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의 포트폴리오

2009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석사학위청구展   2009_0803 ▶ 2009_0807

초대일시_2009_0803_월요일_06:00am

참여작가 유민석_양소정_이희명_최진아_한정원_김윤아

관람시간 / 10:00am~08:00pm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HONGIK UNIVERSITY 서울 마포구 상수동 72-1번지 문헌관 4층 Tel. +82.2.320.1322

'톰과 제리'는 디즈니의 인기 만화 캐릭터로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아온 캐릭터이다. 힘을 가진자로부터의 위협에 맞서 굴복하지 않고 언제나 위기를 이겨 내는 모습은 어려운 시대에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톰과 제리'를 성인이 된 후 다시 본다면 그 내용은 이제 새롭게 다가 올 것이다. 어려서 본 제리의 활약은 더 이상 재치이기 보다는 잔인한 모습으로 비추어 지고 톰의 어리숙한 모습은 측은하게 까지 느껴진다.

유민석_Tom and Jerry 1_캔버스에 유채_116.8×72.7cm_2009

그것은 사회가 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성인이 된 사람들은 더 이상 큰 어른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존재가 아닌 작은 몸을 가진 이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가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약자가 하루 아침에 강자가 되기도 한다. 고양이를 자신의 뛰어난 머리로 속이고 즐거움을 취하는 쥐도, 그런 쥐를 잡아 먹으려고 자신의 육체의 힘을 이용하는 고양이도 모두 올바르지 못하다. 현재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때론 힘쎈 고양이 일수도 또는 잔인한 쥐 일수도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톰과 제리'는 더 이상 재미있는 만화가 아닌 평화로운 낙원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톰과 제리를 현실적인 모습으로 캔버스 안으로 끌어 들인 작품이다. 만화를 현실의 고양이와 쥐로 끌고 나옴으로서 만화 '톰과 제리'를 현실에 비추어 지금의 현 사회를 돌이켜 보고 싶었다. 우리는 항상 타인으로서 그림을 바라보지만 그림 속에서 한번은 고양이에게 한번은 쥐의 관점으로 그림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둘 모두의 상황에 언제든 놓여 질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 유민석

양소정_Lost contro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오일스틱_130.3×193.9cm_2009

인간 삶을 뒤 덮고 있는 구조는 다수에 의해 일반화된 '보편적 인식'과 그동안 그래왔다는 경험의 '역사' 라는 무기를 앞세워 의식과 무의식속에서 인간의 선택을 조종하고 있다. 그동안 나의 삶을 지배해왔던 신념,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 되어온 이 구조는 내가 삶의 어떤 선택지점에 섰을 때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욕망이 절충되는 지점으로의 무난하고도 불편하지 않은 방향의 선택을 종용해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듯 지나칠 수 있었던(또 몇몇의 날들에서 그렇게 지나쳤던) 하루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나를 옭아매왔던, 견고하고 틀림없다고 여겨왔던 이 구조는 너무나 쉽게 깨지고 흩어지고 녹아내려 모두 해체되었다. 나의 작업은 바로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에 관한 것이다. 마주치게 되는 그들이 사람이든 혹은 시간이나 '있었던 일' 이든지간에 한사람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건을 겪고 난 이후에 온 몸과 정신에 체화된 응어리진 흔적, 각인된 감정을 그리고 싶다. 아마도 그 이유는 아직도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또한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며 과거 속을 헤매기 때문일 것이다. 섬세한 디테일들 - 사랑했던 시간들이 엉겨붙어있는 사물과 음악과 마주쳤던 모든 것 - 에 담긴 감정의 기억으로 나는 같은 시간을 여러 번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몸과 마음속에 끼어있는 이 섬세한 디테일들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나는 과거를 정리하고 과거의 결과인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결국 나의 작업의 궁극적 목표는 범상하지 않았던 나날들을 거쳐 얻어진 감정의 조합을 그려나가며 미시적인 인간의 본질을 분석하는 것이다. ■ 양소정

이희명_Empty words_캔버스에 과슈, 아크릴채색_130×162cm_2009

나는 상위와 하위의 계급과 가치가 전복됨을 의미하는 이종의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하이브리드적 상상력은 수직적 경계를 허물고, 드넓은 수평위에 나를 안착시킨다. 현존하는 수직적 세계는 위와 아래를 향한 줄이 있고, 나란 존재는 줄을 잡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세계는 중력에 사로잡혀있는 난쟁이들의 천국이다. 그러나 수평적 세계는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열려있는 창조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이종과 상하, 권력과 계급의 가치에서 벗어난 세계,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다. 남성과 여성, 집단과 개인 같은 이원론으로 무장한 수직적 세계는 항상 타자를 만들어내며, 이러한 현실원칙에 따른 고통은 나만의 수평적 세계에서 기존 가치의 전복을 시도하며 해소된다. 적어도 내 스스로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관점보다 열린 세계로의 이행을 추구하며, 수직적 세계와 수평적 세계의 접점에서 무한한 교감을 이끌어 낼 수 있길. ■ 이희명

최진아_name of object_종이에 유채_97.5×97.5cm_2008

페르디낭 드 소쉬르 : 심리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사고란 낱말에 의한 표현을 제외하고 나면 불분명하고 무정형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기호의 도움 없이는 우리가 두 개의 관념을 명료하고 일관성 있게 식별해 내지 못하리라는 것은 철학자나 언어학자들 모두가 항상 인정하는 바이다. 사고는 그 자체로는 뜬구름과 같아서 필연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미리 설정된 사고란 없으며, 언어가 출현하기 전에는 분명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 만약 언어 사용이 사고를 전제로 한다면, 그리고 말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알려고 하는 의도나 표상을 통해 대상과 결부되는 것이라면, 왜 사고가 완성을 지향하듯이 표현을 지향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그것의 명칭을 발견해 내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대상마저도 불확정한 것으로 보이는지, 또한 자신이 책에 담게 될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책을 쓰기 시작하는 많은 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고 주체 자신이 사고를 그 자체로 혹은 구어나 문어로 형식화시키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그 사고에 대해 무지 상태로 있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최진아

한정원_House of Schnauz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5×112.1cm_2009

겉으로 보면 인간은 다 거기서거기다. 태어나서 자라고 살다가 죽음까지 간다. 하지만 사람마다 걸어온 길은 다르고, 만약 그 길이 같다고 해도 결과는 다르다. 우리가 세상을 발아 보면서 받아드리는 것은 다를 수도 있고, 주변 환경에서 받는 영향과 느끼는 감정들은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 (환경, 성격, 문화, 경험) 조합하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으로 형성된다. 그림 역시 그렇다. 단순히 볼 때에는 그저 형태, 선, 그리고 색깔들이 있지만, 첫 걸음부터 시작되는 시점에 따라 성격도 형성되고, 이러한 형태들과 선들의 조합으로 하나의 이미지, 내 삶에 한 때로 기록된다. ■ 한정원

김윤아_In between 1_자카드(레이온, 폴리에스테르, 울)_137×255cm_2009

생각은 가지에 가지를 치고 무성한 가지들이 희열과 상처들을 자극하며 마구마구 범벅되고있음. 새로운 랜덤한 기억들의 집합: 생각과 마음이 정돈되지 못한 가운데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은 극으로 치닫음. 산만하고 기복적인 감정. 정신상태. 연속적으로 찾아오는 상화들에 매번 똑같이 반응하고 넘어지며 또 일어서는 익숙한 나의 패턴. 그 가운데 뚫고 찾아온 당신은 빛. ■ 김윤아

Vol.20090803d | 7개의 포트폴리오-2009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석사학위청구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