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624_수요일_06:00pm_문화일보 갤러리 영화상영_2009_0624_수요일_08:00pm_복합문화놀이공간 몽환
참여작가_多畵안현숙_이기수_이수영_전수현_홍현숙
참여감독_김남표_박성용_이기수
후원_경기문화재단_문화일보갤러리_교하아트센터
1차 2009_0624 ▶ 2009_0707 관람시간 / 11:00pm~06:00pm
문화일보 갤러리_MUNHWA GALLERY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82.2.3701.5757 gallery.munhwa.co.kr
2차 2009_1021 ▶ 2009_1029 관람시간 / 10:00am~05:00pm / 둘째, 넷째주 월요일 휴관
교하아트센터_GYOHA ARTCENTER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 1692번지 3층 Tel. +82.31.940.5179 blog.naver.com/mamile
복합문화놀이공간 몽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52-30번지 Tel. +82.2.325.6218
도시 곳곳에 비어있는 집들이 있다. 그러나 그 집들은 또한 비어있지 않기도 하다. 누군가 머물던 시간, 그들이 남긴 기억과 품던 욕망, 한때 깊게 내쉬던 한숨까지 모두 그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공가 공갈단』은 이러한 '빈 집의 비어있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즉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노인의 쓸쓸한 뒷모습처럼 허망하게 변모해버린 집. 그 공간 어딘가에 곰팡이꽃처럼 고요하게 살아있는 갖가지 의미들을 발굴하고, 세상에 내보이려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다섯 명의 작가와 세 명의 감독 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비어있지 않은 빈 집'을 풀어낼 것이다. ● 프로이트는 '하임리히'와 '운하임리히'라는 개념으로 '인간과 공간에 대한 관계'를 설명했다. 이것이 『공가공갈단』이 '공가' 즉 '빈 집'과 인간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주요 개념이다. 이 개념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째, 인간은 폐쇄된 공간(어머니의 자궁 혹은 빈 집)에서 무한한 쉼을 누리고자 한다. 둘 째, 이렇게 평안과 안전을 추구하면서도, 무사와 폐쇄에 대해 숨 막힘과 지루함을 느끼곤 한다. 이렇듯 아이러니컬하고 모순적인 이중 심리. 이로 인해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다니고, 다시 여러 이유를 대며 그 공간을 떠난다. 우리네 삶을 '공간 찾기'와 '공간 벗어나기' 과정이라 설명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 이러한 심리의 발현은 다음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 재개발로 인한 집 허물기, 여행이라 이름 붙인 공간 떠돌기, 더 나은 공간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이주. 이렇듯 여러 방식으로 '빈 집', '공가'는 날마다 수 없이 생겨난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이렇게 버려둔 빈 집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한때 가슴에 불을 품지 않은 이가 있을까? 급속한 도시화와 현대화로 언제부터인가 보편성과 일관성이라는 틀로 묶이고 말았으나 그들에게도 한때 짜릿한 첫사랑과 달콤한 꿈이 있었다. 익명성과 몰 개성화의 강요로 사람들은 하나씩 공허하고 쓸쓸한 빈 집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자신의 빈 집을 견뎌낼 수 없어 바깥에 많은 빈 집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 『공가 공갈단』은 이러한 우리가 만들어낸 '빈 집'과 우리가 되어버린 '빈 집'을 다룰 것이다. 『공가공갈단』이 그려낼 그 공간은 '빈 집 속 비어있지 않은 집'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생을 다할 때까지 머물게 되는 많은 공간들. 그곳들이 사라진다고 그 안에 있던 많은 것들도 함께 사라지지는 않는다. 짙은 살 내음을 풍기며, 아픈 추억과 행복한 기억이 머물고, 피 흘리던 고통과 생이 주는 환희가 남아있다. 따라서 누군가 머물던 빈 집은 영원히 비어있을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눈이 가시광선만 포획할 수 있듯 우리의 마음은 필요충분조건에 충족되는 것만 바라본다. 그 조건에 충족되지 않아 마음으로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안현숙, 이기수, 이수영, 전수현, 홍현숙 등 다섯 명의 작가와 김남표, 박성용, 이기수 등 세 명의 감독들이 작품으로 구현하여 보여줄 것이다. ■ 김지혜
김남표_네 번째 이사-나는 최선을 다했다_20분 4초(2003년 인디비디오페스티벌/2004년 서울프린지 페스티벌) ● 나는 이사의 횟수가 반복되면서 나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네 번 이라는 이사의 횟수는 물리적인 반복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사의 본질을 인식하는 철학적 시간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곳과 오랜 시간을 약속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곳에 내가 최선을 다 했다면, 혹은 이곳이 나에게 최선을 다한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내가 이곳의 마지막을 안타까워하고 최후의 목격자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R. 내가 이곳의 소중한 기억을 담아내기 위해, 그러한 소중한 공간으로 허락되어지기를 바라며, 나는 여기서 최선을 다한다.
박성용_낯선 봄_26min(2005년 서울독립영화제 수상장) ● 케이블 TV 시사 프로 기자인 명진은 남대문의 에로 극장에서 노인들을 취재한다.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것을 보던 명진은 갑작스런 인터뷰 지시로 낯선 아파트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옛 연인이었던 미연을 스쳐 보낸다.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집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는 명진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 짓지만 곧 크나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기수_Absence_12min ●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시간적 순행의 내러티브적 구축을 이루고 이야기를 이해하며 주제성을 찾는 일반적 습관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내러티브라는 것이 디제시스적 시공 안에서 시간적 순행을 고집하지도 않을 뿐더러 - 실재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기억하고, 말하고, 이해하고, 고집하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 관객의 영화감상 행위 자체는 시간적 순행을 갖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상 이해의 문제 다시 말해 감상자 안에서 구축되는 내러티브의 맥락은 실재론 순차적 시간에 의해 정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감상자 안에서 그것은 시간적 역행을 이루기도 하고, 파편적 정보로 존재하다가 적절한 스토리적의 정보가 주어졌을 때, 순식간에 조립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잘못된 정보로 전혀 다른 내러티브를 구축하기도 하고, 나중에 수정되기도 한다. 이 중 어떤 것은 '반전'이라 칭하면서 감동하기도 하고. 감상자의 영화에 대한 이러한 분석적 습관이나 지적 부족에 의한 다양한 소비 행태는 결코 하나의 영화가 하나일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마찬가지로 생산자의 이것과 관련된 수사적 수법들은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모든 다큐멘터리조차 픽션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 공존(共存)이란 어떤 의미일까? 같은 시간에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공존을 보장하는 것일까? 우리는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한다는 것의 증거를 어디에서 찾을까? 함께 식사를 했다든지, 함께 영화를 봤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 어쩌면 타인과 함께 같은 시간대를 소비하고 같은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을 통한 위안은 아닐까…. 누구와도 같이 할 수 없음에 위기를 느껴서 시간에 집착하고 공간에 의존하며, 그렇게 위로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실로 누군가와 같이 할 수 없음의 슬픔이란, 같은 시간에 같이 하지 못함과 같은 공간에 같이 할 수 없음의 고통보단 같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함에도 같이 할 수 없음은 아닐까. ■
Vol.20090624f | 공가공갈단(空家恐喝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