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윤展 / BO-RI YOON / 菩提尹 / painting   2009_0617 ▶ 2009_0630

보리윤_A plant_캔버스에 인쇄된 종이 콜라주_162.1×112.1cm_2008

초대일시_2009_062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2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콜라주의 연금술 ● 화가 보리윤이 새로운 작품을 들고 개인전을 연다. 몇 년전 대학원 실기실에서 보았던 그림과는 사뭇 다른 양식이다. 무엇보다 작품 변화의 결과가 이전보다 더 한층 뚜렷한 독자성을 담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작가 스스로 이 새로운 양식의 도전과 천착에 즐거운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 이번 보리윤 개인전에서 주목해야 할 비평의 초점은 '캔버스에 인쇄된 종이 콜라주' 다. 요컨대 작품 재료와 기법이 논의의 핵심이다. 보리윤은 잡지 낱장을 5mm 이내의 좁은 폭으로 잘게 잘라 그 수많은 종이를 일일이 대형 캔버스에 손으로 붙여가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잘게 썰어놓은 인쇄된 종이 자체를 붓과 물감 기능으로 대체하고 있다. 종이 조각을 팔레트보다 다양한 색면으로, 연필보다 날카로운 선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모자이크 작업이나 자개 공예 같은 단순 반복 노동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 화면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회화적 뉘앙스는 놀랄 만큼 신선하고 풍부하다. 그 색채와 형태와 마티에르가 우리가 익히 보아 왔던 정통 유화 기법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독특한 조형의 맛을 내뿜고 있다.

보리윤_A chair_캔버스에 인쇄된 종이 콜라주_72.7×116.1cm_2007

보리윤 작품의 매력은 '콜라주의 연금술' 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캔버스 위에 펼쳐져 있는 종이 콜라주의 표정이 참으로 경이롭다. 잡지에 인쇄된 본래 그대로의 색채를 존중하면서도 물감을 살짝 가미하기도 하고, 종이를 붙인 면과 바탕 면 사이에 얇은 골이 생겨 미묘한 저부조 효과를 이뤄내는가 하면, 미세한 색감 차이로 일정한 방향으로 내달리는 종이 결은 물감을 스퀴즈로 밀어낸 듯한 혹은 촘촘하게 짜내려간 섬유 결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잡지 위에 적혀 있는 깨알 같은 글씨가 투명한 빛이나 붓 터치처럼 반짝거리기도 하고, 지푸라기나 털, 실 같이 가늘고 얇은 종이가 작은 숨소리에도 날아갈 듯 가볍게 떨고 있으며, 종이 부스러기가 물감이 튀겨나간 파편처럼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리윤의 작품에는 종이의 물성, 저 풍부한 촉각성이 세포 조직처럼 꿈들대며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리윤의 콜라주는 자연 속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보리윤_A tree_캔버스에 인쇄된 종이 콜라주_193.9×130.3cm_2009

따지고 보면, 보리윤의 콜라주 작업 방법이 아주 새롭거나 대단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잘 알다시피 20세기 미술을 콜라주의 역사로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종이의 방법론' 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미학적 태도는 시대와 작가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입체파 화가들이 처음으로 그림에 부착한 신문지 조각은 사물의 기능과 그림 속 가상의 이미지 두 역할을 동시에 맡았다. 콜라주가 화면의 구도, 색채, 실체감을 강조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형 수단이었던 것이다. 한편 다다이스트들은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를 오려 붙이는 방법뿐만 아니라, 실밥 머리카락 깡통 철사 모래 같은 재료로 폭을 넓혔다. 이들의 작품은 콜라주를 통해 이미지의 연쇄반응을 일으켜 어떤 의미를 기대하는 관객들의 시선을 냉각(배신)시키는 기능을 띠었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전혀 엉뚱한 사물끼리의 이질적인 조합, 부조리한 병치(데페이즈망)를 강조해 콜라주가 상징적 비유적 기능을 맡도록 했다. 라우센버그로 대표되는 네오다다이스트들의 아상블라주도 미학적 원천은 바로 콜라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콜라주는 20세기 미술의 혁신과 진보에 크게 기여해 회화의 '그리기' 역사를 '만들기' 의 역사로 물꼬를 돌린 것이다.

보리윤_A plant_캔버스에 인쇄된 종이 콜라주_162×227cm_2009
보리윤_A piant_캔버스에 인쇄된 종이 콜라주_65.2×90.9cm_2008

보리윤의 콜라주 작업은 과연 어떤 양식으로 풀이할 수 있을까.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그녀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 첫째, 초기 작품은 회화에 부분적으로 콜라주를 도입했다. 동물 그림과 식물 콜라주의 조합, 바다 풍경의 하늘에 느닷없이 떠 있는 소파 콜라주는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엉뚱한 사물들의 만남처럼 저 상상의 자락을 붙잡는 재미가 솔솔하다. 이 부류에서는 콜라주가 소극적으로 기용되고 있지만, 하나의 조형 요소로서 분명한 의도를 띠고 있다. 콜라주가 사물의 구체감을 드러내는 수단이나 드로잉의 요소로 등장한다. 결국 이 경향은 회화의 영역을 고수하면서 또 하나의 표현 무기로 콜라주를 활용하는 다소 '보수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안전한' 작품 경향이기도 하다. ● 둘째, 콜라주가 올오브(all-over)의 화면으로 치닫고 있는 작품이다. 최근 보리윤은 콜라주 기법을 좀더 자기화함으로써 자유자재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꽃이나 식물 혹은 소파 같은 일상 기물들의 재현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직은 구상 이미지에 종이 조각의 외피를 입히는 단계이지만, 콜라주로 완전히 뒤덮힌 캔버스는 이제 하나의 오브제로 발전해 사각의 틀 밖으로까지 표현이 확장되고 있다. 평면 회화와 오브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즈음에 이르면 앞으로 좀더 적극적인 오브제의 수용을 예상할 수 있다. 이 부류는 다다적 모험이 깃든 '진보적인' 작업이지만, 구상적 표현 수단을 뛰어넘는 또 다른 '콜라주 미학' 이 요구되는 '힘겨운' 작업이기도 하다.

보리윤_A tree_캔버스에 인쇄된 종이 콜라주_90.5×65.5cm_2009
보리윤_A plant_캔버스에 인쇄된 종이 콜라주_116.1×72.7cm_2007

보리윤은 왜 하필 콜라주를 선택했는가.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지만, 콜라주의 '발견' 못지 않게 더 중요한 것은 작가 스스로 이 표현 무기를 조형의 진폭에, 감동의 울림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의 문제일 터이다. 왜 하필 콜라주여야 하는가. 보리윤 작품에서 '콜라주의 필연성' 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작품의 필연성' 으로 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 화가 보리윤의 작품 성숙도를 풀어나갈 열쇠가 매달려 있지 않겠는가. ■ 김복기

Vol.20090624c | 보리윤展 / BO-RI YOON / 菩提尹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