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 PINK

2009_0624 ▶ 2009_0630

초대일시_2009_0624_수요일_06:00pm

오프닝행사_(작품 경매, 핑크드레스코드설정) 경매수익중 일부는 나눔기금으로 사용됩니다.

참여작가 박정재_최경순_원보현_임영준_엄순녀_김영수_이영애_변수옥_김미화

관람시간 / 09:00am~06:00pm

정독갤러리_JEONGDOK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길 19(화동 2번지) 정독도서관 본관 3층 Tel. +82.2.2011.5774 www.jeongdoklib.go.kr

현대인들은 / 지독히 감각적이다. / 시각적 극단성은 이미 끝을 넘어섰다. // 色 / 일상속에 부딪치는 수많은 color들 // PINK / 우리는 분홍을 택했다. // 단순히 눈에 비추어진 감각적 색으로부터 / 뇌로 전이되며 서서히 성장을 시작한다. / 여인으로 변화하고, 성적으로 변이되고, 또 다시 왜곡되고, 잘근잘근 곱 씹어져 전혀 다른 하이브리드로 탄생한다. / 순수와 야누스의 이중적 면모를 갖으면서 / 때로는 분홍으로 때로는 PINK로 각인된다. / 하지만, / 인간은 회귀의 본능을 가졌다. / 결국 시간은 우리를 다시 순수의 자연으로 돌려놓는다. //『분홍 & PINK』展 / 감성과 지성의 즐거운 접근을 시작한다.(김영수, 작가노트 중) 『분홍 & PINK』展! ● 9명의 작가가 세상이 가진 갖가지 모습, 인간이 가진 갖가지 내면의 의지와 욕망에 질문을 던진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인가? 이 세상이 나에게 스스로를 드러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있어 세상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인가? 그 세상과 나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우리가 부닥친 척박하고 각박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며, 그 현실에 길들여진 인간들이 앞 다투어 내보이는 갖가지 욕망의 부질없음을 어이 표현할 것인가? ● 이런 질문 앞에 색(色)과 형(形)과 필(筆)로 소박하게 그 대안을 모색한 것이 『분홍 & PINK』展이다.

김영수_싸이코패스-호순씨의 하루_플라스틱_가변설치_2009

우선 김영수의 설치에 이용된 매체는 공격과 저항의 이미지를 가진 곡괭이이다. 그 곡괭이가 보이는 다채로운 색은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성향의 인간들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인간들은 마음에 어떤 목표와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곡괭이 자루 끝의 여러 문양들이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매체들의 누워있는 모습과 그 아름다운 색을 통해 김영수는 세상에 대한 인간 욕망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조화로운 배열, 비록 완전한 원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나름의 조화가 인간들이 만들 화합의 공동체에 대한 꿈을 드러내고 있다.

임영준_뱀의식탐_혼합재료_53×45.5cm_2009

임영준 역시 뱀이라는 동물을 메타포로 사용하면서 인간이 가진 탐욕의 끝을 경고하고 있다. 뱀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종교적으로도 악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이 메타포가 현실과 인간에 대해 인간 스스로가 행할 수 있는 위해(危害)의 가능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악의 끝이 무엇인지를 임영준은 생생하고 사실적인 필치를 통해 힘주어 표현하고 있다.

변수옥_무소의 뿔처럼-0901_혼합재료_48×33cm_2009

변수옥의 작품「무소의 뿔처럼」은 적막한 숲속에 홀로 거대한 뿔을 앞세운 무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언뜻 보아도 거대한 무소는 현재의 욕망에 사로잡힌 고독한 인간의 원형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강한 무소와 어울린 자연이 있다. 나비와 꽃, 연약한 풀들이 그것이다. 강한 자에게 약한 자들이 함께 하기에 그 강자의 고독은 아름답다. 세상에 대해 크고 높은 뿔을 세우고 있지만, 세상에 대해 귀를 열고 세상을 선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그 모습만으로도, 진정 강한 자의 위상이 무엇인지를 변수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정재_遊我(유아) 09-3_한지에 채색, 연필_33×80cm 2009

박정재의 그림은 동심의 이미지를 단박에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인간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나'의 원형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이기적인 욕망과 경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암시하면서,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모두가 하나 되어 아울린, 그 환상의 동심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진정 걸어야 할 곳은 우리가 떠나온 그 자리로의 회귀가 아닌가?

최경순_봄-설레임I_캔버스에 유채_45.5×37.9cm 최경순_봄-설레임II_캔버스에 유채_45.5×37.9cm

최경순은 우리들 내면에 은밀하게 존재하는 무한의 그리움을 끄집어내고 있다. 하얀 고무신이 갖는 모성에 대한 그리움은 아마도 우리들의 집단무의식일 것이다. 그 모성에 대한 그리움은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박정재의 동심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부정할 수 없는 원형이 아닐까? 최경순은 디딤돌 위에 놓인 반듯한 고무신과 서로 엇갈린 고무신의 모습을 통해 모진 현실을 무던히도 견딘 강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그 이미지를 아름다운 환상의 색조와 어울림으로써 모성의 그리움을 자연의 실체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영애_기다림_혼합재료_17.9×25.8cm 2009 이영애_동행_혼합재료_17.9×25.8cm 2009

이영애의 그림 역시 이런 환상적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세상의 조화를 화폭에 쏟았다고나 할까? 하늘을 상징하는 파랑색과 인간을 의미하는 빨강색이 만나 이루어진 다채로운 톤의 보랏빛은 곧 신과 인간의 조화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하얀색은 순수를, 하얀색을 두른 빨강은 열정이다. 이처럼 이영애는 신과 인간, 순수와 열정의 화합이라는 생의 찬가를 화폭에서 노래하고 있다.

원보현_미끄러지는 욕망_한지, 흙, 아크릴채색_120×270cm

이런 환상성을 통해 현실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가들과는 달리 삶과 죽음의 하나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이 있다. 원보현의 설치 작품이 그것인데,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나무와 삶의 희망을 상징하는 나비가 만나고 있다. 생명력을 상실한 나무는 바니타스(Vanitas) 즉 덧없는 인간 욕망과 죽음의 전형이다. 세상에 대한 모든 욕망과 희망을 뒤로 한 채 이미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넌 존재이다. 그러나 그런 죽음이 있기에 새로운 삶으로의 윤회가 가능한 것인가? 원보현은 죽음과 사라짐을 새로운 생명과 존재의 가치로 드러내면서, 결국 죽음과 삶의 근원적 동질성을 비치고 있는 것이다.

김미화_자연-Space_혼합재료_60×20cm 2009

김미화 역시「자연-Space」를 통해 삶과 죽음이 가진 본연의 의미를 재고하며,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죽음에서 돋아난 생명과 그 생명의 사라짐, 그리고 그 사라짐은 곧 또다른 생명으로 거듭 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의 반복이 계속되는 공간은 무한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비추어진다.

엄순녀_여인_종이에 먹_30×20cm

이런 인간 욕망의 무가치함, 인간의 아름다운 원형, 생명의 영원성 등이 이번 전시의 주된 메시지라면, 이런 메시지 자체가 결국은 자연과 인간의 일치, 존재와 무의 하나됨, 있음과 없음의 조화임을 단언한 작품이 있다. 바로 엄순녀의 인체 크로키이다. 완숙한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아름다운 여체다. 여체는 인간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현현된 것이다. 그 부드러움이 또한 잉태라는 생명의 창조와 연관된 것이다. 그리고 그 여체의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 무의 공간 즉 여백과 일치를 이루며, 인간의 모습이 자연과 하나일 수밖에 없음을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다. 넉넉함과 무소유라는 각박한 현대문명의 해답을 그렇게 소박하고 부드럽고 은밀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부드럽고 자유로운 필선이 이룬 인체의 아름다움, 그 자태는 인간이 아름다움이 원천이며 그 아름다움 때문에 인간은 자연과 하나됨을 기록하고 있다. ● 『분홍 & PINK』展 세상의 모습은 다양하게 드러난다. 온간 탈과 허울을 뒤집어쓰고 스스로의 모습을 과시한다. 세상을 분간하고 판단하는 눈으로는 그 다양한 겉모습에 현혹되어 그 이면의 진실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양한 모습이 결국은 같은 모습이라는 것, 다르기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 같은 것이며, 다르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이번 전시가 보이고 있다. 그렇게 다양함과 변화됨이 같은 운명임을 본 순간, 모두가 하나가 된다. 그 하나란 우리가 한 공동체 안에 있음이며, 결국은 서로에 대한 따스한 공감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하나됨의 길목에 예술이 함께한다면, 그 공감은 더욱 아름다운 옷을 입을 것이다. 이는 '분홍'과 '핑크'가 다르지만 하나인 것과 같은 것이다. 『분홍 & PINK』展은 다름이 예술의 이름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하나가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 권용준

Vol.20090623g | 분홍 & PINK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