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 山水花

김명신展 / KIMMYUNGSHIN / 金明信 / photography   2009_0721 ▶ 2009_0727

김명신_산_한지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09

초대일시_2009_0721_화요일_02: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서울대학교 우석홀_WOOSUK HALL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 56-1번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50동) Tel. +82.2.880.7480

지리산. 지리산의 분위기. 알 수 없는 무의식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듯한 일루젼, 저 어둑한 심연에서 저 아득한 경계까지 시선이 오르내리다보면, 간혹 능선이 너울거린다. 동양화...무척이나 좋아한다. 이 좋아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서예를 배운 적도, 동양화를 배운 적도 없고, 한문보다는 영어가 수월하고 차 보다는 커피가 익숙한데. 사진, 마이크로 프로세스 칩이 내장된 디지털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나는, 종종 대상을 동양화로 그려내는 나를 발견한다. 좋아하다 보니 많이 바라보게 되고, 즐겨 바라보다 보니 내면화되었다.

김명신_산수_종이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30×45cm_2009

뭔가를 좋아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십 수백만 년 전부터 몸 속에 차곡차곡 쌓여온, 그리고 지금 여기의 문화, 개인적 취향, 기질, 성장과 환경 등이 만들어낸 어떤 지향들. 지각들과 인식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고 이끌리는 저 무엇에 정말 무언가가 있는건 아닐까?

김명신_오리산수_종이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09

"우리는 저 너머의 세계에 살고 있었지만 레테의 강을 건너 그곳의 기억은 망각한 채 이 가상의 세계로 왔다. 관조를 통해 기억 속에 은폐된 저 너머의 세계를 환기할 수 있다" 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이 매혹적인 이야기는 아득한 저 너머를 바라볼 때 가끔 떠오른다. 동양화의 분위기는 이 메타포를 떠오르게 하고, 이 메타포는 동양화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비록, 저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할지라도, 저 너머에 단지 내가 투사한 나의 이상이나 바램 뿐일지라도, 이 미묘한 분위기가 주는 감흥은 내게 공포 대신 즐거움을 준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저 너머이고, 이 곳은 또한 저 곳의 저 너머인듯하다. 보일 듯 말 듯 물과 오리가 만들어낸 미세한 결들 사이에 잠시, 머물다 간다.

김명신_오리산수_종이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50×33cm_2009 김명신_오리산수_종이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50×33cm_2009

저 너머, 저 경계의 환영을 경계하여도, 내겐 그 미묘함과 아득함이 주는 기쁨이 사라지지 않는다. 황폐한 마음을 안개처럼 감싸주니 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품,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처럼 품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봄아침 그 상쾌한 분위기 혹은 뇌우가 올 것 같은 하늘에 드리운 위협적인 분위기를 말하기도 하고 골짜기의 사랑스런 분위기나 정원의 아늑한 분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는 곧 기분 좋은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긴장된 분위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 우리는 대상이나 주위 환경이 분위기를 산출하는 지, 아니면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가 분위기를 산출하는 지를 알지 못한다. 분위기는 말하자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느낌의 음색으로 공간을 채우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다." 독일의 자연미학자, 게르노트 뵈메의 글은 근대 이후 개발의 대상이 되어버린 자연과 인간을 다시 친밀하게 이어주고 있는 듯하여 반갑다. 자연이 품처럼 그려진 동양화에 매료되었고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동양화를 소박하게 그려내고 싶은 바램으로 이어졌다.

김명신_산수화_한지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09
김명신_산수화_한지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09

천구백구십오년에 제작되어 이천구년 현재 십오년이 되어가는 차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구상과 손길, 시행착오를 거쳤을 차. 사람들의 감각 변화와 함께 변화해가는 차. 크지도 않은 차가 돌돌 잘 굴러간다 하여 붙여줬던 이름이 돌돌이. 개의 수명은 십여년이라는데, 돌돌이도 여기저기 잔고장이 나고 이런저런 안 내던 소리도 낸다. 같이 어딜 갈 때마다 한번씩 툭툭 두드려주기도 하는데, 이 전시를 통해 몇 년 후에도 이 녀석을 기억할 조금 다른 길(현대 산수화)이 생겼다.

김명신_산수화_한지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21×29cm_2009

자연이 품처럼 그려진 동양화에 나는 매료되었고, 그 이끌림은 은연중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동양화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싶은 바램으로 이어졌다. 넘쳐나는 정보에도 복잡계를 다 해석해낼 수 없는 우리에게, 내게, 여백과 비움을 미학적으로 펼쳐보인 동양화의 세계는 나이 들어가는 내가 내면화하고 싶은 삶의 지혜와도 닿고, 또 미니멀한 표현의 목조 가구, 달 항아리, 졸한 토기 등의 미학은 향후 나의 시각적 작업을 간헐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이끄리라 예감한다. 이후 즐거운 놀이이자 승화로서의 나의 작업들이, 그 노력과 모색이, 여느 삶이 그러하듯 또한 여느 일이 그러하듯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을 것이고, 하여 나는 다시 돌아올 초심의 성좌로서, 아주 오랜 꿈이었던 나의 첫 전시를 정성껏 이 곳에 기록한다. ■ 김명신

Vol.20090719c | 김명신展 / KIMMYUNGSHIN / 金明信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