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529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준기_박경작_이민경_이정후_정철규_진보라_최혜영
관람시간 / 10:00am~07:00pm
키미아트_KIMIART 서울 종로구 평창동 479-2번지 Tel. +82.2.394.6411 www.kimiart.net
잔상은 빛의 자극이 제거된 후에도 시각 기관에 어떤 흥분상태가 계속되어 시각 작용이 잠시 남아 있는 형상을 의미한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기억에 대한 집합체이며, 작업에서는 기억 속 소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갈등의 흔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누구나 대상을 그려내기 위해 눈으로 익혀둔 잔상을 토대로 표현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경험은 개인적인 것이며, 잔상의 심오함 또는 강렬함의 결과로서 자극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아슬아슬한 기억 속의 이미지이다. 어느 시점, 공간에서의 경험과 조화되어 오히려 대상의 모습은 실제적인 묘사를 했을 때보다 더 정확해진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치지 않는 필사적인 노력과 삭제하고자 하는 것을 과감히 내려놓는 선택의 역사가 작품으로 귀결된다. ●『Someday, Somewhere展』은 특정한 시점과 공간에서의 시지각적 경험을 살려 만들어낸 작업을 모았다. 순간을 기억해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의 환영에 의문점을 가지면서 또 다른 이미지로 전환되는 경우이다. 전시를 통해 "지각할 수 있음이라는 것은 일종의 주의 기울이기"라는 노발리스의 정의를 긍정하면서 작가의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환영과 내러티브로 인해 본연의 모습과 다르게 변화된 대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정후는 특정 상황 또는 장소나 사물에서 느꼈던 순간의 감정을 응시한다. 작가는 파편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방식으로 오브제를 늘어놓은 후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공간적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실제와 또다른 감각적 경험이 되길 바란다.
김준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각자의 가치관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보는 것은 선택이며, 이 선택에 따라 우리가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작가는 이미지가 현실을 대신하는 시대, 이미지와 콘텐츠를 소비하는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주목하고, 표피적인 현실의 모습 속에서 자기애정과 자기유희에 몰입된 디지털 세대의 소비와 욕망, 그리고 그것의 일회성에 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민경은 공간이 인간 삶을 반영하는 메타포로서 현실과 사유의 경계에서 삶을 규정하는 내면적인 상황을 연출한다고 본다. 「광야」연작에서 보여주는 공간은 인간 삶의 과정 가운데서 성장과 구도의 장소이자 신이 만나는 장소이다. 공간은 본연의 구조적 형태를 재현하면서 집(Home)이 아닌 일시적인 곳 (Tent)에 가까워지며, 특정한 문화나 정치적 메시지의 전달 없이 삶을 담는 뼈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박경작의 「silence」연작은 다소 묵시적인 성향의 작업이다. 침묵은 곧 말없음이자 말없는 이야기 소재이며 무한히 펼쳐진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무한성, 숭고, 미적 모더니티에 대한 탐색의 결과이며 긴장, 불안, 두려움에 집중한다.
정철규는 가시적인 사물과 현상을 왜곡된 모습으로 담는다. 볼록 거울은 고정된 상태나,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투영시킨다. 그로 인해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나 기억이 존재하게 된다. 기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라지지만, 기억이 없어지기 전에 자신의 것으로 간직하기 위해서 작가는 변화 속 기억을 모조리 포용하고, 환원시킨다.
진보라는 대량생산되어 군집된 화장품 용기에 주목하고, 현대인이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쫓아가기 위해 그것을 반복 소비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도시라는 공간의 이미지로 투영, 확장시켜 현대 도시의 소비적인 삶을 드러내고자 한다.
최혜영은 선택한 재개발 지역의 버려진 대상들과 그 해체과정으로 인해 붕괴된 물질들의 뒤엉킴을 표현한다. 대상 간의 뚜렷했던 경계를 지우므로써 물질들 간의 경중이나 대소가 없음을 암시한다. 표현의 측면에서 본다면 색과 대상간의 경계를 붙였다 떼어내는, 또는 만들었다가 파괴하는 작업 행위는 구조를 대하는 인간적 행위의 은유라 할 수 있다. ■ 키미아트
Vol.20090529b | Someday, Somewhere展