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_2009_0717_금요일_02:00pm~06:00pm
관람료 일반(18세 이상 64세 이하)_3,000원(단체 20인 이상 2,000원) 가족권(성인2+어린이2)_8,000원 할인(7세 이상 18세 미만)_1,500원 무료관람_6세 이하 및 65세 이상 /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 6세 이하 어린이는 보호자 동반 시 입장가능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9:00pm / 월요일 휴관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산58-1번지 Tel. +82.2.2188.6000 www.moca.go.kr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배순훈)은 오는 7월 17일(금)부터 『 아리랑 꽃씨 : 아시아 이주 작가』展을 개최한다.'아리랑 꽃씨'는 세기가 바뀌어도 한민족의 삶과 함께 해 온 '아리랑'이라는 용어에 '꽃씨'라는 연약하지만 생명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의 합성어로, 척박한 땅에서도 당당히 삶의 터전을 일구어간 한인작가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기획의도를 반영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인들의 이주사와 삶을 공감하는 한편, 새로 발굴된 작가와 작품을 접함으로써 한국미술사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된다. 전시의 지역적 범위는 한반도의 주변국인 일본, 중국, 독립국가연합으로, 작가의 범위는 1948년 정부수립 이전에 이주한 이주자와 그 후손들로 한정하였다. 근대기인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한인들이 가난, 식민지 통치 등을 피하여 이주한 이지역들이 우리의 근대사를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아시아 주요미술기관의 한인작품들이 대거 출품된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소장 조양규의 작품과 교토시미술관 소장 전화황 작품, 도쿄 조선대학교 소장 백령과, 유족 소장 김창덕 작품, 한국인임을 컴잉 아웃한 다카야마 노보루와 3세대의 젊은 작가들 작품이 출품되어 재일작가의 세대별 의식 및 작품의 변화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카자흐스탄 주립미술관에 소장된 한인작품들이 처음 국내에 소개된다. ●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통해 사회적 상황과 예술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으며, 각 나라마다 한인들의 위상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각기 소속된 사회 속에서 외국인 또는 소수민족으로 살면서도 당당히 위치를 잡아가는 한인들의 작품세계를 확인하는 일은 단순히 '한민족'의 공통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민족','국가'라는 경계에 선 자들의 감수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세계화 속에 다양한 해외이주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며 급속도로 다문화사회로 변모하는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각기 다른 수난과 영광의 유민사를 작품을 통해 되돌아보는 일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고 포용된 사회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 이번 전시의 부대행사로는 7월 17일(금) 오후 2-6시에 각 나라의 한인미술 전문가들과'아시아의 한인미술'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가질 예정이며, 전시기간 중 관람객의 이해와 감상을 돕고자 작품설명회가 평일 오후 2시, 4시, 주말 오후 2시, 4시, 7시에 운영된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www.moca.go.kr) 혹은 02)2188-6000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아리랑 꽃씨 ● 이번 전시는 지역별로 구성된다. 그것은 각 지역의 역사적 토대에서 한인 작품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두고자 함이다. 전시장의 경우 다큐멘터리 방과 연결되어 있는 세 개의 문을 통해 각 지역과 연결되어 관람객은 마치 여행을 하듯 선택에 의해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된다. 다큐멘터리 방에는 각 나라의 이주사 관련 사진이미지들을 볼 수 있으며 이번 출품 작가들의 작가인터뷰도 상영된다. 인터뷰는 '재일在日'에 대한 견해, 민족에 대한 견해, 중국 문화혁명시기에 소수민족 미술에 대한 대우 등과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1. 재일한인의 미술 ● 일본의 한인들은 스스로를'재일在日'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일본에 거주하고 있다'는 현재적이며 정착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낸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지만 일부는 한국국적으로, 일부는 조선국적으로, 또 일부는 일본국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재일한인이 처한 현실이다. 또한 그들 권익을 위한 단체도 남한 쪽을 지지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북한 쪽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로 분열되어 있는 곳이 바로 재일한인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일본의 재일미술은 현실참여적인 작품과, 미적탐구에 보다 가치를 두고 있는 작품,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조양규(曺良奎, Yanggyu Cho, 1928-?) ● 경상남도 진주 출생. 1947년 진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의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안이 결정되자 조양규는 이를 비판, 학교 건물에 인민기를 게양하며 저항하였고 결국 도피하는 신세가 되어 일본에 밀항하게 된다. 그 후 일본에서 창고인부로 막노동하며 정착한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수학(1952년)하였으며, 일본의 앙데팡당전이나 자유미술전에 출품하였다. 또한 1953년, 1958년 두 번의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일본 전후(戰後) 리얼리즘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을 때인 1960년 북송선을 타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행적은 알 수 없다. 조양규의 예술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바로 창고 시리즈와 맨홀 시리즈이다. 창고 시리즈는 생산의 현장이라기보다 축적의 현장 즉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의 노동 소외를 상징화한 작품이다. 맨홀 시리즈는 간과하기 쉬운 맨홀이라는 소재를 통해 하층 노동자의 삶을 암시적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일본화단에서 개성적인 리얼리즘 미술을 전개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조양규의 작품세계는 이 시대 노동자의 소외에서 출발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현대사회의 인간소외로 확대 해석되어지고 있다.
백령(白玲, Ryeng Peak, 1926-97) ● 경북 의성군 출생. 1930년대 가족과 함께 도일했으며 본명은 박영환이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고 당시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제작했으나 몇 점 남아있지 않다. 1952년부터 나카무라 히로시나, 가와라 온 등 전후전위미술을 주도했던 미술가들이 속해 있던 '일본청년미술가 연합'에 소속되어 활동하였고, '일본 앙데팡당'전에도 출품하였다. 무엇보다도 백령의 일생에 중심이 되었던 것은 재일한인 미술가로서의 활동이었다. 1947년 '재일본조선인 미술가협회'가 결성되던 때부터 단체 활동이 현저해지는 1960년과 그 후까지 구심적 역할을 했으며 이론과 비평에 중심에 있었다. 1962년 재일미술가 첫 화집발행 등, 재일한인 미술역사가 현재까지 문서로 남아 있는 것은 그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내 아이의 아비를 돌려달라」(1986)는 동서냉전의 상징인 베트남 전쟁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의 아내와 아이를 그렸다. 화면중심에 그려진 여자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답답함과 분함을 표현할 길이 없는 여자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스럽고 간결한 구도, 구리빛 살색 등이 실감 있게 표현되어져 있다. 다카야마 노보루(高山登, Noboru Takayama, 1944-) ● 도쿄 출생.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도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도쿄예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초청받았을 때 일본국적으로 귀화했다. 1960년대 말 철도용 침목 작품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주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모노파의 일원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그에게 이 당시 철도용 침목은 인간의 삶이자 희생인, 근대화의 그림자에 숨져간 일본 식민지인들을 연상시킨다. 1970년 「지하동물원」에서는 철도용 침목에 크레오소트와 타르를 바르기 시작했는데, 시신을 닦아낸다는 점과 강한 냄새는 죽음과 연결되어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의 주제는 「진혼제」로 일관하였는데 점차 물성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침목 외에도 철을 사용하거나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김애순(金愛純, Aesun Kim, 1976-) ● 이바라기현 출생. 1999년에 도쿄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2005년 런던 첼시 미술디자인 대학(Chelsea College of Art and Design) 대학원을 졸업했다. 런던 자브루도윅츠 콜렉션(The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주로 경험에서 비롯된 사회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작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설치작품인 「종이(Paper)」는 국적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국적이 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임에도 국적이 사람들의 인식과 개인의 객관적 상태를 변화시키는 점을 지적한다. 화장실 휴지에 북한 여권과 남한 여권을 교대로 인쇄하여 작가에게 여권이란 마치 휴지에 인쇄된 보통의 문양과 같은, 다시 말하면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2. 독립국가연합의 한인미술 ● 한인들은 가난과 식민지 통치를 피해 연해주 등지로 이주한 후 1937년 스탈린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게 되고 현재까지 러시아 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이러한 한인들은 강제이주 후에도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면서 각 독립국가마다 자민족 언어를 국가 공식어로 정하고 역사 찾기를 추구함으로써 이제 한인들은 각 독립국가에서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재확립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변월룡(Wolryong Byun, 1916-1990)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생, 한인학교를 다녔고 1936년 스베르들로브스크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다니고 있을 무렵인 1937년 스탈린 강제이주정책으로 인해 변월룡을 제외한 가족들이 타쉬켄트로 강제이주 당한다.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변월룡은 1947년, 소련 최고의 예술대학인 레핀미술대학를 졸업하고 1950년부터 40여년간 그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또한 전 소련연방에 30여명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미술학 박사 학위를 1951년에 취득한다. 1953년 6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소련 문화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교육성 고문관으로 일했다. 북한에 머무는 동안 평양미술대학을 복원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고 유화, 판화, 공예, 조각, 데생, 무대미술 등 전 분야에 영향을 끼치는 등 북한미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당시 김용준, 김주경 등 월북했던 북한예술가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셨던 것은 변월룡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진면목은 판화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석판화 및 동판화에서 드로잉의 필력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특히 동판화에 자주 등장하는 비대칭 곡선의 뒤틀린 소나무에서는 뛰어난 회화적 조형미 뿐 아니라 아픔을 인내하고 살아온 한인의 심성이 녹아있는 듯 하다.
신 니꼴라이(Nikolai Sergeevich Shin, 1928-2006) ● 연해주 나호드카 근교인 타우딤 출생. 1937년 아홉 살의 나이에 다른 고려인들과 마찬가지로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 1940년에는 타쉬켄트에 정착하였다. 1949년에 신순남은 타쉬켄트의 반코프 예술대학(P.P. Benkov School of Art)을 졸업한 후 화가로써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업은 기념비주의, 대형 컴포지션, 정련된 색감이 주된 특징이다. 그는 유럽 회화의 고전주의를 자신의 배경으로 수용한 채 예술적 경력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의 예술 언어는 표현적 간결함과 색의 긴장을 획득한다. 인생 경험, 개인적인 심리적 드라마들(일찍 부모를 여의였고, 강제추방당하고, 부인과 아들의 죽음을 겪은)은 그의 작업에 아련한 애잔함을 불어넣는다. 물론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레퀴엠」이다. 그는 1966년부터 같은 이름으로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 한인들의 삶의 비극적인 사건을 묘사하는 화면은 여러 쪽으로 분할되어 있고 인물들은 다양하게 형상화되었다. 그가 사용하는 색상은 아주 표현적이며 간결하며 극적인 울림을 반향한다. 그의 작품은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강력한 의지와 정신력에 의한 소산임을 확인케 한다.
김 세르게이(Sergei Duhaevich Kim, 1952-) ● 카자흐스탄 테르미타우(Temirtau) 출생. 알마티 미술학교를 졸업했고 연필 드로잉, 특히 초상화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탁월한 그래픽 예술가이자 세련된 삽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초기작품은 시적인 섬세한 수채 인물화로 탁월했다. 1990년대 소련붕괴 이후에는 일상적 피폐함과 도덕적 몰락을 캔버스에 극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으며 인간이라는 주제를 놓치지 않고 있다. 「새장」은 철장을 사이에 두고 정치적 현실을 바라보는 불안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민간인을 에워싼 군인을 바라보는 자의식은 탈출 할 수 없이 철장에 갇혀있다. 그의 작업은 마치 인생의 부조리극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먼 근원과도 같은「선조」의 모습을 섬세한 질감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작가가 제시하는 상징적인 기호들에서 상상력의 깊이를 확인하게 된다. 3. 중국한인의 미술 ● 중국한인은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따라 중국에 동화되어 중국공민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특히 중국한인미술은 조선 민족독립운동과 중국의 공산주의 체재 하에서 발전해오면서, 그 내용과 형식에서 있어 주제성이 강하고 민속적인 소재를 사용하며 인물화를 위주로 하는 특징을 보인다. 1990년대에 와서는 중국정부의 정치, 경제적 자유화 정책을 펴면서 발생하는 사회변화에 대해, 화가들은 유머와 해학을 과장되게 표현하는데 그 이면에는 내재된 무거움을 엿볼 수 있다.
리귀남 (李貴男, Guinan Li, 1965-) ● 길림성 훈춘시 출생. 1992년 중앙민족대학 미술계 서양학과 졸업. 1997년 중앙미술학원 서양화 조교 연수반을 수료하고 현재 중앙민족미술학원 서양학과 학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무거운 압박감이 느껴지는데 이는 단지 색채 뿐 아니라 작품 속 인물의 초조하고 긴장된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귀남 작품은 안정감과 단순함에서 벗어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붉은색과 초록색, 파란색을 사용함으로써 색의 강렬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의 대표작인 「홍의 노인」(1998)은 앞을 보고 있는 노인을 묘사하고 있는데 눈동자가 없는, 멍한, 망각적인 허무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길게 늘인 신체를 묘사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긴장된 팽팽함이 느껴진다. 작가는 삶에 대한 두려움 또는 막연함을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김우(金于, Yu Jin, 1963-) ● 룡강성 목단강시 출생. 1988년 중앙민족대학 미술학원 서양학과를 졸업하였고 1997년 중앙미술학원 서양화 조교 연수반을 수료한 후 현재 북경 청년정치학원예술계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배경이 생략된 화면에 여성의 모습을 짓눌린 상태로 묘사하고 있다. 전반기에 제작한 작품들은 주로 여성 얼굴상을 거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거친 터치가 두드러지며 이 여성은 왜 자신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조차 자각하고 있지 못한 듯 하다.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전신상의 여성 두 사람이 허공에 팔과 다리를 휘두르는 무의식적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 여성들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어 미소를 띠는 것도 같고 대화를 하고 있는 것도 같다. 이들 역시 자신이 왜 허공에서 이런 의미없는 동작을 취하고 있는지조차 의식하고 있지 않다. 김우가 배경을 회색으로 표현한 이유는 중국 가옥들의 색이라고 하는데, 삭막한 현대사회에서의 가치판단의 모호함과 인간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박광섭(朴光燮, Guangxie Piao, 1970-) ● 중국 길림성 왕청현 출생. 1995년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졸업하고, 1999년 중앙미술학원 연수반을 졸업했다. 그가 예술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는 개혁개방 이후인 90년대로 그는 중국변화의 과도기적 양상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정사각형의 캔버스 안의 둥근 형태는 터질 듯한 물의 기포를 의미하고, 물 속에서 부유하는 인물의 모습은 혼돈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의 숨막힘을 나타내고 있다. 물 속의 인물은 솟아나고자 하나 하반신을 벗고 있어 수치심 또한 한쪽 켠에 자리잡고 있는 오늘날의 70년대생들의 모습이며 이들은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유머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그가 작품에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는 분홍색은 가치의 모호함과 불합리함을 표현한 것으로 잃어버린 희망과 가치를 나타낸다. ■ 국립현대미술관
■ 부대행사 □ 학술세미나 2009_0717_금요일_02:00pm~06:00pm / 주제_아시아의 한인미술 세부주제 및 발표자 / 재일미술_고성준(일본 니가타 현립 근대미술관 큐레이터) 중앙아시아의 한인미술_엘리자베타 김(카자흐스탄 카스티브주립미술관 큐레이터) 중국의 한인미술_임파(중국 연변주화원 부원장) □ 큐레이터 갤러리 토크 2009_0724 / 0925_금요일_02:00pm_박수진(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Vol.20090717g | 아리랑 꽃씨 : 아시아 이주 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