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ETWEEN

김영식展 / KIMYENSIK / 金英植 / video.installation   2009_0628 ▶ 2009_0707

김영식_In Between Girl with a Pearl Earring (Jan Vermeer)_단채널 비디오, 가변설치_00:08:03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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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KEPCO PLAZA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1층 Tel. +82.2.2105.8190 www.kepco.co.kr/gallery

그 사이에서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_헤라클레이토스 아무런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전시를 코앞에 두고 동료들과 제자들의 도움을 며칠째 밤을 꼬박 새워 설치한 오브제들을 영상으로 찍어놓았지만, 영상속의 이미지들은 생각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오일 파스텔의 제품마다 재료가 지니고 있는 물성들이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그나마 이것도 유학을 갖다온 후에 줄곧 간직해 온 생각들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다가 지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시작한 것인데...다양한 색으로 구성된 오일 파스텔을 작게 토막 내고 그것을 픽셀로 프린트된 그림 위에 색깔에 맞춰 하나하나 올려놓는 일이란 어린아이에게 병든 아이처럼 하루 종일 앉아 있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온 몸이 뒤틀리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또 부탁해야 하는가. 다른 곳에 전화를 하여 재료들을 가져온다 해도 이제는 지인들의 도움이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 아니 전시는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김영식_In Between Self Portrait (Vincent van Gogh)_단채널 비디오, 가변설치_00:06:57_2009

전시를 앞두고 일어났던 작가의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정황들과는 달리 그의 영상 작업은 바닷물이 밀려오면 휩쓸려 버릴 줄 알면서도 모래집을 쌓고 노는 아이들처럼 다양한 색깔의 오일파스텔을 작게 토막토막내고, 그 토막들을 하나의 픽셀과 같이 사용하여 미술사 속에서 익히 보아온 풍경이나 인물 등의 이미지들로 재구성하고 다시 그 오브제를 열을 이용하여 형체도 없이 녹여버리는 과정들을 다큐멘터리작가와 같이 영상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의 영상 작업은 한편으로는 힘겹게 설치한 오브제의 작업이 허무하게 사라져 니힐리즘에 젖어들 소지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뇌세포들이 멈추는 것 같은 그 절박한 상황들을 겪으면서도 그 영상이미지들을 뽑아내고 있다.

김영식_In Between Colours (Gerhard Richter)_단채널 비디오, 가변설치_00:07:49_2009

작가는 영상작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아니 과녁에 꽂힌 화살에 집중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영상은 플럭서스나 요셉보이스의 작업들처럼 결과에 있지 않다. 그에게 있어서도 초점은 그 과정에 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베르메르나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이 그린 그림을 오일 파스텔로 구성한 오브제들은 눈에 보이는 작가들의 작업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으며, 픽셀로 구성한 인물이나 풍경들과 그 오브제들이 열에 의해 추상적으로 녹아가는 과정과 그리고 다른 형체로 굳어 버린 오브제들은 그들 각자가 꿈꾸고 살아간 서로 다른 삶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김영식_In Between Crying Girl (Roy Richtenstein)_단채널 비디오, 가변설치_00:11:53_2009

고체에서 액체로 그리고 다시 고체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해가며, 열에 의해 녹아가는 영상이미지는 불교의 마야 사상을 접하는 것과 같은 하나의 환영을 선사하며 결국에는 원래의 오브제와는 달리 변형을 겪으며 전혀 다른 오브제로 변하는 오일파스텔의 운명들을 작가는 우리네의 삶에 비유하고 있다. "삶은 추상이다. 모든 것은 안개 속에서 나와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갖는 미래에 대한 꿈과 욕망, 죽음에의 공포, 과거에 대한 기억, 탄생에의 의지, 어느 것도 객관화할 수 없으며, 구체화할 수 없다. 한 순간 스쳐가는 현실은 그저 찰나에 불과할 뿐이며 우리의 삶은 실재와 괴리된 추상성 안에서 변화와 불확실성의 상태로 놓여진다."_김영식

김영식_In Between Still Life with Basket of Apples(Paul Cézanne)_ electrical heating system,오일 파스텔, 알루미늄, 스틸_70×100×75cm_2009
김영식展_한전프라자 갤러리_2009

불을 끄면 가끔씩 끝도 모를 공포로 다가오는 그 검은 심연과도 같은 우리의 삶의 실체를 멀리서 봐야 그 이미지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오일파스텔의 그 흐릿한 픽셀들이나 수십 가지도 되지 않는 색들이 녹아가는 영상이미지와 그 변형된 오브제로 위안한다는 것은 섣부른 비약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상상을 불허하는 개개인의 일상의 삶의 이야기들을 작가가 설정한 미술작가들의 오브제들과 영상이미지의 지표로 환원하여 그 잣대를 재는 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오브제들과 영상이미지는 개개인의 삶의 목적이나 의미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그의 오브제들과 영상이미지는 변화하고 유동해가는 그 과정에 바라보고 있다. 달리 말해 오브제들과 영상이미지를 통해 유추해서 이해하자면 각개인의 삶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듯이 각 개인들이 찰나와 같지만 서로 다르게 화려한 수를 놓으면서 변형되어가는 과정들의 집적들과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삶을 추동시켜가는 에너지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작가는 영상이미지들을 통해 묻는지도 모른다. 과속으로 질주하여 우리 모두가 도달하여할 삶의 실재가 존재하는지를. ■ 조관용

Vol.20090628c | 김영식展 / KIMYENSIK / 金英植 / video.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