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꿈꾸다

김경경展 / KIMKYUNGKYUNG / 金敬京 / painting   2009_0521 ▶ 2009_0602 / 월요일 휴관

김경경_행복한집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0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일요일_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소울아트 스페이스_SOULART SPACE 부산시 금정구 구서1동 485-13번지 Tel. +82.51.581.5647 www.soulartspace.com

따뜻한 그로테스크 ● 기억은 필연적으로 왜곡을 동반한다. 어떤 기억이라도 기억 그 자체가 표현되는 법은 없다. 유년의 기억을 심층에서 끄집어 낼 때, 그 기억은 언제나 현실과 갈등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혹은 기억이 현실로 소환되거나 이른 바 현실로 '재현'(representation)될 때마다, 기억하고 있던 유년의 세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기억하기' 자체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세계와 무관할 뿐더러 언제나 '갈등'하는 장소에 놓이게 된다. 달리 말해, '기억하기'가 일종의 갈등 역학을 고스란히 노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년을 기억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유년을 그러한 방식으로 재현하는가라는 질문이 훨씬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경경_따스한 그리움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09
김경경_봄나들이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9

김경경은 작업에서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을 재현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현된 이미지들을 통해 짚어볼 것은,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결코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겨있지 않다는 데 있다. 오히려 유년의 기억들은 기괴함(uncanny)을 불러일으키며, 행복했던 순간들이 여러 겹의 장치들로 짜깁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따뜻하고 화려한 색을 이용하거나 꽃문양을 적극적으로 캔버스 내부에 배치시킴으로서 유년의 기억을 따뜻하게 덮으려 하지만, 캔버스는 역으로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따뜻함 보다는 기이하게 드러나는 이미지를 통해 유년의 기억이 정확한 상을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봄을 꿈꾸다』 신작들의 형상은 완전히 중앙으로 집중하거나 아니면 산발적으로 흩어 놓음으로써 초점을 분산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유년의 기억이 다른 이미지들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차용한 표면들, 예컨대 골무가 인물의 얼굴을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들, 동물이나 인물의 표면이 이불 호청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통해서 실제로 그녀가 마주했던 기억 속의 사건은 전면화되지 않고 인물의 얼굴은 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경경은 생생하게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현재에 의해서 구성된 기억이며, 더구나 문양이나 장식과 같은 현재의 관심사들이 기억에 덧입혀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왜곡되고 전혀 다른 상(像)들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김경경_행복한 계곡에서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9
김경경_상상 식물원에서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9

따라서 김경경에게 유년의 기억이 현실에 출몰하여 캔버스에 그려질 때, 그것은 특별한 사건보다는 유년시절에 보았던 도상들을 기억해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한 집과 동물, 식물과 같은 수많은 도상들이 소환되어 유년의 기억을 독특한 화법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도상들은 현실의 갈등이 체화된 형상들이며, 현재의 억압을 분출하기 위해 이용된 과거의 기억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화려한 색과 따뜻한 표면은 오히려 기억을 왜곡하고 변경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불러일으키는 기괴함, 혹은 기억은 어쩌면 괴물처럼 출현해서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이다.

김경경_안녕! 봄아~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9
김경경_그 집 앞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9

다시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면, 기억은 왜곡되고 변형된다는 사실. 곧 행복함으로 충만했던 유년의 기억이 지금―여기 재현되었을 때 오히려 그로테스크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는 김경경이 수동적으로 기억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역화되고 신성한 유년의 기억은 아름다움이나 행복함이 아니게 된다. 유년의 기억은 억압되고 은폐된 현재의 고통과 맞물려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현재와의 갈등이 고스란히 캔버스에 전면화된 것이다. ● 이처럼 김경경의 작품에서 유년의 기억은 언제나 현재에 의해 재구성되고 변형된 채로 반짝이며 그 빛을 보여주고 있다. 유년의 기억이 아름답거나 행복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며, 어쩌면 유년의 기억에는 현재와 같은 억압이나 고통들이 내재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년의 기억은 아름답게 포장될 필요가 없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라보는 눈, 즉 따뜻하게 그로테스크할 수 있을 뿐이다. ■ 신양희

Vol.20090531h | 김경경展 / KIMKYUNGKYUNG / 金敬京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