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된 생태의 구조_흔적과 생성

정소영_정창권展 / photography   2009_0619 ▶ 2009_0702 / 일요일 휴관

정창권_디지털 프린트_110×165cm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브레송_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충무로2가 고려빌딩 B1 Tel. +82.2.2269.2613 cafe.daum.net/gallerybresson

정소영과 정창권의 사진은 변형된 풍경의 개념으로서 자연의 흔적을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으로 보여준다. 그 세계는 죽음의 잿더미로 변해버린 자연의 존재를 사회적 혼란의 이미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미적대상의 상징물로 지각하고 형상화시킨 풍경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은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과 균형감을 제공하며, 미학적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생태학적 위기의 시대에 자연은 스스로 새로운 규범을 만들고, 예술가는 그것에 대응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와 결부된 사유가 시작된다. 즉 사진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 가능성과 재현 가능성의 영역에서 그들이 지각하고 인식한 체험을 번역하여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두 사진가들의 작업에서 드러난 풍경이미지는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 필연적으로 무상할 수밖에 없는 우주적 순간에 대한 실제적 표상이다. 이러한 관점은 자연은 불변한다는 존재론적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헤라클레이토스의 "모든 것은 흐른다" 라는 명제처럼 존재와 소멸, 그리고 생성의 문제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한다. 즉 자연의 근본 원리는 끊임없는 운동과 변화, 그 속에서 투쟁이라는 필연성에 의해 생성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정소영_디지털 프린트_81×102cm_2005

정소영과 정창권 작업의 공통적인 주제는 단순히 파괴된 자연 혹은 그것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 작업의 근본적인 매개체는 신에 의해서도, 인간에 의해서도 아닌 스스로 타오르기도 하고 꺼지기도 하는 아르케로서의 불이다. 즉 이 불 속에서 모든 것들이 소멸되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불은 우주의 본성에 대한 상징으로서 생성과 투쟁의 원리를 가장 장 설명해 주는 물질적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불은 자연의 과정이며 동시에 자연의 실체이고, 자연과 세계를 다스리는 이치이자 모든 생성과 순환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이들의 작업은 자연을 생성과 소멸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접근하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특히 자연을 생성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간의 개념이다. 시간은 추상적인 과정을 의미하며, 자연의 전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해주는 추상적인 실체이다.

정창권_디지털 프린트_68×102cm_2009
정소영_디지털 프린트_65×81cm_2005

정소영의 작업은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발생했던 산불로 폐허가 된 대지에서 새롭게 싹트는 생명의 근원들을 통해 물리적인 시간 개념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자연의 실체는 멈추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움직이며 변화를 위한 투쟁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어쩌면 당연한 생성의 진리를 환기시켜 준다. 작가의 시각은 사물을 향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불에 타 쓰러지고 넘어진 상처투성이의 가시적인 외형이 아니라 자연의 은폐된 언어를 지각하고 이해와 교감을 통해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정창권의 사진은 경주 선도산의 산불이 난 직후의 모습을 매우 직설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여준다. 숲에 존재하던 모든 생명이 죽음으로 변한 흔적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눈 쌓인 초겨울 풍경을 연상시키며 정적이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곳에서 시간은 부동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 같다. 작가의 낭만적인 시각은 불티가 되어 흩날리다 대지 위에, 검게 그을리고 벗겨진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이름 모를 무덤가에 내려앉은 소멸의 수많은 흔적으로 제시됨으로써, 자연을 구성하는 현실성의 원리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정창권_디지털 프린트_68×102cm_2009
정소영_디지털 프린트_110×152cm_2005

자연은 말이 없으나 사시사철에 따라 만물은 생성하고 번창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들 두 작가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심리적 거리감은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연이 스스로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며,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한 자연의 언어를 사진이라는 변형된 메커니즘을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강혜정

Vol.20090619d | 순환된 생태의 구조_흔적과 생성-정소영_정창권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