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 혹은 그 너머의 무엇 ● 김형동의 사진 프레임 안에는 풀들의 이미지가 들어 있다. 그가 보여주는 풀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의 풀들은 식물도감 안에서 만나는 특별한 풀들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 늘 존재하는 그래서 우리가 늘 만나는 그런 범속한 풀들이다. 김형동의 렌즈는 말하자면 풀들을 그 어떤 특별한 의도를 앞세우지 않은 채 포착한다. 하지만 다름 아닌 그러한 무의도적 시선은, 역설적으로 이해할 때, 김형동의 풀 사진 안에 들어있는 정작의 의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늘 주변에 있지만 언제나 잊혀지는 것이 풀이라면 김형동의 무의도적 시선은 그렇게 잊혀진 풀들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보는 이에게 환기 시키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를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의 풀 사진들이 다만 그렇게 잊혀진 풀들의 존재를 한 번 더 환기 시키는데서 그치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사진들은 풀들의 존재에 대한 환기와 더불어 또 다른 어떤 메시지를 보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평범한 풀 사진들로부터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까? ● 김형동의 풀 사진들에서 우선 주목되는 건 '군집성의 이미지'이다. 김형동의 렌즈는 다양한 풀들을 보여주지만 그 풀들은 언제나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김형동_Grass #02_디지털 C프린트_86.5×71cm_2006

풀들은 근접 촬영을 통해 독자적으로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혹은 이질적인 풀들의 군집성 안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물론 그러한 군집성은 풀들의 생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풀들이 그렇게 군집적으로 포착될 때 그 이미지는 또 다른 심미성을 지닌다. 김형동의 경우, 그 심미성은 이미지의 중첩성, 더 정확히 말해 객관적인 풀의 이미지가 그 군집성 때문에 또 다른 연상 이미지와 겹쳐지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컨대 엉키고 성키며 빽빽하게 밀집한 진초록의 풀들은 그 군집성으로 사이사이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그 깊고 둥근 그림자는 그 어떤 에로틱한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또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밟고 지나간 자국으로 일제히 땅에 쓰러져 누운 일군의 풀들은 그 군집적 흔적을 통해서 그 위를 지나간 모종의 존재에 대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김형동의 사진 안에서 풀들은 분명히 오브제이지만 그 오브제는 군집성을 매개로 삼아 풀의 독자적 이미지로서는 불러낼 수 없는 또 다른 이미지를 보는 이에게 상상케 한다는 점에서 심미적이다.

김형동_Grass #03_디지털 C 프린트_86.5×71cm_2006

다음으로 주목되어야 하는 건 '풀들과 시간과의 관계'이다. 김형동의 풀 이미지들은 사진의 순간성에 의해서 정지 이미지로 포착되어 있다. 하지만 그 정지성 안에는, 한쪽으로 일제히 쓰러지는 풀들의 운동 이미지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바람의 존재처럼, 언제나 시간의 흔적이 들어 있다. 김형동의 사진 안에 내포된 풀과 시간 사이의 내밀한 연관성은 풀들 자체의 다양한 형상을 통해서 보다 분명하게 확인된다. 김형동이 보여주는 다양한 이미지의 풀들은 자세히 보면, 다름 아닌 풀들의 일생을 따라가고 있다.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들, 푸르게 육성하는 풀들, 시들어 가는 풀들, 메말라 쓰러진 풀들의 이미지는 풀들의 유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장년기와 노년기를 말해주면서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풀들의 일생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김형동의 사진 안에 내포되어 있는 풀들과 시간의 관계가 다만 그렇게 세속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풀들의 일생을 추적하면서 김형동이 응시하는 시간은 소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다시 생성으로 이어진다.

김형동_Grass #06_디지털 C 프린트_86.5×71cm_2009

예컨대 마른 풀들 밑에서 새파랗게 발아하는 풀들의 싹들은 자연의 시간이 생성과 소멸 사이에 경계를 두고 있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언제나 눈앞의 현재에만 매몰되어 있는 우리의 시간의식을 벗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연의 순환적 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 하지만 김형동이 응시하는 풀들과 순환적 시간과의 관계가 다만 시간의 차원에서만 끝나는 것일까? 오히려 그러한 풀들의 시간성에 대한 인식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그 어떤 소망과 관계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하는 건, 김형동의 풀 이미지들 안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특징인 '풀들의 지향성'이다. 김형동의 풀 이미지들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싹트는 풀이든 시드는 풀이든 모두가 마치 보이지 않는 화살표처럼 어딘가로 향하는 지향성을 보여준다.

김형동_Grass #07_디지털 C 프린트_86.5×71cm_2009

막 발아하는 싹들의 군집 이미지는 그 하나하나가 마치 수많은 유두들처럼 모종의 환희를 향해서 돋아 오르고, 새파랗게 육성하는 풀들은 다 같이 한 쪽으로 몸을 기우리면서 그 어딘가를 향해서 나아가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발에 밟혀 바닥에 쓰러진 풀들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무엇인가가 그 어느 곳을 지향하면서 자신의 몸 위로 지나갔음을 그 밟힘의 흔적을 통해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 하지만 그 풀들의 지향성이 궁극적으로 만나고자하는 대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사진 안에 들어 있지 않다. 그건 오히려 김형동의 사진들이 사진을 응시하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김형동의 사진을 이해하는 일은 그 지향성의 대상에 대해서 보는 이 스스로 저마다의 이름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 김진영

김형동_Grass #08_디지털 C 프린트_86.5×71cm_2006

풀을 촬영하게 된 것은 생명력 때문이다. 잡초의 생명력, 풀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하려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으나 본래의 목적과 멀어진 느낌도 있는 것 같다. 시골에서 자랄 때 친구들과 망태기를 메고 꼴 하러 가던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돈다. 국토해양부 대구국도관리사무소 보수과에 근무하므로 거의 매일 담당 지역 도로에 나가므로 산과 들을 접하게 된다. 나름대로 내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가 늘 찍을 수 있고 대할 수 있는 것이 풀이라고 생각해서 풀을 찍기 시작하고, 풀의 생명력에 관심을 두고 찍었다. 늘 생명력을 생각하면서도 외형의 아름다움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찍고 있다. ■ 김형동

김형동_Grass #09_디지털 C 프린트_86.5×71cm_2006

The grass or that something that lies beyond ● There are images of grasses in the Kim Hyung-Dong's photo frame. The grasses that he shows are very ordinary. His grasses are not the special grasses that we can see only in pictorial books on the plants, but they are merely ordinary grasses that exist in our surrounding and that we see every day as a result. Kim Hyung-Dong's lens captures these grasses without putting forth any special intention. However, this unintended gaze is indeed the intention that is in the Kim Hyung-Dong's photos on the grasses when his photos are understood in a paradoxical manner because if they are the grasses that are always forgotten about, even when they are always next to us, Kim Hyung-Dong's unconscious gaze certainly embraces the intention to remind the people of the existence of the grasses that are forgotten. However, do his photos on the grasses stop at reminding the existence of the grasses that are forgotten? If not, are his photos trying to deliver yet another message to the viewers along with reminding the people on the existence of the grasses? If so, can we read special message from his photos on the ordinary grasses? ● What is most notable about the Kim Hyung-Dong's photos on the grasses in the 'image of clustering.' Kim Hyung-Dong's lens shows diverse grasses, but the grasses do not always exist alone. Grasses are not captured independently by shooting them from close by. Instead, their existence is manifested within the cluster of same or heterogeneous grasses. Of course, this clustering is closely related to the ecology of the grasses as well. However, when the grasses are captured in a clustered manner, the images hold yet another aesthetic appreciation. In case of Kim Hyung-Dong, what is important is that the aesthetic appreciation exerts the effect of getting overlapped with another image that conjures up the image due to the clustering when it comes to the overlapping of the image, particularly the objective images of the grasses. For example, the dark green grasses that are mixed and mingled and that are very dense create dark shadows in between the clusters of the grasses, and the deep and round shadow conjure up the erotic image. Moreover, the grasses that have fallen on the ground since someone had stepped on them conjure up the images of the existence of a being that passed over, by looking at the trace of the clusters. Grasses in the Kim Hyung-Dong's photos are certainly objects, but the objects use the clustering as medium to encourage the viewers who imagine when they see another image that cannot be brought in from the independent image of the grasses. ● The next thing to notice is the 'relationship between grasses and the time.' Kim Hyung-Dong's images of the grasses are captured as still images due to the camera's ability to capture the moment of the time. However, within that ability to capture the stopped moment, always includes the trace of the time just like the existence of the wind that can be read through the image of the grasses' movement that fall to one side, all at once. The similarity inherent in between the grasses that are encompassed in Kim Hyung-Dong's photos and the time is confirmed clearly through the diverse forms of the grasses. When the grasses of the diverse images that are manifested by Kim Hyung-Dong are examined in detail, they follow the life of the grasses. The images of the grasses that are blooming green, grasses that are cultivated blue, grasses that are withering, and the images of the fell down since they are dry refer to the youth, young adulthood, adulthood and the old age of the grasses. Moreover, this is like the life of the grasses that are not different from the life of human beings. However, grasses that are inherent to the Kim Hyung-Dong's photos and its relationship with the time are not limited to that secular way alone. As the grasses' life is traced, time that is perceived by Kim Hyung-Dong does not end with depletion, but leads to generation going steps further. For example, the seeds of the grasses that are germinated green under the dry grasses make us understand that the seeds of the grasses do not have the boundary between the generation and depletion when it comes to the time of the nature. And this realization remind us of the nature's circulating time, making us deviate from the concept of time since we were always so busy about the present that we see. ● However, does the grasses that Kim Hyung-Dong gaze and the circulatory relationship with the time end at the time aspect? In fact, is the awareness on the time of the grasses related to a certain wish that is detailed and realistic? To answer these questions, we must focus on the 'orientation of the grasses' that is yet another characteristic that is found in the Kim Hyung-Dong's images of the grasses. Kim Hyung-Dong's images of the grasses may look as if they are all heading towards something that is not visible, whether the grasses are young or not. The image of the cluster of the seeds that are just starting to germinate, heads upwards as if numerous nipples, facing the ecstasy. And the grasses that are cultivated blue lean to one side, as if they all want to go somewhere. Moreover, the grasses that have fallen down after getting stepped over are geared towards somewhere whether human beings or animals stepped on them. The way they look attest to the trace of them getting stepped over. However, orientation of these grasses is not manifested in the photo. That is, it is not sure where they are headed to. Perhaps this is the question that Kim Hyung-Dong's photos present to us. Understanding Kim Hyung-Dong's photos is like discovering own name when it comes to the target of the orientation. ■ Kim, Jin-Yeong

Vol.20090802c | 김형동展 / KIMHYUNGDONG / 金亨東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