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612_금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 도올_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83.2.739.1405~6 www.gallerydoll.com
지속la dureée의 대상들 ● 나의 작업들은 미시적 세계에 대한 탐구 즉 시각적 대상화에 길들여있지 않은 성질에 대한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하였고 그리는 대상은 '무엇이다'의 명사적 정의가 아니라 무엇과 관계 될 것인가의 인과론적 사유에서 전개된다. ● 나의 회화들은 충격의 촉각을 던져주거나 엉뚱하지도 않다. 오히려 상식적인 의미작용을 하는 것에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종이조각들은 그저 벽면에서 서로의 낯선 이미지의 육체로 뜨악함을 선사하는 정도로 그려내고자 하는 노동만이 존재할 뿐이다. 풍경을 그리고자 떠났던 곳에서, 혹은 산책하던 숲길에서 만난 그늘진 이끼, 잘려나간 나무 밑둥아리를 보며 존재 없는 존재를 화면으로 데뷔시키는 일이다.
이렇게 데뷔한 화면은 끊임없이 대상과 관계하며 '목적이 결여된 회화', '무모한 공간을 채우는 부정형의 회화'로 나아가 화면안의 공간배분, 관계성 같은 것은 무시된 채 그저 그리겠다는 욕망과 현시만이 가득 차 있다. 화면의 대상들은 이것(This)과 저것(That)을 잇고 구분 짓는 혹 이것과 저것에도 포함되는, 절대적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로의 대상이나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타성(alterity)을 함축하고 있다. 나의 그림에서 지향하고자 하는 공간은 어쩌면 문지방(threshold)과 같은 경계의 공간이다. 이는 내부와 외부를 여닫으며 넘나드는 모호한 공간들이며, 대상과 대상 밖을 둘러싸고 분위기들, 인식된 이미지와 몸적 이미지가 등이 동시에 발현되거나 또는 서로를 결핍시키고 보충시키고 있다. 단지 지속에 봉사하는 잉여물들이라고 이해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의 작업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기', '흐트러트리기', '더와 덜 그리기' 등 명확한 의미전달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의도적으로 장치되어, 중요한 이야기가 들어가기 전의 '유보된 전달', '지연된 회화', '중간적 경계선', '우연함' 등 비의도로 전복된다. 이러한 모호한 기호와 취향은 '드로잉'이라는 유연한 도구로 표출되어 '흔적에 대한 흔적 행위들'로, 존재가 남긴 자취가 아닌 '존재 자체가 이미 흔적의 결과물'이라는 재현방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면은 무엇을 '그린다'에서 것에서 무엇이 '될 것인가'로 이행되는데, 이는 언뜻 아무런 공간도 갖지 못하는 이방인의 공간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나의 화면의 이미지들은 터럭, 텍스트, 도표, 부풀린 세포, 뿌리, 점 등 어떤 주술적 이미지들로 나열하고 있다. 그것은 흔적들의 흔적에 대한 표식으로 사물의 부피라든지, 촉각에서 경험한 이미지들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들은 곧바로 그리는 행위들로 이어져 그것을 본래의 경험으로부터 멀어진 우연의 형태로 돌려놓음으로써 의도의 행위를 방해하며 비의도의 해방으로 도착한다. 즉 나의 그림들은 입구와 출구의 부재함, 바깥의 외재적 풍경보다는 내재적 풍경, 잎보다는 뿌리의 증식, 사물의 부스러기 혹은 재(cinders) 등 단순하지만 엉켜져있는 지속의 장소로 이해할 수 있다.
패턴 ● 집 뒷산의 푸르고도 울창한 참나무 숲은 항상 나의 무의식에 존재한다. 유년시절부터 지금에 까지 아침에 불어오는 숲의 냄새가 아직도 의식의 언저리에서 무엇인가를 작동하고 있는 걸 보면, 무의식의 저편에 항상 나무 혹 숲의 색결들이 존재하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짙푸른 온유함을 작업 속으로 끌어들이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 작업들 속 이미지들은 의식의 패턴들 속에 던져진 어떤 사태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긴장들임이다. 근래의 나의 근작들에 숲의 색결과 나무를 닮은 무늬들이 연속적인 반복으로 화면을 점령하고 있다. 화면 속에 끊임없는 무늬이미지의 배치와 반복으로 어떤 대상에 도달하기위해 그린다기보다 그저 화면을 점령하기위해 그리다보니 대상이나 사물은 그저 무의식에 도달하는 지속의 패턴으로 유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 의식의 영토를 점령하다가도 그 영토에서 탈주하는 그런 의미로 봄 직이 나을 것이다. 숲에서 한없이 달음질하다가도 그곳으로 결국 숲으로 귀결되고 마는 쳇바퀴의 형국이랄까. ● 나의 작업들은 숲의 표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화면과 마음의 공조 관계로 그 패턴의 표정을 짓는다. 철학자 김영민은 표정이란 몸의 안과 밖의 여러 집결체가 한데 이루어져 표면에 흐르는 긴장의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안과 밖의 무수하고도 부드러운 충돌의 패턴이 표정이며 이 오랜 긴장의 세월이 주름으로 보여 자연스러운 얼굴을 만든다. ●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작품은 무수한 긴장의 패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긴장의 패턴은 표정을 만들고 주름을 만들어낸다. 패턴은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단서이다. 본질이 제거된 사태들은 무수한 운동이 있고, 촉각적이다. 특히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그러한 긴장감은 더해지는데 나의 작업들은 그러한 일정한 유형을 패턴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 김복수
Vol.20090612f | 김복수展 / KIMVOCSOU / 金福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