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적 변화-뉘집 자식?

신혜진_정영식展   2009_0721 ▶ 2009_0731

정영식_오줌싸개_강화플라스틱에 에나멜페인팅_60×50×50cm_2009 신혜진_어머니_종이, 에폭시_145×70×30cm_2009

초대일시_2009_0721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신혜진 blog.naver.com/tereza1021 정영식 blog.naver.com/artist_jys

책임기획_류병학

관람시간 / 11:00am~11:00pm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_gallery, curiosity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4-5번지 Tel. +82.2.542.7050 www.curiosity.co.kr

존재의 확인 작업 ● 천 위에 얇은 바늘이 '한 땀 한 땀' 움직인다. 그 두 번의 바늘 움직임으로 한 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선들이 모여 면이 이룬다. 면의 형태는 다양한 그림이 된다. 이 작업은 꼼꼼하며 인내와 끈기를 발휘해야만 겨우 완성 할 수 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느긋이 작업하면 포기해 버리기 일쑤이다. 허리를 꼿꼿이 세워 한 곳을 오랫동안 보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성격적으로 흔히 '여성'이 적합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여성이 가진 여성스러움이 수공예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여성작가 신혜진의 작품도 이러한 결과로 탄생하였다. 여성스러움으로 여성의 마인드로 꼼꼼히 작업에 임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한다. ● 종이와 같은 재료를 사용하게 된 동기는 '프랑케슈타인의 심장'이라는 테마로 작업 하였을 때이다. 한 과학자가 나와 닮은 인간을 창조하고 싶은 열망을 갖는다. 하지만 만들어진 프랑케슈타인으로 인해 그를 만든 과학자도 만듦을 당한 괴물도 모두 결국엔 불행한 결말을 끝을 맺는 스토리이다. 테마 작업을 통해 작가는 '다시 태어난다'를 축약해 '재생(再生)'이란 단어를 갖게 된다. 이것을 불행한 결말의 도구로 삼지 않고, 재생하고픈 대상을 찾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첫 작업「로봇」을 만들게 된다. 재생된 종이, 녹화한 테이프나 필름을 가지고 로봇의 머리 부분을 만든 이 작품은 재생된 재료를 가지고 작품화 하였다. 재생된 재료가 밧데리 역할을 해 로봇에게 새 생명을 준 셈이다.

신혜진_로봇_골판지, 카세트테이프_72×40×23cm_2006

개인적으로 작가는 집안이 출판업에 종사하다보니 종이가 누구보다도 친숙한 소재이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길거리에 버려진 재생지(파지破紙)를 작업에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파지는 기억과 존재를 이끌어내기에 적합했으며, 조각난 종이를 이어 붙여 강한 결집력을 형성하기에 충분하였다. ● 작가는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상으로 작업하였다. 가족은 항상 옆에 있어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작가에게도 그랬다. 갑작스럽게 떠난 아버지는 자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에게 스케치 한 장 전해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에 반성의 의미를 담아 작업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자신의 기억에 머물러 계신 편안한 모습이다. 선한 생김새에 목이 길게 늘어진 아버지의 두상을 보자니 관광지나 학교 동상 속 근엄한 위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머리는 6대 4 비율로 곱게 양분해 있어 차분한 인상을 더해준다. 정면을 향한 아버지의 동공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고개 너머를 바라다본다. 남은 가족에게 미안함을 가져서인지 아버지는 두 입술은 굳게 닫혀있다.

신혜진_아버지_재생지_47×32×25cm_2008
신혜진_신발_재생지_16×12×32cm_2008 신혜진_사과_재생지_9×7×9cm_2008

돌아가진 아버지의 이미지를 재조합하기에 이른다. 재생의 뜻을 가진 재생지를 이용해 기억 속 아버지를 주문을 외워 불러내었다. 아버지를 불러내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았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종이를 찢고 조각난 종이로 아버지의 형상에 붙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로 하였다. 비가 내리는 날은 날씨가 습해 종이가 쉽게 허물어져 버렸다. 작가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차분히 자신의 작업에 몰입하여 기억 속 아버지를 불러내는데 성공한다. 아버지의 얼굴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버지를 생각나게 할 수 있는 사물들「신발」,「사과」도 시리즈로 제작하기에 이른다. ●「신발」이 생전에 아버지가 다녀가신 공간(현세現世)의 발자취의 과정이라면「사과」는 항상 아침사과가 좋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음성의 메아리 역할을 한다. 이로써 사물을 통해 아버지의 존재를 한층 더 강화하는 도구로써의 유품들을 제작한 셈이다.

신혜진_어머니와 나_재생지_145×70×30cm_2009

2009년의 작품들은「어머니」이다. 전작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과정 - 과거회상 - 이라면 이 작업은 다신 기억을 더듬지 않게 지금 옆에서 살아 숨 쉬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았다. 항상 옆에 있기에 어머니의 변해버린 모습을 알아낼 수 없었던 작가는 어머니의 전신상 반(半)과 어머니를 똑 닮은 자신의 전신상 반(半)을 한 장의 사진처럼 남기기에 이른다. 오른쪽의 반은 어머니, 왼쪽부분의 반은 자신의 모습이다. 약 145cm에 이르는 전신상으로 재생지를 사용했다. 재생지를 잘게 찢어서 이어붙인 형식이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종이의 크기가 작았으며, 그 이음부분은 세월의 흔적을 대변하듯 자신의 것보단 완고하게 만들어지진 않았다. 세월의 흔적과 모녀의 구분은 자신보다 쳐진 가슴과 엉덩이에서 확인되었다. 자신은 어머니에 의해서 재생되어진 존재를 '닮음'을 통해 나타내었다. ● 자신과 어머니는 닮았다. 그 중에서도 '손'은 가장 닮은 부분으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이려 했다. 어머니는 눈을 살포시 감았으며 가슴 부분으로 향한 손바닥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유치원 시절 자신의 가슴만큼 커버린 딸을 바라보며 취한 몸짓이다. '벌써 네가 이만큼 자랐구나'라며 말하시던 모습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은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려 눈을 감았다. 자연스레 손은 따뜻한 기억을 감지하려 가슴에 놓아두었다. ● 유전자 DNA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오랜 세월이 흐름에도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변하질 않는다. 대(代)를 거듭할수록 더 깊숙이 남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을 다시 한 번 더 생각나게 한다. 신혜진의 작업들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대상들, 다시 한 번 소중함을 각인시키는 그런 대상들에 대해 조명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 따뜻한 감성을 담아 생명력을 가지게 했다. 이런 작업들이 가능하게 '재생'이란 단어를 사용했으며, 작품을 통해 우리들에게 증명했다. 하지만 존재의 범위를 자신의 부분에 치우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관객과의 자연스런 소통을 위해 대상의 폭이 확장되기를 바란다. ■ 김태은

정영식_놀고 싶다1_강화플라스틱에 아크릴 채색_55×35×40cm_2008 정영식_놀고 싶다3_강화플라스틱에 아크릴 채색_60×70×50xm_2008 정영식_놀고 싶다2_강화플라스틱에 아크릴 채색_55×35×50cm_2008

아이들 안 우리 보기 ● 귀여운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인가 하고 봤더니, 얼굴은 무표정하고 몸은 녹아 내려 사라져간다. 분명히 이 아이들은 놀고 있는데, 작품은「놀고 싶다」(2008)란다. 정영식은 과제에서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첫 번째 작업으로 녹아내리는 형태의 아이 또는 자신이 없애버려야 한다고 여기는 사물이나 기억을「무기력」(2007),「중독」(2008)등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 사실 녹아 흘러내리는 오브제의 재현은 일찍이 살바도르 달리가「기억의 영속성」(1931) 등에서 초현실주의 표현수단으로 사용했고, 다수의 작가들 또한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 바 있느니 흘러내리는 표현 자체로는 그다지 새로운 작업은 아닐 것이다. ● 그러나 정영식의 작품에서 녹아 흘러 마침내 사라지는 대상은 많이 담아내기 위해 특정한 사물에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도 아니고, 심오한 함축적 이미지를 담고자 기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닌 작가의 생활 속 경험에 기인한다. ● 놀 시간도 없이 부모의 의지와 선택에 이끌려 사는 아이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만들게 되었다는「놀고 싶다」시리즈는 언뜻 보면 세 명의 아이들이 모여앉아 흙장난을 하기도 하고 함께 있지만 소통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앉아있는 바닥에 접한 부분부터 점점 녹아내려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임을 짐작케 한다. 아이다운 귀여운 옷과 원색의 장난감에 잠시 눈을 돌려봤지만 얼굴은 너무 어둡고, 아이들의 손은 비율에 맞지 않게 작다. ● 정영식은 이러한 부조화스런 요소들을 계산된 표현수단으로 이용하는데, 이를테면 옷가지의 색상과 무표정한 얼굴 대비로 우울한 느낌을 배가 시키고, 비율이 맞지 않는 신체 표현으로 한사람의 주체로서보다 부모에 영속된 소유물처럼 여겨져 때론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마음이 자라기 전에 머리만 커가는 아이들을 은유한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아니 지금 사라져 가고 있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놀고 있지만 정말 놀고 싶은 우리 아이들을 담았다.

정영식_오줌싸개_강화플라스틱에 에나멜페인팅_50×50×60cm_2009

이번에 전시된 100점의 드로잉 중 선별하여 작업한「침흘리개」(2009)와「오줌싸개」(2009) 는 표현대상은 좀 더 사적인 영역으로 끌어오고 기법 면으로는 녹아 흘러내리는 형태를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정영식은 작가노트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의 잊고 싶은, 혹은 이미 잊은 기억을 녹여 흘러 보내기 위한 작업으로 두 작품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헌데 마치 시멘트를 바른 듯 회색 페인트로 덧칠한 오브제는 사적 대상(작가자신)이지만 더 이상 사적이지 않게 다가온다. 색을 통해 익명의 대상이 된 아기는 침을 흘리는 너무나 아이다운 행동을 하고 있지만, 아이답지 않은 표정의 얼굴까지 흘러 녹아내리는 형상은 세상에 난 순간 또 사라짐을 향해 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하는 듯하다.

정영식_침흘리개_강화플라스틱에 에나멜페인팅_33×45×70cm_2009

작품제작의 기술적인 능력에 치중했던 자신을 깎는 과정에서 시작된 녹아내리는 오브제의 표현 기법은 당시 그를 둘러싼 외부 환경과 자의식이 맞물려 적절한 작업이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20대 중반의 전업 작가로 서기 위한 과정에 들어선 정영식은 단순히 잊거나 극복하려고 애쓰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습관, 외부 상황을 제한된 대상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자신을 담기보다 작가로 들어서기 전 자신을 둘러 싼 극복해야 할 구체적인 현실을 직시하고 내, 외적 공감과 보편적 이해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에 조금 더 깊게 들어서야 할 것이다. ■ 레이니 김_Rainy Kim

Vol.20090729h | 유전자적 변화-뉘집 자식?-신혜진_정영식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