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전위예술과 전통 동양화의 정신

세미나 / 2009_0608_월요일_04:00pm~06:00pm

세미나 / 2009_0608_월요일_04:00pm~06:00pm

강연자_홍가이 Kai Hong

후원_OPEN U

성신여자대학교 성신관 110호 SUNGSHIN WOMEN'S UNIVERSITY 서울 성북구 동선동3가 249-1번지 Tel. +82.2.920.7241 www.sungshin.ac.kr

I. Art, Political Economy and Ideology: ● 어떤 시공간 내에 최소 둘 이상의 분자들이 모여 있으면, 그 분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사이에 관계를 설정하게 된다. 이것은 우주의 원리이다. 또한 그 분자들이 들어 있는 시스템도 더 큰 시공간 내에서 다른 시스템들과 역시 어떤 종류의 관계(relationship)를 설정하게 마련이다. 지구 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구본을 보라. 지구의 표면 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있다. 그 국가들은 역시 서로 간에 그 지구의 표면이 경계 지워주는 공간 내에서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속에서 그 국가간의 위상은 서로 역전되기도 한다. ● 임마뉴엘 월러스테인Immanuel 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World System Theory)」에 의하면 바로 이런 국가와 超國家적 조직체(Trans-National- U.N. 기구, Transnational Corporations, IMF, World Bank, etc.)는 서로 어떤 관계식을 갖게 되는 데, 그것은 항상 어떤 질서를 위해 서로 역학적으로 갈등하면서 설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세계체제 속에서는 항상 어떤 국가나 국가 群이 헤게모니적 중심을 잡고, 그 외의 국가들은 그 중심의 주변으로 겹겹이 자리잡으며 세계질서설정의 論外의 場에 뒤쳐져있는 hinterland로 세계질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심부는 역사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드시 이동하게 마련이다. 왜? 서로 중심이 되려고 호시 탐탐 노리고 있으니, 어떤 조그만 변화라도 중심축을 흔들고 세계체제적인 질서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부 역할을 최초로 한 것은 17세기초의 암스테르담이었다. 그러나 곧 경제, 무역, 금융의 중심은 영국의 런던으로 넘어가서 18세기와 19세기까지 군림하다가, 19세기 후반 말에 독일과 미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 20세기 전반부에 와서 1차 세계 대전은 영국과 독일이 패권을 다투고, 2차 세계대전은 역시 독일과 미국의 패권다툼이었으며 결국은 미국이 승리하여 절대 패권자로 헤게모니적 중심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 경제, 금융, 무역의 중심이 서유럽의 암스테르담, 런던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 프랑스의 파리 등의 다자 중심이었던 것이 2차 세계대전 후에 금융은 뉴욕으로, 정치는 워싱턴으로 이동해 가면서, 예술-문화의 국제중심지의 위상도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하게 된다. 정치와 경제의 패권 다툼은 전쟁이라는 혹독한 갈등을 통해서 패권자가 결정되었지만, 예술-문화의 경우엔 어떠했는가? 경제, 정치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 전쟁의 승리가 예술-문화의 위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런던과 베를린이 파리보다 최소한 19세기와 20세기에는 항상 우위에 있었지만, 예술-문화, 특이 미술에서는 파리가 전세계의 모든 예술가가 동경하는 국제미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그런 위상을 파리 또한 뉴욕에 빼앗겼으며, 바로 그런 과정을 연구하면, 예술과 정치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국제 금융의 관계를 잘 이해 할 수 있다. (註: 「세르즈 길보Serge Guilbaut」라는 French Canadian Art Historian의 훌륭한 논문이 바로 그런 과정에 대한 것이며 추후 「How New York Stole the Idea of Modern Art from Paris」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 중심의 이동에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미술 담론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이론적 평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뉴욕출신의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2차 세계대전 조금 전부터 좌파지식인의 입장에서 문화, 정치, 예술 전반에 대한 평론을 써오다가, 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뉴욕 화가들의 미술창작에 대한 세계사적인 안목에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참신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미술비평의 담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의 저서 「사실은 여러 비평의 글을 모은 책」, Art and Culture가 획기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의 새로운 미술비평의 담론은 또한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들한테 창작의 방향조차 교육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감지한 화가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것은 물론이었고, 이런 식으로 점차 뉴욕에서는 세계 현대미술의 주류를 형성하는 새로운 미술문화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그가 설득력 있게 비평의 글을 써주었던 몇몇 화가들 (특히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쥴스 올리츠키Jules Olitski,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캐내스 놀랜드Kenneth Noland 등등)이 이 역사적인 움직임의 주역배우였다면, 그린버그의 Abstract Expressionism이라는 미술담론에서 minor variation로서 Action Painting이라는 이름을 붙여 2차 대전 직후의 쟝 폴 사르트르로 J.P Sartre 대표되는 실존주의 철학과 연계된 담론을 펼쳤고, 하바드에서 예술사학과 교수로 그린버그가 창출한 담론을 좀더 이론적으로 세련화한 논문들을 발표한 Michael Fried가 조연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이런 설득력 있는 담론이 나오면서, 뉴욕의 금융계의 큰 손들이 미술 수집가로서 그린버그가이론적 지원을 하는 화가들의 작품들을 고액에 구입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의 문화전통에 억눌려 유럽 작품 중심의 수집과 전시를 하던 뉴욕의 주요 미술관들도 그린버그가 제시하는 세계미술전개의 이정표를 받아들였으며, 그로써 뉴욕은 유럽의 파리를 능가하는 국제미술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추상표현주의 미술을 뉴욕의 국제적인 새 미술운동으로 설정하는 것에 성공하며 기존의 다른 여러 미술 분야도 뉴욕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그 한 예로서 유럽에서 활동하던 백남준이 국제미술중심지의 이동을 엿 보고 신속하게 뉴욕으로 이주한 것을 들 수 있다.

II. 21세기 초에 새로운 예술문화 중심 축의 이동이 있을 것이다. ● 그런데, 뉴욕에서 동북아시아로 세계 예술문화의 중심 축이 이동할 조짐이 보인다. 내가 무당도 아닌데 어떻게 미래를 운운할 수 있느냐고? 무슨 근거로? 동의하지 않는 건 당신의 자유이나 나는 신념을 갖고 설명하겠다. 지금은 그저 내가 제시하는 논리를 주의 깊게 숙고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것이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하는 이론가로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할 수 있는 전부이니까. (Crisis in Western European Art whether it is done in the name of Modern Art, Post-modern art, or Post-historical art or Avant-garde Art. Stanley Cavell, perhaps the best Philosopher to write on Philosophy of Art in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had captured the CRISIS OF WESTERN ART in the following way: "What characterizes the situation in modern art today is the pervasive possibility of fraudulence.") 아마도 하바드의 철학자, 스탠리 카벨이 서구예술이 처한 위기를 가장 잘 표현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날의 현대 예술을 가장 잘 특징 지워주는 것은 어떤 필연적인 사기의 가능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콜럼비아 대학의 아서 단토 교수의 "예술의 종말론"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필자 자신도 1975년 박사논문에서 (그 논문의 이론적 배경은 순전히 필자가 스탠리 카벨교수한테 배운 것이다. MIT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박사논문연구의 현대 예술에 관련 된 어떤 부분은 바로 MIT에서 800미터 인근에 있는 하바드이 카벨교수와 마이클 프리드교수의 지도하에 이루었졌었다.) ● 서구 예술의 위기의 타개책은 서구의 주요 예술철학자들도 꾸준히 모색하고 있었다. 그런 시도들은 예슬사를 세계사적인 안목에서 읽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여 서구예술문화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도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몇몇 예술철학자들은 새로운 방향에 대한 insight (영감)이 없는 상태에서의 서구 예술의 위기적 징후인 허무주의적 제스춰에 대해 실험이라고 변명하는 류의 사기극을 오히려 모든 것이 가능한 열린 문화의 열매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그 예가 아서 단토의 후기역사적인 예술이라고 명명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에 비하면 스탠리 카벨의 진단은 철학적으로 심오하고 개념적으로 단호하다.) ● 사실 서구의 예술만이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서구 문명의 철학적 주춧돌 노릇을 하던 정치철학, 서구과학, 서구 사회과학, 서구 가치관... 곧 서구의 세계관과 삶의 철학이 하나 같이 내부적으로 (개념적으로 가치관적으로) 위기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서구의 문명을 가능케한 서구 사유의 위기를 진단하고 새로운 뱡향을 모색하는 뛰어난 몇 명의 천재들이 있다.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비트겐슈타인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베르그송 Henri Bergson, 들뢰즈 Gilles Deleuze 그리고 알랭 바디우Allain Badiou가 그런 사람들이다. ● 특히 들뢰즈는 현대미술의 방향에 대해 다른 어느 철학자들 보다 더 깊이 그리고 치열하게 새로운 예술철학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유럽 철학의 이단자라고 할 만한 베르그송의 Vitality의 철학-동양의 생기론을 연상시키는-을 되찾아 새로운 예술철학의 모색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서양 철학만 공부하던 필자가 동양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결과, 들뢰즈가 모색하는 새로운 예술철학은 바로 전통 동양예술이 지향하던 바로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프랑스의 걸출한 중국학자 프랑소아 쥴리앙Francois Jullien이 서구적인 용어로 풀어내는 중국 전통 예술철학은 들뢰즈가 지향하는 바로 그것이다. ● 마침, 경제적으로도, 지금 동북아시의 중국, 한국, 일본의 3국이 세계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급 부상하고 있어 서유럽이나 북미에 견줄만하고, 수 년 내에 능가할 것으로 본다. 이런 경제력에 걸맞게 다른 모든 분야에서, 즉 정치, 경제만이 아니라, 예술문화 그리고 과학, 인문과학에서도 동북아로 세계의 중심축이 옮겨 올 것이다. 그러나, 파리에서 뉴욕으로 국제 미술 중심지가 옮겨 가는 과정에서 보았듯이, 그냥 가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각자들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 뉴욕에서 서울로 국제 미술중심지의 위상을 뺐어 오기 위해 누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역할을 자처할 것인가? 누가 잭슨 폴록, 올리츠키, 스텔라의 역할을 할 것인가? 서울의 미술을 세계중심주류 예술로 만들기 위해선, 서울의 미술사조는 전통동양적 예술철학에 기반한 것이지, 서구의 허무주의적 전위예술의 재탕 삼탕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부터라도, 한국의 지각있는 미술 창작가들, 이론평론가들 그리고 행적적으로 경제적으로 후원할만한 단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울을 국제미술의 중심지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강의는 새로운 국제 미술의 미래에 대한 방향타 노릇을 할, 세계화된 담론의 전통 동양 예술철학을 이념적 기반으로 하여, 그런 예술철학에 기반한 작품들을 선택하여 보여주면서, 이미 서구 전위예술과 거의 동일한 작품들만 나열해온 한국 미술계에 경종을 울리며, 동양적 가치를 계승한 작품이 세계화되는데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홍가이

Vol.20090608d | 서구 전위예술과 전통 동양화의 정신 / 세미나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