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의 무게 (The Weight of My Words II)

홍경님展 / HONGKYEONGNIM / 洪景壬 / sculpture   2009_0623 ▶ 2009_0630 / 월요일 휴관

홍경님_잠자는 물과의 대화_A Conversation with a Sleeping Water_나무_높이 55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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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북촌미술관_BUKCHON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가회동 170-4번지 청남문화원 Tel. +82.2.741.2296 www.bukchonartmuseum.com

홍경님의 나무조각들은 대부분 인물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의 인물상들이 목표로 하는, 어떤 특정한 인물에 각인된 특화된 삶의 역사나, 그 인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건과 행위를 겪는 인물의 감정이나 내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 인물들은 개성을 나타내기보다 때묻지 않고 앳된 청춘의 보편적인 얼굴들로 제각각의 인물들이 모두 한 인물로 보이며, 심지어 소년들은 미소년들로 소녀들과 성적인 구별이 흐릿해 보인다. 이것은 인물의 개성을 지움으로써 청춘의 보편적인 인물상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한 개인의 내면을 표출하기보다 객관화된 청춘의 보편적인 감정과 내면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홍경님_직설법이 필요한 나날_In Plain Words, Please_나무_높이 50cm_2009

조각된 미소년(소녀)들의 얼굴을 바라볼 때 우리는 경련하던 영혼의 한 순간에 붙들리고 마는데, 우리를 매혹하는 그 영혼은 무엇보다 인물상의 눈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눈은 이 인물들이 겪는 청춘의 사건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열정과 상처 그 자체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눈(眼)속으로 뛰어드는 물고기의 퍼덕이는 꼬리를 형상화함으로써, 눈이 사로잡힌 영혼의 현장임을 시적인 은유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물고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실체로 우리의 손아귀를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때문에 끝없이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등장하며 소녀의 눈은 사랑의 상처이자 영혼의 상처를 표상한다.

홍경님_양을 안고 돌아오는 밤 A night stroll with a sheep_나무_높이 61cm_2009

소년은 이별의 사건 이후 눈(혹은 귀)을 닫아버리고 (「세 번이나 잊은 이름」, 「직설법이 필요한 나날」그것은 이별의 사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표면적인 의미 너머로 이별은 영혼을 닫아버리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임을 암묵적으로 표현한다. 또는 이별은 눈(혹은 귀, 혹은 영혼)을 스스로 파내어버리는 암흑과 같은 것임을 직감으로 깨닫게 한다. 눈과 귀를 닫아버리거나, 가슴이 뚫려 물이 새거나, 몸에 뾰족한 삼각형이 박힌 소년 소녀들. 이처럼 청춘의 고통은 신체에 대한 비유적 형상으로부터 표출되는데, 이러한 은유적 형태가 없는 다른 작품들의 사실적인 눈에도 내면의 수심을 측량하는 기관으로 청춘의 신비한 영혼을 엿보게 하는 알 수 없는 매혹이 깃들어 있다. 이 우수에 젖은 눈들은 바깥을 내다보는 게 아니라 골똘하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한다. 마침내 바라보던 우리도 그 시선을 따라 각자의 영혼에 닻을 내리게 된다.

홍경님_세 번이나 잊은 이름 forgotten name_나무_높이 81cm_2008

작가는 나무가 인간의 형상, 특히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는 재료로는 더 없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조각이 인간의 모습과 닮으면 닮을수록 느낌이나 생각 같은 추상적인 것을 형상화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 추상적인 조각이 아닌 구상적인 조각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을 구상화하는 것이, 가장 그럴싸한 내적 질서를 가진 형상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조각에 채색을 하는 것은 사실성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한 전략이다. 나무의 질감 또한 다른 재료의 질감에 비해 인간의 살이나 옷 같은 천의 질감에 한층 가깝다.

홍경님_17개의 베케트 17 Beckett_나무_높이 45cm_2008

전시 제목이 '말(言)의 무게'라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홍경님의 목조각은 말(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작가는 언어를 먼저 조합해놓고, 그걸 바탕으로 형상을 만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까지 해본다. 이 언어의 조합은 시(詩)에 가깝다. 홍경님 작품의 테마가 인간의 감정이나 내면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홍경님의 '말'은 언어의 긴장을 통해 감각과 내면의 깊이를 건져 올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말은 자칫하면 형상에 필요 없는 군더더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우려 때문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조상(彫像)과 언어를 나란히 디스플레이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나는 작가에게 형상과 언어를 뒤섞는 형태를 한번 시도해볼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테마를 한층 깊이 있게 파고들기 위한 흥미로운 실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채호기

Vol.20090623d | 홍경님展 / HONGKYEONGNIM / 洪景壬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