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K DROP

이창진展 / LEECHANGJIN / 李昌振 / sculpture   2009_0715 ▶ 2009_0804 / 일요일 휴관

이창진_우유사진#1_판화지에 디지털 프린트_57×79cm_2009 이창진_우유방울 씨리즈#16_석고_23×17×14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417c | 이창진展으로 갑니다.

작가 프리젠테이션_2009_071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샘_GALLERY SAM 부산시 금정구 부곡3동 11-24번지 세정빌딩신관 B동 1층 Tel. +82.51.510.5480

유기적 형태의 추상조각 ● 보통 기하학적이거나 직선적인 것 그리고 그것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의 맞은편에 유기적인 형태가 위치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유기적인 형태들은 대부분 내재적인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예로 장 아르프의 응고물(Concretions)로 불리는 조각들이 성장과 변형이라는 은유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과, 거장 헨리 무어의 조각에서 구축주의적인 성향이 보이는 것이 관련이 있다.

이창진_우유방울 씨리즈 #7~#15_알루미늄_각 7×20×11cm_2009

아무것도 내재하지 않은 채 유기적인 형태의 추상조각을 만들 수 있는가? ● 유기적 형태의 추상조각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 쉬워 보인다. 예를 들어 흙을 마구 주물러 아무 형상도 없게 만들고 그것을 캐스팅하여 영구적인 재료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것은 자동기술법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겠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자들은 그 아무렇게나 주무른 흙에서도 무의식적인 의지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되짚어서 정말 아무렇게나 주무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이창진_나열된 우유방울_석고_벽면설치_2009

일반적으로 추상적인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는 대상을 기준에 맞춰 변형시키는 방법이 많이 쓰여 왔다. 하지만 그 방법은 대상을 닮던 닮지 않던 간에 그로부터 유래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으며 내재성 또한 띠고 있다. 더군다나 그 변형의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은 일종의 맹점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그러한 주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그러한 시도들은 많은 부분을 우연성에 의존하게 된다.

이창진_우유방울 씨리즈 #5_브론즈_24×70×22cm_2009

회화에서는 물감을 흘러내리게 하거나, 뿌리거나, 원심력에 의해 물감을 튀어나가게 하기도 한다. 근래 조각에서는 경화하는 성질을 가진 유재를 부어서 굳히거나, 일정높이에서 기계를 이용해 사출하여 떨어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마른하늘에 물고기 비가 내리는 정도의 사건에 비하면 그 우연성이 한참 떨어진다. 그 방법자체가 결과물과 매우 인접해있기 때문이다.

이창진_우유씨리즈 #2~#5_알루미늄_가변설치_2009

나의 작업 역시 추상화의 작업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의 작업에서는 대상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즉 어떠한 대상을 추상화하는 것이 아닌 추상화된 대상을 재현한다. 추상화된 대상은 실험을 통해서 얻는다. 흩뿌려진 우유의 사진 속에서 극소화된 우유방울의 형상을 찾아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대상을 재현한다. 나는 이러한 형식화되고 객관적인 추상화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내재되어 있지 않은 형태의 추상적 형태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창진_우유방울 씨리즈 #1_석고_10×37×17cm_2009 이창진_우유방울 씨리즈 #2_석고_10×37×17×cm_2009 이창진_우유방울 씨리즈 #3_석고_12×30×28×cm_2009 이창진_우유방울 씨리즈 #4_석고_12×40×15×cm_2009

내가 추상적 형태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추상조각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떠한 형상이라도 눈앞에 존재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불변의 것이었으면 좋겠고,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것 외의 다른 이야기는 되도록이면 섞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창진_우유사진 #2~#12_판화지에 디지털 프린트_가변설치_2009

나는 높은 산의 커다란 바위가 내 앞에 있을 때 감동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뭇사람들이 말하는 자연에 대한 존경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 감동은 존경심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온몸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전율에 가깝다. 그것은 아마도 리오타르가 말하는 숭고의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단일한 재료로 일관된 혹은 그렇게 연출된 덩어리에 의해 느껴지는 조각적 감성이다. ■ 이창진

Vol.20090716b | 이창진展 / LEECHANGJIN / 李昌振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