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ble Negative

차혜림展 / CHAHYELIM / 車惠林 / painting   2009_0811 ▶ 2009_0819

차혜림_pit stop_캔버스에 유채_162×390.9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차혜림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811_화요일_06:00pm

후원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문화일보 갤러리 MUNHWAILBO GALLERY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82.2.3701.5755 gallery.munhwa.co.kr

잔혹극 탈출의 작은 단서 ● 차혜림의 회화는 가장 정직한 회화의 틀을 사용하고 있다. 사각의 캔버스 그 안에 그려진 사실적인 인물과 풍경은 매우 친밀한 표현이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작가만의 내용을 가지고 있어 매우 낯설다. 등장하는 일상의 인물과 공간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다중적 코드를 지니고 있고 나름대로의 규칙을 갖고 있다. 그래서 차혜림의 그림 안으로 관객은 빠져 들어가게 된다. 마치 한편의 소설이나 영화를 압축한 장면처럼 볼거리와 생각할 부분들이 많은 것이다. 그녀는 회화라는 무겁고 원초적인 장르를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법칙에 따른 조형구성으로 담백하게 그려낸다.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인터넷의 뉴스나 개인 블로거에 수집된 이미지와 내용들이며 예측과 연상적 차용위에 스토리를 만들어 집어넣는다. 그녀는 형식과 내용의 구조에 있어 안과 밖이라는 이중코드를 동시에 사용하고, 시간과 공간까지도 역으로 이용한다. 캔버스 틀 안의 그림은 역사적으로 환영의 공간이었으나 차혜림은 관객과 공유하는 놀이의 무대로 만들어 버린다. 작가는 무대 전체를 완벽한 시나리오로 연출한 것 같으나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작은 부분이나 불확실한 것들을 등장시켜 관객과 함께 다른 결말을 유도해 내며 다시 회화로서의 환영적 공간임을 인식시킨다. 예를 들어 한 작품을 보면「과시규칙들」에서 반쯤 묶은 커턴 뒤에서 손을 뻗어 막이 시작되는 것을 제시하는 무대 속 유일한 여성으로부터 인물들은 시계방향으로 위치해 있다.

차혜림_유일한 오점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09

회전하고 있는 시간성으로 인물들은 일상적으로 늘 해오고 있는 듯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나 무언가 불안한 요소가 보인다. 화면 중앙인 정면에서 우리를 향한 화면 밖 공간으로 다이빙을 시도하는 남자와 그 옆에서 못을 박는 사람으로부터 공간은 극렬한 대립적 상황이 발생된다. 화면의 정점에서 탈출 자세를 취하는 자 옆에서 강한 자세로 상황을 종료시키는 인물은 정해진 사회적 제도의 법칙 안에서의 배치(背馳)관계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모습 또한 알 수 없게 표현된 것으로부터 불확실성은 더욱 가증된다. 그러나 역방향으로 시간을 풀며 이 전체적인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는 인물들이 있다. 떨어지는 못에서 파생된 나사못으로부터 연상된 스카이 콩콩을 탄 두 사람은 한정된 시공간으로부터 빠져나온다. 각 배우 간 연결공간은 비어 있음에도 화면은 심리적 답답함을 안겨 주는데 약간 비켜났지만 그래도 중요한 중앙부분에 속한 일탈하는 인물로부터 화면전체는 자유로운 리듬이 생기며 활기를 띄게 된다. 사회의 제도나 고정관념 그리고 인습의 결정에 따라야하는 못 박은 자의 결론으로부터 위트와 유머라는 무겁지 않은 도구의 속도로 탈출하는 것이다.

차혜림_spread sheet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9

차혜림은 20세기 초 전쟁시대에서 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혹독한 것인가를 경험하며 잔혹극이라는 전위적이며 실험적 연극을 만든 앙토냉 아르토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잔혹한 삶이 아니라 우주의 조화 속에서 한 치 빈틈없이 치밀하게 계획되어지는 삶 자체를 말하는 아르토는 모든 감각의 공존을 통해 저 밑바닥에 억눌려 있는 무의식과 원초적 에너지를 흔들어 해방시키고자 했다. 관객과 배우를 규정짓는 무대를 뛰어넘는 공간적 형태를 만들어 내기 위해 뻗어가는 모든 표현의 가능성과 연극의 물질적 요소 그리고 시적이념모두를 혼합시켜 시도하였다. 인형, 춤, 판토마임, 제스처, 신음과 비명의 억양, 건축, 조형, 조명, 무대장치를 혼합하여 마술적이며 초현실적인 무대를 만들며 시대의 사회적 고정관념과 논리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했다.

차혜림_Clockwise Game_캔버스에 유채_91×116.5cm_2009

그러나 인터넷 세대인 차혜림은 아르토의 초현실적인 세계의 잔혹극이 아닌 사이버세계라는 또 다른 세계를 갖고 있는 현실 안에서의 잔혹극을 그려낸다. 그녀는 기억, 환상, 욕망 뿐 만 아니라 정보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 컨텐츠라는 여러 플랫폼까지 조합시켜 이 시대의 억압된 감각을 일깨운다. 억압의 요소들은 평범한 일상의 복장이나 행동으로 내 보이고, 스포일러들이 작은 힌트로서 정보전체를 예측 하는 것처럼 그곳을 탈출하는 작은 단서가 그려진다. 오늘의 인터넷 시대는 개인들의 블로거들이 새로운 정보의 플랫폼이 되고 그곳에서 동조의 참여자들을 만나면서 전 시대하고는 다른 권력의 장이 형성되어진다. 지식 생산과 평가가 아주 민주적이며 빠르게 전파되는 즉시성이란 특징으로 네티즌이나 트위터, 싸이월드의 공유자들을 생산해 낸다.

차혜림_short circuit_캔버스에 유채_91×116.5cm_2009

이곳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극복하며 한사람의 개인의 도달한 정해진 지식의 전문성이 아니라 집단지성들이 어떤 유형을 규정짓기보다는 경계를 넘나들면서 더욱 다양한 커뮤니티로부터 연합된 지식을 끌어온다. 이것은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이라고 지칭되며 피에르 레비의 "유동적인 환경에서 공식적인 언어와 경직된 구조는 현실을 흐리거나 은폐할 뿐이다"라고 쓴 부분을 통해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헨리 젠킨스, 컨버젼스 컬처, pp.84-85, 비즈앤비즈, 2008)

차혜림_semblance_캔버스에 유채_120×82cm_2009

차혜림은 그녀의 꿈, 경험된 기억, 문학적 스토리텔링의 재능이라는 개인적 전문성을 인터넷의 서핑을 통한 집단 지성의 공감대와 접속하면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나가는 유동적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표현방식으로 고정된 회화적 구도를 사용하면서 연상의 상징적 요소(사물, 공간, 동물, 여성)을 등장시키며 영상, 문학, 회화, 연극의 간학문적 경계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의도를 가지고 정보를 조합하면서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어나가지만 마치 아르토의 실험극이나 남미의 초현실적 실험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해 각자의 해석을 하며 전체를 공유하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그것은 게임과 같으며 푸는 단초와 함정의 이미지는 동시에 존재한다. 시계방향과 역방향의 시간성,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공간성, 신체 내부의 안과 밖, 일상적 태도와 복장, 스포츠, 여성과 남성 등으로 억압과 탈출의 구조를 만들고 우리는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개, 천, 끈. 바람, 소리, 묘사되지 않은 얼굴 등의 예측 불가능한 우연의 이미지를 그려 놓아 불확실한 심리도 개입시킨다.

차혜림_확고한 유대_캔버스에 유채_80.3×116cm_2009

작가는 둘러싸고 있는 시대의 사회적 환경에서 나오는 억압적 제도라는 잔혹극을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 어떤 환경에서도 해방의 궁극적 목적은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가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화면 속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얼굴은 묘사되지 않고 오직 가면만 표정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을 써야 자유로워지는 정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 그림에서 탈출의 단서는 아주 작은 이미지로 그려져 스토리를 유추해야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웃음과 함께 경쾌한 해방감을 준다(이 글에서는 극의 결말부분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 차혜림의 그림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어 나올 수 있는 소통의 간극을 갖고 있지만 공감된 정보, 개인의 이해, 작가의 방식, 비평의 암시라는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으로 종합된 공통의 소통 방식도 생성해 낸다. 그리고 이 집단 지성들에게서 나온 담론과 함께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웹 세대만의 시대적 예술 표현 방식을 경험하게 한다. ■ 김미진

Vol.20090811d | 차혜림展 / CHAHYELIM / 車惠林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