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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_화신공업주식회사 후원_한데우물 문화공간_행궁길발전위원회_수원의제21추진협회
1부 2009_0612 ▶ 2009_0621 초대일시_2009_0612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평일 11:00am~06:00pm / 일요일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눈 ALTERNATIVE SPACE NOON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232-3번지(보시동 3길 15) Tel. +82.31.244.4519 www.galleryartnet.com
2부 2009_0623 ▶ 2009_0628 작가와의 대화_2009_0623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평일 11:00am~07:00pm / 일요일 0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한데우물문화공간 갤러리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23번지 대민빌딩 cafe.daum.net/suwonartstreet
고통으로부터 치유의 '핀수' 놓기 ● 작가 이인경은 '핀'을 주요 매체로 하는 일관된 작업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의 지평을 탐구한다. 그동안 그녀는 선인장의 가시라든가 이끼 같은 뾰족하거나 가느다란 식물 형상을 핀으로 대치, 형상화하는 작업 방식을 통해 핀의 외형이 연상시키는 '의사(擬似) 이미지' 구축에 집중해 왔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핀을 무수히 꽂아서 집적시키는 멀티플 전략으로 그녀의 작업은 핀이라는 호흡 없는 오브제에 식물성의 호흡을 부여하고 무생물로부터 생물성의 이미지를 창출해내었다는 유의미한 미학적 평가를 받아왔다.
손(手)으로 점묘식 '핀수(pin-繡)' 놓기 ●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핀의 몸체가 드러내는 가냘픈 이미지 보다는 멀티플 양태로 군집한 핀의 머리들이 유발시키는 점묘법과 같은 이미지에 집중한다. 핀의 집적은, 평면 위에 납작하지만 덩어리를 가지며 포지티브하게 올려지는 물감이나 잉크를 대신하는 방식으로, 평면에 구멍을 만들면서 전면과 배면을 관통시킨다는 점에서는 네거티브 방식이지만 그럼으로써 핀이 고착되어 평면 위에 올라선다는 점에서 보다 더 적극적인 포지티브 방식을 창출한다. 이 네거티브와 포지티브의 양립은 그녀의 조형세계를 구축함에 있어 매우 수고스러운 노동력을 요구하게 만든다. '핀을 군집시킨 점묘식 회화'를 위해서 작가는 핀 하나하나를 손으로 일일이 촘촘하게 박아 밀집시켜야만 하며 일정한 정도의 깊이로 조절해 박아야만 한다. 여기에는 스티로폼을 재단하고 천을 입히는 기본 과정 외에도 핀과의 접촉지점을 헐겁게 하지 않기 위해 접착력 강한 미디엄을 여러 차례 올려 바르는 번거로운 과정도 필요하다. 그것은 작가의 언급대로 바늘로 한 땀 한 땀 꼼꼼하게 실을 밀집시켜 자수(刺繡)를 놓는 노동력에 비유할 만하다. 그 수공예적 노동력이 큰 만큼 작가는 '핀, 수를 놓다'는 전시제명에서 원래의 한자인 수(繡)를 수(手)로 치환해서 수예(手藝)적 노동력의 의미를 강조했다. 즉 작가는 전시제명을 통해 '핀을 수(繡) 놓는 형식으로 일일이 손(手)으로 박아내는' 자신의 작업을 간략히 설명하면서 그것의 의미를 탐구해나간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그녀의 작업 '핀으로 놓는 수'를 '자수'의 경우처럼 '핀수(pin-繡)'라 명명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을 읽는 우리의 관건은 취미, 여가의 활용 측면에서 규방공예로 정착된 것으로 인식 되어온 '자수'를 '여인에게 부여된 고통과 인내의 산물'로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을 확인해내는 일이다. 규방공예란 '조선의 유교적 체제 아래서 남녀유별과 같은 윤리적 압박이 만들어낸 차별화의 장이자 조선 여인들이 담장 안에서 피어올린 애(哀)의 꽃'이라는 관점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막중한 노동력에 의해 비로소 생산되는 공예라는 점에서 고통과 인내의 산물임에는 분명하다. 고통과 인내 그리고 막중한 노동력은 작가 이인경이 우리의 전통자수를 바라보는 관점이자 '손(手)으로 점묘식 수(繡)를 놓는' 자신의 작업을 대면하는 창작 태도가 된다.
수고스러운 노동력과 고통-기다림의 미학 ● 전통 자수를 바늘귀가 이끄는 실의 교차에 의해서 만들어진 노동력의 결집이라고 한다면 작가 이인경이 놓는 핀수는 핀이 바탕위에 단단히 직립하기 위해서 야기한 무수한 노동력의 결집이랄 수 있다. 핀을 스티로폼 바탕 위에 단단히 박아내기 위해서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가느다란 핀에 온통 힘을 집중해야 할뿐더러 엄청난 체력을 소진해야 하는 창작과정에서의 고통도 그렇지만, 작가가 도래할 완성작품을 인내하며 기다린다는 점에서 고통, 노동력, 인내, 기다림과 같은 요소는 그녀가 감당해야 할 창작을 위한 의무 이행조건이며 한편으로 그것은 그녀의 작업이 배태하고 있는 미학이기도 하다. "핀 작업은 마치 '수'를 한 땀 한 땀 놓아가며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수'를 놓는 행위는 과거 여성들의 인내의 결과물이며, 시간의 기다림으로 만들어진 바람의 상징물이다. 나 역시 핀을 꽂아가는 인내의 기다림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나의 바람을 만들어 간다." 작가노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녀의 언급처럼,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선보이는 신작들은 핀을 집적시키는 이전의 멀티플 전략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전작보다 한층 더,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운 노동력, 인내, 기다림과 같은 요소들을 두루 포진시키고 있다. 그녀의 신작에서, 문양이 패턴의 양식으로 새겨진 색천 위에 다시 크게 확대한 고유의 전통 문양이나 이미지의 본을 뜨고 그곳에 핀을 무수히 꼽아가는 행위는 전통 자수의 주제, 내용, 형식은 물론 그 제작과정마저 계승한다. 그것은 완성작품을 기다리는 과정을 요구함으로써, 고통스럽고도 고단한 노동력을 배가시킨다. 그런 까닭일까? 그녀의 신작에서 귀면상의 눈가로부터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작품「귀면의 눈물」이나 원앙 한 쌍이 한가로이 노니는 작품「너를 보며... 울다」에서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원앙 한 마리 또는 연잎을 바탕으로 외로이 홀로 서 있는 학 한 마리를 보여주는 작품「학과 연」에는 는 마치 완성을 향해가는 기다림과 고단한 노동력에 지친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고통과 치유의 접점 ● 흥미로운 것은 작가 이인경의 기다림의 미학이 야기한 고통과 인내는 작품 완성과 더불어 즐거움, 기쁨과 상호 교류하며 섞여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완성 지점에 이르기 전의 창작의 고통마저 기쁨으로 희석시키게 된다. 그래서 작가는 고되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움을 동시에 체득케 하는 자신의 작품 창작에 스스로 매료된다. 작가는 전통 문양을 크게 확대해 그린 선묘를 따라가며 완성을 기다리던 창작으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보다 자유로운 지점을 실험하고자 한다. 즉 전통문양의 주어진 선묘를 따라가는 경직성으로부터 탈피해서 이미지 자체를 자유롭게 해석하여 만들어가는 방식을 시도한다. 그것은 마치 동양화에서 선묘에 치중하는 구륵법(鉤勒法)으로부터 농담을 중시하는 몰골법(沒骨法)을 찾아 나선 것 같은 양태를 띤다. 그것은 선묘를 따라 자신의 자리를 채워나가던 '핀으로 수놓기'가 핀이라는 매체적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오묘한 식물성을 지닌 꽃의 사진 이미지를 기본 토대로 하되, 자신이 해석한 이미지대로 핀을 꽂아가며 꽃의 형태와 농담을 조절하며 화면 위에 펼쳐내는 작업이다. 최근 흰 바탕위에 그녀가 핀으로 수놓는 꽃의 이미지는 화면의 깊이를 창출하기 위해 핀들이 깊게 혹은 얕게 박히며 높낮이를 조절할뿐더러 먹물의 농담의 조절과도 같이 핀들의 밀집과 분할이 적절하게 배분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도 한의학의 교본의 정석대로 한 땀 한 땀 침을 따라 놓던 수련의로부터 훌쩍 벗어나 민첩하게 혈(穴)을 잡아가는 노련한 한의사의 침술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작가 이인경의 '핀수' 놓기는 이제 공예적 바탕 위에 기초하기 보다는 침술의 치유적 바탕에 정초한다. 가히 '치유의 핀수 놓기'라 할 만한 그녀의 작품은 고통과 치유의 접점 속에서 양자를 신명나게 왕래한다.
이미지로부터 '이미저리(imagery)' 혹은 '이마골로기(imagology)'로 ● 작가 이인경이 전통 자수 놓기를 번안한 방식으로 실천한 '핀수 놓기' 작업은 고통과 인내로부터 회복과 치유의 지점까지 횡단하며 새로운 미감을 창출한다. 건조하고 딱딱한 인공의 핀을 통해 부드러운 식물성의 이미지로 치환하는 재기발랄한 재료미학이나 무수히 핀을 집적하는 수공적 노동력이 돋보이는 창작을 통해 담보하는 작가적 신뢰감도 그러하지만 미적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그의 창의적 발상은 그녀 작품이 갖는 미덕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업은 핀이 상기시키는 이미지의 의사성(擬似性))에 지나치게 의탁함으로써, 핀이라는 매체적 속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조형화해내지는 못했다는 비판적 차원 또한 열고 있다. 핀의 몸체가 드러내는 가느다란 외형적 특성에 기대어 있거나(초기의 선인장과 같은 식물이미지와 연관한 작업), 핀머리가 시각적으로 유발시키는 작은 점과 같은 비주얼을 이미지를 통해 점묘법과 같은 이미지 창출을 시도한 작업 방식(초기로부터 현재까지)은 다분히 핀이라는 매체가 드러내는 외형적 속성에 기대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녀는 다른 시리즈의 작업에서 핀의 또 다른 속성, 즉 찌름, 관통시킴과 같은 기능적 속성을 이용해서 상처, 고통과 같은 피학, 가학적 이미지(예를 들어 얼굴이 있는 사진 위에 핀을 무수히 꽂아낸 작품)에 대해서 성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리즈 작업은 또 다른 차원으로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하고 초기와 현재 작업 사이에 끼어있는 과도기적인 작업이 되고만 측면이 있다. 작가의 진술대로 핀은 매체와 또 다른 매체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그것이 강력한 접착제가 아닌 비영구적이고 임시변통적인 연결을 위한 매개체라는 점은 그의 작업이 기초하고 있는 지점이지만 이미지의 현현을 위해서 도구화되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핀이 갖는 매체적 속성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성찰을 간과하기에 이른 지점 또한 없지 않다. 작가가 비주얼 차원의 이미지 구현에 지나치게 집착해온 탓이다. 향후, 그녀의 작업이 자신만의 독자한 영역을 지금보다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핀이라는 매체적 속성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이미지에 골몰하기 보다는 이미지로부터 이미저리 (imagery) 나아가 이마골로기(imagology)로 확장하는 다양한 실험적 모색이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학용어로 출발한 '이미저리'는 '언어를 통해 마음 혹은 정신 속에 생산되는 이미지군(群)의 결합'을 의미하는 만큼 복수의 이미지에 기초한다. 그것은 '한 이미지'에 부가하는 내러티브의 다양함만큼이나 이미지를 복층적으로 풍부하게 하는 '이미지들'이다.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유관성의 이미지들이다. 나아가 밀란 쿤데라의 문학용어로 유래한 '이마골로기''는 이미지(image)와 이데올로기(ideology)가 결합한 합성어로 '매체에 의해 이미지 자체가 이데올로기화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데올로기라는 거대 서사가 오늘날 매체가 다양화되면서 단순한 이미지와 구호로 치환되어 이데올로기처럼 소통되는 상태를 드러내는 이마골로기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출발했음에도 오늘날 미디어 이론가나 시각예술이론가들로부터 이미지의 발전적인 가능태로 간주되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이마골로기를 다종다양한 서사와 이데올로기를 담아내는 '이미지의 긍정적인 힘'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작가 이인경의 작업이 전통자수 놓기라는 공예적 기반 위에 출발했으면서도 그의 재료미학이 드러내는 탈공예적 특성은 그녀의 작업이 갖는 장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그녀의 작업이 당면한 관건은, 완성이 예상되는 원본의 이미지를 부단히 재현하는 차원에 골몰함으로써 간과해 온 '이미지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리라. 즉 비주얼 차원의 이미지를 벗어나는 '탈(脫)이미지'를 실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핀이라는 매체에 대한 보다 더 심층적인 탐구와 그것을 응용한 조형실험을 거듭함으로써 이미지 위의 이미지, 이미지에 꼬리를 물고 연계하는 이미지들이라는 '이미저리'로 나아가거나 다양한 서사와 이데올로기를 품어내는 이미지의 힘을 표출하는 '이마골로기'의 차원을 회복함으로써 보다 풍성해질 것이다. ■ 김성호
Vol.20090612g | 인경展 / INKYEONG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