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12도8분

박찬학展 / PARKCHANHAK / 朴贊鶴 / photography   2009_0605 ▶ 2009_0618 / 일요일 휴관

박찬학_디지털 프린트_76.2×101.6cm_2008

초대일시_2009_0605_금요일_06:3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브레송_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충무로2가 고려빌딩 B1 Tel. +82.2.2269.2613 cafe.daum.net/gallerybresson

주어진 좌표에서 일어나 걷는 것, 그것이 진보다 ● 2009년 2월 말 「National Geographic」은 현대인과 해부학적으로 같은 가장 오래된 사람 발자국 사진을 공개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 고고학자들은 케냐 북부 퇴적암층에서 발자국들을 발견하였는데, 과학자들은 이 발자국 주인들의 키와 몸무게, 걷는 방식이 현생인류와 똑같고 심지어는 이들이'경쾌한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론된다고 덧붙였다.

박찬학_디지털 프린트_50.8×76.2cm_2008

오랜 세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약 150만 년 전 극적으로 직립보행을 시도하여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똑같은 신체 비례를 가지게 됐던 최초의 호미니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바로 이 발자국들의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직립보행을 하며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직접 불을 일으켜 사용했다. 허리를 펴고 똑바로 일어나 일자로 경쾌하게 걷는 것은 그래서 인류의 문명이 시작하는 출발점이자 미래가 시작되는 새로운 꼭짓점이었던 것이다.

박찬학_디지털 프린트_76.2×101.6cm_2008

여기 '이삭'이라는 이름의 소년이 있다. 13살. 소아마비에 걸린 탓에 친구들처럼 똑바로 일어나 걷지 못하고 달리지 못한다. 양 손에 슬리퍼를 끼고 한 손에는 공책까지 움켜잡고 이삭은 엉덩이를 질질 끌면서 학교에 간다.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풀 뿌리처럼 앙상한 다리를 어머니가 가끔씩 주물러 주기는 하지만, 어머니도 이삭도 이 두 다리로는 남들처럼 팔짝거리며 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삭의 고향이 아프리카이며,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불리는 세계 최빈국 차드공화국이라는 것이 이삭이 위치한 현재 좌표(座標)인 탓이다. 동경 19도 북위 15도 그 불우한 좌표 위에 이삭은 똑바로 일어나 서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엉거주춤'앉아'있다.

박찬학_디지털 프린트_50.8×76.2cm_2008

러셀(Russel)은 『정신의 분석』이라는 책에서 지구는 환영적인 과거를 기억하는 인류를 지닌 채 몇 분 전에 창조되었다고도 말했지만, 최소한 지구상에 존립하는 아프리카만큼은 자신이 풍요한 나라의 선민으로 태어났다는 기득권을 확고히 하고 아이들을 그 속에 통제하고 싶어 하는 근대 이후의 인류에 의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죄를 지으면 다음에 저런 나라에 태어난다'거나 소위 '문명의 교과서대로 하지 않으면 저렇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어'라고 혀를 끌끌 차며 행복과 불우, 희망과 절망, 부와 가난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동정과 오만 사이를 오가는 인류에 의해 아프리카라는 검은 대륙은 늘 병들고 가난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는 태초에 신이 버린 땅이 아니라 자신들의 천국을 확인하려고 인류가 거꾸로 비쳐보는 지구상의 지옥거울인 셈이다.

박찬학_KK2I_디지털 프린트_76.2×101.6cm_2008

아프리카에 가서 자선을 베풀고 오거나 그곳의 사람살이와는 영 상관없이 자연의 원초적인 아름다움만을 찬탄하고 오거나, 아프리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늘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삶에 절망한 자들이 멀리 아프리카로 떠나 벼랑 끝에서 다시 희망을 안고 돌아왔다는 기행담은 수긍은 가지만 별반 감동스럽지는 않다. 박찬학 작가의 사진이 내 눈을 끄는 이유는 이러한 시선들로부터 비껴서 있기 때문이다.

박찬학_디지털 프린트_101.6×76.2cm_2008

문제의식을 들춰내려고 하지 않고 상황을 과장하지도 않는 담담함. 어쩌면 지나칠 만큼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 작가의 카메라는 이삭과 아이들의 노트라든가 칠판, 식수통 등에 기대어 학교 풍경을 포착하는데 거기엔 연민이나 긍휼 따위는 조금도 들어있지 않고 여느 이국 아이들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고르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발은 늘 그렇듯이 헐벗어 있으나 딱히 가엾어 보이지 않고 낮은 책상 위에 턱을 괴고 오글오글 앉아있는 어린 학생들은 무료하게 수업을 듣는 다른 세상의 아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특별히 눈을 잡아 끄는 자극적인 사진 한 장 없고 진한 맛이 없는 이 사진들이 가장 아프리카답게 느껴지는 것은 기묘한 일일까?

박찬학_디지털 프린트_76.2×50.8cm_2008

이삭은 학교에 간다. 그것은 특별한 휴먼스토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주어진 일상이고 인간의 존재이유라는 것. 일상이 결코 부자나라의 일상처럼 수월치 않은 세상에서라도 아이들의 좌표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이삭의 사진들이 전해주는 명제였으면 좋겠다. 현생인류와 같은 최초의 발걸음을 가진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한지 150만년 후인 지금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에서 태어난 이삭이, 혹은 전혀 다른 좌표를 가진 지구상 어느 나라의 소년소녀가, 인류가 아직까지 해보지 않은 완전히 다른 진보의 발걸음을 놓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 최현주

Vol.20090605f | 박찬학展 / PARKCHANHAK / 朴贊鶴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