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IN GRID

여인모展 / YEOINMO / 呂寅模 / sculpture   2009_0608 ▶ 2009_0615

여인모_포장마차_철_가변설치_2009

초대일시_2009_0608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KEPCO PLAZA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1층 Tel. +82.2.2105.8190 www.kepco.co.kr/gallery

재현을 드로잉 하는 그리드 조각의 원근법 ● 이 땅에 컴퓨터가 발명되고 그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드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물은 컴퓨터의 그리드 체계 안에서 다시 구성되며, 선과 면으로 치환된다. 일찍이 하인리히 뵐플린이 근세미술에 있어서 선과 면의 세계를 해석해 내었으나, 그의 해석은 15세기 마사치오와 알베르티의 원근법적 세계관에 힘입은 성과였다. 이후 전 미술계를 지배한 원근법적 세계관은 20세기 초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해체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현체계를 구축하는 양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1세기 현대 미학이 포스트-, 노마드를 외치고서 결국 찾아간 곳은 컴퓨터의 환영적인 공간이다. 즉, 재현은 그리드의 세계안에서 또다시 반복된다. 그리하여 사물을 구성하는 구조를 파악하고, 각각의 점들과 점들을 연결하여 그래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이제 학습된 인간컴퓨터의 두뇌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게 되었다.

여인모_Chair_철_45×37×37cm_2009 / 여인모_table_철_70×70×70cm_2009

여인모는 바로 이러한 그리드적 세계관을 사물에 덧씌운다. 그는 사물을 컴퓨터에 집어넣었다가 뼈대만 살짝 남기고 껍데기는 녹여버린다. 그의 예술적 의무는 얇은 철선을 용접하여 벤치를 만들고, 침대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사물은 하나의 매스를 가지지 못하고 공간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왜냐하면 그의 그리드가 공간을 선으로 재단하기 때문이다. 여인모는 3차원의 실제공간에서 예술적 드로잉을 시도한다. 그의 의도는 단지 사물을 재현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면의 원근법을 다시 해석하여 공간에서 이미지화 하는 것에 있다. 그의 이미지는 닫힘의 면이 제거되고, 공간안에서 자유롭게 선들이 구축될 때 비로소 생성된다. 여기서 이미지는 두 가지에 의해 구성되는데,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는 골조와 작가의 기억에 각인된 상징적 골조가 그것이다. 가령 커피빈의 의자와 테이블을 이미지화함에 있어 의자의 등받이에 묘사된 커피빈 로고는 분명 작가의 각인된 기억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사물을 이루는 뼈대로써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가진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새롭게 드로잉 된 가상적 이미지로써의 그리드이다.

여인모_Bench_철_80×150×90cm_2009

그의 작품은 몇 가지 내러티브를 가진 상황을 설정하는데 집, 회사, 까페, 포장마차가 그것이다. 그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이 지나간 흔적들을 담아낸다. 먼저 그의 집을 살펴보자. 그의 집은 자신이 거주하던 뉴욕방의 풍경인데 거기엔 책상과 의자, 서랍장과 옷장, 다리미판과 다리미, 침대 등이 있다. 그것은 실제 사물과 크기와 형태가 같아서 바로 사용이 가능해 보인다. 그의 작업방식은 사진을 다시 3차원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오브제들을 재배치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로 책상과 의자,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로 구성된다. 그의 그리드는 인터넷 망의 네트워크 구조와 비슷한데, 각 꼭짓점의 선들이 모여 형태를 구축하고 그 구축된 형태 안에서 다시 수직, 수평의 공간이 생겨난다. 그렇게 하여 컴퓨터안의 환영적인 그리드는 실제공간으로 확장된다.

여인모_Office_철_120×110×70cm_2009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그의 작품이 건축적인 설계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컴퓨터 그래픽의 가상적 사물이미지를 실제 공간으로 확장시켜 놓은 것이 아닌가? 물론 형태상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물의 재현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된 대상을 읽어내는 정서적 해석의 가능성이다. 시뮬레이션은 가상태를 넘어 잠재태로 작용하며, 사물의 의미를 변용시킨다. 사실 그는 실제 사물이 가진 형태를 재현한다. 그의 재현체계 속에서의 이미지는 실체를 반영하지만 상상세계의 이미지는 파상실재, 즉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 휘어짐의 재현을 요구한다. 그것은 직선적인 기하학의 세계가 아닌, 곡선적인 기하학의 변용을 의미한다. 그 곡선은 지시대상이 없으며, 밖이 아닌 안을 향해 휘어져 들어오는 공간이다. 즉, 재현은 이제 더 이상 본뜨기나 복제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발생학적인 단계로 곧장 직진한다. 여기서 그 발생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불특정한 어떤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뮬라크르의 세계이며,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무한 그리드의 공간이 가진 매력이다. 구지 보드리야르를 거들먹거릴 필요도 없다. 시뮬레이션은 이제 현실 그 자체가 되었다. 우리의 뇌는 사물을 순식간에 그리드적으로 분석, 해석, 구조화할 수 있다.

여인모_Monitor_철_45×43×16cm_2009 여인모_Keyboard_철_3×46×18cm_2009 여인모_Mouse_철_3×8×15cm_2009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시뮬레이션을 가능케 하는 기본원리가 바로 원근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뇌에 각인되어 있는 투시 원근법의 법칙에 의해 사물을 다시 해석해 내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수행해 낼뿐이다. 도대체 그의 작품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그는 수많은 철선을 사용하지만 그 선은 점들로 구성된다. 무수한 점(dot)들로 구성된 컴퓨터 화면의 규칙성은 아이러니 하게 모든 가능한 자율적인 이미지를 생성케 한다. 컴퓨터는 더 이상 직선적인 그리드를 만들 필요가 없으며, 처음부터 곡선의 기하학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 수용은 실재하는 형태의 외관이 아니라 그 외관을 바라보는 인간의 의식에 관계한다. 집과 사무실을 오가면서 까페에서 잠시 수다를 떨고, 포장마차에서 지친 맘을 달래는 현대인의 삶의 모습은 어쩌면 21세기의 과학기술과 시대를 달리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사물을 형성하는 선과 선들이 이루는 공허한 면들의 이미지를 재현함으로써 새롭게 생성된다. 사실 그것은 재현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을 볼모로 하는 수많은 드로잉 선들의 끄적거림에 가깝다. 선과 선을 이어주는 인간의 사고력은 공허한 공간에서 끊임없이 교차된다. 무엇을 볼 것인가? 형태가 가져다주는 미학적인 가치를 볼 것인가? 아니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매트릭스적인 그리드의 확장을 볼 것인가? 웃기는 이야기다. 그는 속도의 정치를 추구하는 현시대 인터넷 정신을 과감히 깨뜨리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현실 세계의 의자에 앉아 커피한잔을 하고 가라고 재촉한다. 딱딱한 철제 포장마차 의자에 앉아 물리적인 살의 눌림으로 채워지는 사물의 표면을 느끼면서, 차가운 술 한 잔으로 걸쭉한 옛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고 손짓한다. 그렇기에 그는 그리드로 구성된 사물을 재현한다.

여인모_coffee bean & tea leaf_가변설치_2008

다시 이 땅에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고, 모든 사물을 컴퓨터가 만들어낼 때 인간은 컴퓨터와 만들어진 사물사이를 오가면서 때로는 적응하기 위해 허둥지둥 하며, 또 때로는 만들어진 사물을 혐오하면서 자신들의 지나간 과거를 회상한다. 여인모의 예술적 사물은 이미 만들어진 기억들에 다시 수많은 선들로 자유롭게 낙서해 보라고 제안한다. 그의 철제 드로잉은 간단명료하게 세상을 구성하는, 그리고 삶을 구성하는 사물들을 잠시 바라보라고 권유한다. 자신을 이루는 껍데기를 잠시 돌아보라고... ■ 백곤

Vol.20090608e | 여인모展 / YEOINMO / 呂寅模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