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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710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pm~06:00pm
아트파크_ARTPARK 서울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 Tel. +82.2.733.8500 / +82.2.3210.2300 www.iartpark.com
부유하는 삶, 떠도는 이미지 ● 강서경의 작품에는 두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발레리나의 형상을 한 여자(그녀의 분신이며 아바타와 같은 형상), 목없는 마리오네트가 그들이다. 이들은 그녀가 그려놓은, 칠해놓은 흔적을 배경 삼아 부유하며 어디론가 하염없이 이동한다. 붓질의 감각적인 맛이 물씬거리는, 드로잉의 맛으로 적셔진 터치와 액체성의 질감으로 홍건한 물감은 무엇인가를 지향하려다 멈춰서있다. 산이나 계곡, 나무와 풀, 구름과 안개 짙은 산수화를 슬쩍 연상시켜주는, 또는 구체적인 자연의 한 조각인 듯한 이미지, 자취는 실재 풍경을 재현하기 보다는 화가 자신의 마음 속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산수화의 틀을 해체하고 유희한다. 그것은 어떤 이미지 같으면서도 그저 물감과 붓질에 다름아니다.
유선형의 생명체나 아직 어떤 형체를 지니지 못한, 구체성을 상실하고 다만 활력적인 기운이나 미끈거리는 욕망 같은 것들이 몰려다닌다. 물감을 머금은 붓질은 하나의 획을 지닌 체 자유롭게 칠해지고 뭉개지고 방향을 선회하다 중력에 의해 주룩주룩 흐르기도 한다. 탄력적이고 매혹적인 붓질의 놀이와 질료성을 지닌 물감의 생생한 삶이 감각적으로 부유하고 있다. 단색의 평면위에서 흥겹게 춤춘다. 떠돈다. 그러면 사람의 이미지도 역시 그와 함께 떠있다. 연극무대에 올려진 듯한 이 꼭두각시인형들, 마리오네트 들은 현실을 사는 보편적인 인간(또는 익명의 존재) 운명의 은유나 작가 자신의 분신, 또는 얼핏 전통산수화에서 만나는 점경인물과도 같다. 그들은 배경풍경, 흔적위로 정처없이 소요하고 유랑한다. 그것은 욕망과 열정을 지닌 모종의 여행이자 생이 소진하는 시간까지의 한정된 틀안에서 이루어지는 반복적인 삶의 여정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전통산수화가 보여주는 자연 속의 그 작은 인물들 역시 항시 어딘가를 향해 가는 중이었다. 그곳은 일종의 유토피아이자 군자의 생을 부려놓을 만한 공간일 수도 있고 현실적 삶과 쓰라리게 맞닿아있는, 경계에 위치한 또 다른 삶의 영역이기도 하다. 강서경 또한 그림이란 공간 안에 자신만의 낙원 내지는 지유와 몽상이 부풀어 오르는 영역을 지도화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현실적 삶의 무게나 중력을 조금은 덜어내고 소풍을 가듯,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며 또 다른 삶의 자취나 편린을 환각처럼 만나고 싶은 지도 모를 일이다.
화면은 몇 개의 베일로 겹쳐있다. 칠해지고 덮어나가고 다시 그 위에 얹혀진다. 여러 겹의 화면, 층과 공간이 환영처럼 솟아난다.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이미지가 슬그머니 출현하고 몇 겹의 오버랩은 회화의 다중적인 공간을 제시한다. 그림 안에는 구름이나 말풍선 같은 형상이 떠돈다. 얇은 단색의 표면이 여백처럼 남겨진 위로 물감이 몽실몽실 얼룩지거나 버무려지듯 섞인 자국이 자연스레 붓질로 남겨진 자리에 구름이 떴다. 구름의 형상을 한 이미지에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듯 물감이 줄줄 흘러내린다. 마치 비가 내리듯, 눈이 오듯 말이다. 혹은 구름이 눈물을 철철 흘리는 듯도 하다. 즉흥적이고 경쾌하게 그어나간 붓질/물감이 중력의 법칙을 받으며 아래로 흘러내리는 순간 화면 전체에 생동감이 감돈다. 그것은 물감의 질료들이 그 자체로 자신의 육체를, 생을 증거 하는 것이자 작가의 마음과 정신, 감정의 물화에 해당한다. 여기서 구름은 떠도는 것이고 고정된 형체를 지니지 못하며 일시적이자 가변적인 것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다. 그것은 실체가 없기에 잡을 수 없다. 순간 모였다 흩어지고 사라지기를 속절없이 거듭한다. 그 구름이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또 다른 풍경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구름의 형상 안에 또 다른 형상이 숨겨져 있다. 그림안에 그림이 있고 화면에 또 다른 화면이 숨어있는 형국이다. 그것은 부유하는 화면, 떠도는 극장이자 흘러 다니는 구름이다. 그 안에 고여 있는 이미지들은 작가가 꿈꾸는 장면,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의 이미지이자 추억과 잔상 같은 것들이다. 환각적으로 찰나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런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보여지기 보다는 일부는 가려지고 나머지는 여백, 텅 빈 화면 안에 잠겨있다. 보는 이들은 온전하게, 전일적인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볼 수는 없다. 많은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적게 보여주고 다 보여주기 보다는 일부분만 보여주는 편이다.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여백은, 운무나 안개 자욱한 풍경은 일부분만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다. 나머지는 상상하게 한다. 보여주는 것보다 상상하게 하는 것이 그 대상을 좀 더 잘 보게 하는 일이다. 꿈꾸게 하고 기억하게 하고 회상과 여운 속에서 사물과 대상을 추려내게 하는 것이다. 망막으로 모든 것을 보고자 하는 시욕망을 누그려 뜨리고 망막 이외에 몸이 지닌 다양한 감각기관과 정신적 활력을 통해 상상하고 지각하게 한다. 강서경의 화면 역시 그 같은 여백, 빈곳, 틈을 보여준다.
작가는 구름을 만지듯 그렸다. 그렇게 그린 이미지는 다시 영상으로 제작되어 또 다른 버전으로 보여진다. 작가가 그려놓은 드로잉, 그림들을 수집, 배열, 조합하는 과정에서 영상이미지가 탄생한다. 부동의 회화가 천천히 움직이고 사라지기를 거듭하면서 마치 구름의 실제적인 이동과 움직임 아래 그 안에 들어온 이미지를 느리게 보는 체험을 감각화한다. 이 단순하고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은 그녀의 그림을 잔잔하게 흔들어 움직여놓았다. 수면에 비친 흔들리는 이미지 같다. 그래서일까 부유하고 떠돌며 어디론가 하염없이 이동하는 인물들과 풍경이 화면과 더없이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조용히 흘러간다. 납작한 평면의 종이위에 올려진 그림들이 슬로우모션으로 이동한다. 그림과 영상을 보는 이들에게 이 현실을 잠깐 망각하고 어디론가 잠시 다녀오는 체험을 자극한다. 이렇듯 그녀의 작업은 한 순간 소풍 같은 체험을 경쾌하게 안긴다. 그것은 덧없는 순간의 생애를 견디는 여정과 여행에 대한 작가만의 전언에 해당한다. 아울러 정신적인 활력을 자극해 실세계를 지각하고 그림 너머의 세계로 몸과 정신을 유인해주던 산수화의 맥락 또한 새롭게 환생시켜준다. 그런 의미에서 강서경의 작업은 옛선비들의 수양적 차원의 그리기와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의 산수유람과 유사한 성격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을 사는 발랄한 젊은 이의 감수성과 동시대의 매체해석에 의해 번안된 것으로 말이다. ■ 박영택
Vol.20090710e | 강서경展 / KANGSEOKYEONG / 康瑞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