜 일상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유,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작가들이 자연적인 풍경을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기는 하지만, 깊이 있는 표현을 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싸구려 감상 물로 보여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을 기록하고, 자연을 표현하는 행위는 작가 스스로 정확한 '콘셉트(concept) '가 없으면 엄두를 내기 힘든 주제이기에 정창권의 사진은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정창권의 풍경 사진을 살펴보자. 그는 경주 근처 선도산의 산불현장을 주관적인 시각으로 기록한다. 눈에 보이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진 숲의 모습은 흉측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눈이 대지를 덮은 것 같은 정서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대상을 사실적으로만 기록하는 시각에서 벗어난 것이다. ● 정창권의 시각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평소에 자각하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도와준다. 이를테면,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본래의 실체가 따로 존재하는데, 바라보는 인간의 고정된 시각으로 자연적 풍경을 똑같이 보고, 판단하는 행위에 대한 문제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연의 모습은 인간의 시각과는 다르게 자생적으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자연의 현장을 들쳐보려는 습성보다는, 자연적 상태를 담담하게 지켜보는 경계인(boundary man)의 태도가 엿 보인다. 이런 시도는 눈에 보이는 것의 한계를 거부하며, 제한적인 시각을 비껴가고 있는 것이다.
정창권의 사진에서 앙상하게 타버린 검은색 나무의 흔적은 죽음의 은유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에 의하면,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모든 것을 흘려보내는 주검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의 종언인 죽음 뒤의 육체의 침묵과도 같은 것이다. 검은색은 외적으로는 가장 소리가 없는 색이다." 라고 한다. 흔적의 정의를 과거가 현재 속에 남겨놓은 기호로 규정한다면, 과거를 통해서 현재에 남겨진 모든 자취는 곧 흔적이다. 흔적은 지울 수 없는 '존재의 말소불능' 을 보여준다. ● 흔적은 일종의 현실의 그림자로서 기능한다. 흔적은 대상의 존재감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 상태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현실과 동시에 발생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와 과거에 속하지 않는 자신의 고유한 시간성을 가진다. 정창권의 사진은 자연의 모습을 불에 그슬려진 산의 모습에서 생성, 소멸된 흔적을 자연적인 질서 안에서 이해하려는 태도가 보인다. 불티가 흩날리는 대지의 모습은 햇살과 공기감의 작용으로 비현실적인 외형을 하고 있으며, 조용히 흔들리는 바람의 표현은 우리의 시선을 정서적으로 안정시키고 있다. ● 경계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정창권의 사진은 '바로 그곳' 에서 일어난 상황에서 위치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혹적인 사진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선다. 작가는 자연의 고유한 시간성을 가지고 있는 소멸과 흔적의 이미지에 집착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사진을 통해 재현된 시간의 흔적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연관시켜 자연 속에서 삶의 정취를 찾아보기도 하고, 자연과의 소통과 대상의 미세한 부분의 작은 떨림 하나도 놓침 없이 교감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 김석원
Vol.20090814c | 정창권展 / JUNGCHANGGYUN / 鄭敞權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